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 vs 게임업계 대립 심화 예상...정부, 논의 과정 거치자며 중재나서

투데이코리아=권규홍 기자 |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5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세계보건기구 총회’를 열어 ‘게임중독’ 증상을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질병코드로 등록했다.
‘게임 중독’의 정식명칭은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로 코드번호 6C51로 등록 되었다.
분류는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증상으로 분류되었으며 상세 증상으로는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인 게임 행동 패턴(디지털 및 비디오 게임)으로 연속적이거나 일시적이며 반복적일 수 있다”며 “모든 진단 요구 사항이 충족되고 증상이 심각하면 요구되는 기간이 단축 될 수 있지만, 게임행동 및 기타 기능은 일반적으로 진단을 지정하기 위해 최소 12개월 이상동안 분명해야 한다”고 증상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했다.
WHO의 이 같은 결정은 게임을 하는 행동 역시 도박중독과 같은 분류인 중독성 행위 장애로 본 것이며 게임 중독 역시 하나의 질병으로 정식 인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각국 보건당국은 질병관련 보건 통계를 작성해 발표하게 되며, 예방과 치료를 위한 예산을 배정할 수 있게 되었고, 개정된 질병분류 기준은 2022년부터 적용된다.

▲ 게임방에서 게이머들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엇갈리는 반응

WHO의 이 같은 결정에 전 세계 게임업계는 그야 말로 난리가 났다. 당장 전 세계 게임산업규모 4위 국가인 우리나라의 게임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보건복지부, 교육부, 여성가족부는 WHO의 이 같은 결정에 환영 입장을 내었다. 

보건복지부는 게임중독과 관련된 실태조사와 진단기준을 마련코자 예산을 배정받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학부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역시 게임중독 과의존 용역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 정례회의에서 질병코드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동의견을 취합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전달하여 입법과정까지 추진하고 있다. 

반면 게임업계와 게임 이용자들은 WHO의 이번결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게임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미성년자들 역시 이번 결정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청소년 인구는 542만9550명으로 이 가운데 87.9%에 달하는 477만2574명이 게임을 이용 중인 것으로 조사됐는데 WHO가 지정한 대로라면 이 많은 청소년들이 향후 보건복지부의 치료 대상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반 게이머들은 “우리가 무슨 정신병자라도 된다는 말이냐?”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고, 게임이 직업인 프로게이머들 역시 “이러다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또한 중독증상을 입영 등급에 반영하는 병무청 역시 이번 사태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게임중독이 마약중독, 알콜중독과 같은 질병으로 다뤄지게 됨에 따라 향후 병역 업무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 김성원 의원이 게임중독질병코드 도입과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핵심 쟁점은?
WHO의 이런 발표에도 불구 아직도 의학계와 게임계는 질병이다 아니다를 놓고도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30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김시소 전자신문 기자는 현재 양측이 게임중독을 두고 질병이냐 아니냐로 양측의 주장이 대립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기자는 “지금까지 의학계에 보고된 사례들을 보면 ‘게임장애’, 이른바 ‘게임 중독’이라고 불릴 현상들을 학계에선 ‘공존장애’라고 지칭한다”며 “게임중독이 우울증이라든지 ADHD라든지 기존에 보고된 정신질환들과 결합을 해서 나타나는 케이스들이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임에 이해가 높은 일부 의사들은 질병으로 불릴 정도의 증상들은 게임만으로 유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아직도 관련 연구가 오래전부터 진행중이라 단정 짓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힌 “이 같은 이유들 때문에 아직도 게임업계에서는 의학계에서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연구들 두고 성급하게 질병으로 분류한게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며 “만약 이것을 치료한다고 하면 연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임중독’증상에 전문성을 가진 의사가 과연 몇이나 되느냐?”고 의학계에 반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 게임쇼에서 관람객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게임산업의 위축 우려
사실 게임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것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의 문제가 크다.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은 28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토론회에서 “WHO의 결정으로 국내 게임산업의 타격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 회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콘텐츠 수출액 중 게임은 75억 달러(약 8조 9145억)로 전체 수출액의 과반(56.6%)이 넘는다”며 “이는 방탄소년단(BTS)EXO 등으로 대표되는 국내 대중 음악(K-POP)(6.8%)의 수출액보다 8배 이상 큰 수치”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12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WHO의 이 같은 결정으로 우리나라가 2022년부터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취급하게 된다고 가정하면 게임 산업이 위축돼 향후 3년 동안 1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 된다”고 국내 산업에 있어 큰 타격을 볼 것 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아울러 임 회장은 이번 결정이 우리 산업 전반으로도 미칠 영향까지 전망했다. 임 회장은 "최근 AI, VR, AR, 자율자동차 등이 모두 게임의 원리에 기초한 인터렉션을 기본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국내 도입과정에서 규제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대상범위는 게임산업 뿐만 아니라 IT산업, 나아가 제조업 등 전체산업분야에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또 "직접적인 규제 뿐만 아니라, 산업종사자들이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따른 위축효과도 고려를 해야 할 것“이라며 산업계 전반에서 깊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재에 나선 정부
이낙연 총리는 현재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관계부처들에게 자제를 당부했다. 28일 정부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에서 이 총리는 “아직 조정되지도 않은 개정안을 두고 국민과 산업계에 불안을 줘서는 안된다고”강조했다.
이 총리는 “ICD 개정안은 2022년 1월부터 권고적 효력이 시작된다”며 “각국은 국내 절차를 거쳐 도입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설령 도입을 결정한다고 해도 2026년에나 가능하다”며 각 부처들에게 자제를 당부했다.
이어 “우리는 몇 년에 걸쳐 각계가 참여하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건전한 게임이용 문화를 정착시키면서 게임산업을 발전시키는 지혜로운 해결방안을 찾을 것"이라며 ”국무조정실은 복지부와 문체부 등 관계부처와 게임업계, 보건의료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길 바란다“며 우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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