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식 편집국장

도널드 트럼프 美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한국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판문점에서 만나기 전 오전에 재계 인사들을 만났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권영수 LG그룹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그룹을 비롯해 한화, 두산, CJ, SPC 등 대기업 총수 20여명을 30일 오전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조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신동빈 롯데 회장을 비롯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삼성, 현대차, SK, CJ, 두산 등을 직접 언급하며 대미 투자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투자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투자해 준 한국 기업 총수들께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문을 연 뒤 "지금보다 (대미) 투자를 확대하기에 적절한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석한 대기업 총수들을 향해 "매우 훌륭한 분들" "천재와 같은 분들"이라고 표현하며 일부 대기업을 호명하며 총수들을 일으켜 세워 특별한 감사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는 대기업 총수들을 치켜세우는 '훈훈한' 간담회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기조를 재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미국은 지난 1분기(1~3월)에도 경제가 3%를 웃도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미 상무부는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연간 환산 기준 3.1%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발표된 잠정치와 같은 숫자로 로이터가 집계한 시장 전문가 전망치는 3.1%와도 동일하다. 지난해 4분기 미국 경제는 2.2% 성장했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 10년간 구가했던 최장기 호황을 넘어 이달 7월도 호황을 이어갈 경우 2009년 6월 이후 121개월 연속 경기 확장 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인 3.6%의 낮은 실업률로 곳곳에 일자리가 넘쳐나고 증시도 사상 최고치에 이르고 있어 일반 국민조차 미국 경제가 좋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경제 성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모토와 어울린다. 대통령은 한국의 기업들에게도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반면 한국경제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청와대는 거시 지표는 견고하다고 하지만 투자·고용·소비 어느 것 하나 경제 침체를 예고하지 않는 지표를 찾기 힘들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6~2.7%로 제시했지만 미·중 무역갈등과 반도체 업황 부진 등이 이어지며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4%를 기록하는 등 당초 예상보다 악화한 경제 상황에 성장률 전망 역시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국제통화기금(IMF)이 2.6%, 한국은행 2.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4%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18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0%로 5%포인트 내렸고, 골드만삭스도 같은 날 2.1%로 낮췄다. 노무라는 1.8%로 전망하기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수출입동향을 보면, 반도체 경기는 악화로 월별 수출액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5월까지 6개월 연속 감소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6월 1~20일 수출액이 전년동기 대비 10.0% 감소한 272억700만달러를 기록, 이변이 없는 한 7개월째 수출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는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0%를 기록하며 위축이 이어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소비 위축이 컸던 지난 2015년 2~11월 이후 최장 기간 0%대 기록이다. 5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019억7000만달러로 2개월째 감소했다. 4월 경상수지는 6억6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 4월 이후 7년 만의 적자다.


현 정부의 경제 인식은 “성장에 치중하는 동안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발전된 나라들 가운데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되어 있다는 문 대통령 연설에 집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재난적 양극화”에 처해 있거나, 소외 계층을 양산하며,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 독점됐다는 걸 보여주는 믿을만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종 지표들은 한국의 소득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중위권이거나 양호한 편이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가 고도성장을 하던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소득 격차는 좁혀져 왔으며, 외환위기를 전후한 15년을 제외하고는 직전의 두 보수 정권 아래에서도 양극화는 완화됐다.


지난 6월 수출액은 441억8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3.5% 감소하면서 수출이 7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세계교역 위축, 반도체 및 유화 관련품목 단가 하락 등으로 경제의 한 축인 수출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SNS를 통해 "여야정 모두 경제위기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운을 뗀 뒤 "위기라고 말을 꺼내면 듣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억장이 무너진다"고 글을 시작했다. 아울러 "중국, 미국 모두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어지며 제조업 제품의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우리는 여유도 없으면서 하나씩 터질 때마다 대책을 세운다"며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이어갔다.


실제로 이에 종합적인 전략을 갖고 대응해도 모자랄 판국에 땜질식 처방만 내놓는 정부 정책에 답답함을 호소한 것이다. 정부는 기업인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경제의 주체가 정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 올인하는 기업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기업인의 기(氣)를 살려주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인식과 우리 정부의 대응방식에 한탄하는 박용만 회장의 하소연에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베짱이들뿐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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