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완전히 매듭지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가 또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0일 부산, 울산, 경남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만남을 가진 뒤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 김해신공항이 적정한지 총리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그 결과를 따르기로 했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로써 2016년 고심 끝에 김해공항에 추가로 활주로 1개를 건설하기로 한 정부의 김해공항 확장 결정이 3년만에 뒤집히면서 가덕도가 신공항 후보지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지난 총선 때도 부산 가덕도냐 밀양이냐를 놓고 부산·울산·경남(부.울.경)과 대구·경북간의 신공항 후보지 논쟁이 치열했었는데 이번 뒤집기로 내년에 치러질 총선에서도 엄청난 소모전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2025년이 되면 김해공항의 연간 이용객이 2,000만 명을 넘어 포화상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세우며 영남권 지자체들이 새로운 공항건설을 요구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토부에 타당성 검토를 지시하면서 2006년에 공론화됐다. 2007년 8월에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이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고 2008년 9월에는 동남권 신공항이 정부의 30대 광역 선도프로젝트로 선정됐다. 처음에는 관심이 적었으나 12월에 부산이 가덕도를, 2009년 1월에는 경남이 밀양을 신공항 건설지로 제시하면서 두 지역 간 경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신공항 유치가 곧 기업 유치와 직결된다고 여겨지면서 두 후보지 모두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입지평가위원회 평가에서 가덕도와 밀양 모두 합격기준에 미달, 2011년 3월 30일 전면 백지화 됐다.

그러나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 사업이 다시 공약에 포함됐고 다음해 박근혜 대통령이 재추진키로 하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공항 후보지를 놓고 지역 간 충돌이 거세졌다. 그러자 국토부는 2016년 공정성을 기한다며 19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줘가며 프랑스 전문 업체의 컨설팅을 받아 김해공항 확장 쪽으로 결론을 냈다. 당시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가덕도와 밀양 모두 부적합하고, 김해공항 확장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부·울·경과 대구·경북 등 5개 광역단체장도 용역결과를 수용키로 합의했었다. 이에 따라 이 문제는 완전히 종결된 것으로 여겨졌고 국토부도 줄곧 김해신공항 확장 방침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오거돈 부산시장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으로 내세운데 이어 부.울.경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공항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재심의를 요구하고 문재인 대통령마저 재검토 운을 떼자 국토부가 최근 재검토로 입장을 바꿨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부산에서 “광역단체장의 생각이 다르다면 총리실 산하로 승격해서 검증 논의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면서 김해 신공항 사업의 전면 재검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미 결정된 국책 사업이라 하더라도 잘못된 결정이라면 객관적인 재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신공항의 필요성은 물론이고 부.울.경이 지지하는 가덕도나, 대구·경북이 미는 밀양이나 모두 후보지로서 나름대로의 합리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해 공항 확장안은 박근혜 정부가 세계적 전문기관의 용역을 거쳐 내린 결론이고 관련 지자체들이 모두 받아들인 결과다. 이를 총리실에서 재검증하기로 한 것은 정책 신뢰성을 훼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총리실 검증 결과 원안대로 결정되면 평지풍파 정도로 끝나겠지만 뒤집힌다면 지진이나 태풍 수준이 될 것이다. 이 문제가 공론화된 2006년 이후, 정권이 바뀌거나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논란이 벌어져 이미 논리보다는 지역간 감정싸움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 까 합의문이 나오자마자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심히 유감이며 개탄스럽게 생각한다”고 반발했다. 또한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도 "대구·경북이 배제된 김해신공항 총리실 검증 합의는 절차적 정당성이 없으므로 무효"라며 "김해신공항 검증 총리실 이관 합의를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김해신공항 건설을 영남권 5개 단체장이 합의했으므로 백지화도 5개 단체장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권 유력 대선주자의 한 명으로 꼽히는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갑)조차도 "엄청난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하고 김해신공항은 영남권 5개 지방자치단체가 합의하고 정부도 동의해 결정된 사안으로 총리실이 일방적으로 깰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가균형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신공항 입지 결정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다는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지역간 합의를 이뤄내기는 커녕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민심과 국론의 소모적 분열만 키울 것이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책 사업을 다시 검토한다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함께 공사 지연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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