피해보상과 脫원전부담 공론화해 부실 막아야

▲ 김성기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지난 24일 강원도 고성과 속초를 방문, 산불피해 주민들을 만나 ‘(산불에 대한)민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기본 방침을 밝혔다. 4월 4일 이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한지 20일 만이다. 경찰수사 결과에 따른 1차적인 책임과 무관하게 지방자치단체, 이재민과 협의해 한전이 해야 할 민사상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전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전신주에서 산불이 시작된 것으로 CCTV를 통해 알려진 뒤에도 발화책임에 관해 언급을 회피하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가 발표되고 수사가 확대되자 마지못해 입장을 밝히는 모습을 보였다. 국과수는 ‘특고압선 단절에 의한 아크 발생’을 발화원인으로 지목했다. 고성-속초지역 산불은 감식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한전의 발화책임이 사실상 공개적으로 거론됐고 주민들도 한전의 입장 표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한전은 그러나 발화책임에 관한 언급을 미적거리다가 감식결과가 나오고 경찰이 이 지역 한전 지사들을 압수수색한 뒤에야 책임을 인정했다.

산불에 대한 한전의 민사상 책임은 김 사장의 별도 언급이 없더라도 당연히 따라야 할 조치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산불 발화를 강풍에 의한 천재지변으로 보려는 시각이 있지만 강원도 동해안, 특히 양양-간성 지역은 봄철 ‘양간지풍’이라는 세찬 바람이 불기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이 곳을 지나는 특고압 전선은 예상되는 강풍에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한 재질과 안전장치를 갖춰야 하고 한전은 수시로 안전점검을 해야 마땅하다. 태풍을 비롯한 강한 바람이 잦은 한반도 기상조건을 감안하면 특고압 전선이 지나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특고압 전선이 바람에 끊어질 정도로 허술하게 설치 관리된다면 전국이 대형 산불의 발화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한전은 특고압 전선 절단이 관리부실이 아니라 강풍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하며 피해보상책임을 ‘발화 원인 제공에 따른 민사상 책임’으로 한정하고 사태를 봉합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한전이 국내 전력사업을 독점하는 국내 최대의 공기업이라는 지위를 생각하면 지금 보상책임을 둘러싼 방어전략에 주력할 때가 아니다.

피해보상이나 배상은 수사가 마무리된 후에도 피해주민들과의 협상과 법정소송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엄청난 피해 규모에 비춰볼 때 얼마나 막대한 보상이 소요될지 현 단계에서 예단하기 어렵다. 한전의 경영실적 악화와 보상 부담 등을 감안하면 김 사장을 비롯한 현경영진의 거취문제도 당연히 거론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김 사장이 취임한 이후 비용절감을 위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 한전은 이미 벌어진 사태를 미봉하는데 급급하지 말고 사후 대비책에 집중해야 한다.

피해주민을 돕기 위한 성금 보내기 운동이 벌어지고 기업과 단체의 성원이 이어지는 분위기에서 공기업의 맏형격인 한전이 보상책임을 줄이는데 몰두하는 모습은 국민이 보기에 매우 실망스럽다. 한전은 보상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되 경영악화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경영정상화를 위한 대책을 기업의 명운을 걸고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전은 지난해 비상경영체제 속에서도 2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전은 이에 대해 국제연료가격 급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주장했지만 원전이용률 하락 등에 따른 구조적인 적자로 보는 시각이 한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원전 전문가들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놓고 반기를 들기 어려운 공기업 입장 때문에 한전이 적자요인을 어렵게 둘러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탈원전 정책이 원전 가동률 저하를 불러오고 석유와 LNG 등 화력발전 의존을 높여 연료가격 부담을 급증시켰다는 분석이다.

에너지 정책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기업 한전이 부실화되는 파국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탈원전과 산불피해 보상에 따른 부담과 장기전력 수급계획을 공론화하고 근본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현실을 비상경영대책이라는 처방으로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에 탈원전에 따른 부담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대응 방안을 끌어내야 한다. 그것도 어려우면 국민의 이해를 구해 전기요금을 올려서라도 한전 부실화를 막아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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