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자재 의존도 지나치게 높아…국내 산업 발전 계기 될수 있어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9일 일본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최한결 기자 | 일본 아베 정권이 우리나라 대법원이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을 두고 전범기업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판결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반도체 소재 3개를 규제하겠다고 지난 4일 발표했다. 주요 국가20(G20)이 끝난뒤 직후의 일이다.

수출제한된 3개의 품목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PR)’와 ‘에칭 가스(고순도 불화 수소)’로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들이다. 그중 특히 에칭가스는 일본에서 90%에 가까운 수입 의존도를 가지고 있어 규제가 펼쳐진 지금 가장 문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재계 간 간담회가 있는 10일에도 일본 출장을 이어갔다. 일본에서 타결책을 위해 누굴 만나는지, 대책이 준비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반도체 생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소재확보를 위한 행보로 알려졌다.

9일(현지시간) 개막한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이 부회장은 불참하고 일본에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선밸리 콘퍼런스는 미국 투자은행(IB) 앨런앤드코가 미 중서부 아이다호 주 선밸리 리조트에서 일주일간 개최하는 비공식 사교모임으로 세계 주요 ITㆍ금융ㆍ미디어 종사자 200~300여 명이 모이는 자리다.

수출 규제가 실시된 만큼 일본에서 에칭가스 등을 수입 때마다 일본 정부의 수출 허가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 90일가량이 소요될 전망이다. 규제가 실제로 이뤄진만큼 일본에서 수출하는 해당 품목들에 대해 일일이 일본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주요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허가를 내려주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러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지속되고 장기화되면 일본 자재의 지나친 의존도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對)일본 누적무역적자액이 710조원에 육박한다. 8일 한국무역협회(KITA)와 관세청의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1965년부터 지난해까지 54년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총 6046억달러(약 708조원)로 집계됐다. 일본과 무역을 할때 수입이 수출보다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그중 일본과 교역에서 적자가 큰 것은 기술력 문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 비정상적으로 몸집이 커진데 반해 소재·부품 기술력은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일 한국공학한림원이 주최한 ‘한국 산업의 구조전환:공학한림원의 진단과 처방’이라는 토론회에서는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해 위기감을 표하면서도 이 기회를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대기업 역시 원가와 이익 등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지 말고 핵심산업 육성 차원에서 국산 재료·부품·장비 사용을 적극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오경 공학한림원 회장도 “우리가 5년 내 산업구조를 개편하지 못하면 10년 후를 장담할 수 없다”며 중국의 ‘메이드 인 차이나 2025(중국제조 2025)’에 빗대 ‘인더스트리 트랜스포메이션 2030(산업전환 2030)’ 구상을 밝혔다. 공학한림원은 2020~2021년 단계적으로 발표하기로 ‘산업전환 2030’ 비전과 행동계획 수립을 앞당기기로 했다.

강인병 LG디스플레이 부사장은 "공급 과잉문제, 경기불황 등으로 올해 디스플레이 사업은 굉장히 어렵다"며 "특히 핵심 소재·부품은 국산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부사장은 "어려운 소재·부품에서 강한 나라가 되려면 긴 호흡을 가지고 투자해야 한다"며 "그동안 국가 연구개발(R&D)에서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대기업이 많이 배제돼 왔다"고도 했다. 그는 "디스플레이 전·후방에서 구심점이 되는 과제가 중요하다"며 "전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감독, 코치의 위치에서 국가 R&D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의 '불화수소 북한 반출 의혹' 제기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일본 수출 규제를 두고 WTO의 긴급 의지로 상정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가 WTO 이사회에서 입장 표명을 하느냐'는 질문에 "어제 제네바에서 우리가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현장에서 추가 의제로 긴급 상정을 했다"며 "(한국시간 10일 새벽쯤) 회의가 열리면 우리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백지아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는 WTO 회원국에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하나의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데다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자유무역 원칙에 반한 부당한 조치라는 점을 비판했다.

정부는 오는 23~24일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에서도 이 문제를 의제로 상정할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30대 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응책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오는 12일 일본과의 협의를 가지기전 기업 총수들과의 의견을 나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일본의 반도체 소재 규제)일을 우리 주력산업의 핵심 기술, 핵심 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특히 특정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적으로 피해를 받은 기업 중 일본의 반도체 소재 규제 조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 LG와 SK, 삼성에 발언권이 먼저 주어졌으며 발언은 비공개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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