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10명 중 4명 가정폭력 경험...신고 못하는 이유는 양육권과 체류권 때문

▲ 논란이 되고 있는 베트남 아내 폭행영상 SNS 캡쳐.

투데이코리아=편은지 기자 | 베트남 출신 아내 폭행 파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안전에 대한 법적인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각종 폭력에 노출된 이주여성들이 도움의 목소리를 낼만한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다문화가정 인구는 96만명에 육박하지만 이주여성들을 위한 가정폭력 상담소는 최근에야 생겨났다. 이들은 아이 양육 중 남편과 이혼을 원할 경우에도 체류 문제가 걸려 쉽게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 동영상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논란이 된 동영상은 베트남 출신 여성 A씨가 아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 B씨에게 폭행을 당하는 내용이었으며 영상 속 폭력 수위는 보는 사람도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끔찍했다. 해당 동영상은 아내 A씨가 상습적인 폭행을 견디다 못해 직접 휴대전화를 설치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B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주먹과 발, 소주병으로 아내 A씨를 수차례 폭행했다. 이 폭행으로 아내 A씨는 갈비뼈와 손가락이 골절돼 전치 4주를 진단받고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 또 두 살배기 아들에게 말을 듣지 않는다며 낚싯대로 발바닥을 때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영상이 확산된 후 B씨를 특수상해 및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체포했고 ‘도망의 우려가 있다’며 지난 8일 구속했다.

▲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

◇ 이주여성 10명 중 4명 ‘가정폭력’ 경험... 알려지는 것 창피해서 도움 요청 못해

국제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인 남편의 가정폭력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에는 재중동포인 아내의 늑골 4개가 골절되고 온 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폭행당했지만 남편은 1년 6개월 실형에 그친 사례가 있다. 또 2011년에도 베트남 아내가 남편에게 수십 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이 밖에도 이주여성의 폭력·피해 사례는 꾸준히 있어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발표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조사대상자 920명 가운데 가정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2.1%로 거의 절반에 달했다.

이들이 가정폭력을 당했음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가 25%로 가장 많았다. 이어 '누구한테 요청할지 몰라서'(20.7%), '아무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20.7%) 등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이들은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며, 안다 하더라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 체념한 상태다.

◇ 가정폭력 당했어도 이혼 못하는 이유, 양육·체류권 문제

하지만 이에 대한 제도 개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가정폭력 실태조사에는 ‘국제결혼 가정폭력’이 2010년을 마지막으로 포함되지 않고 있다. 또 대구에 위치한 ‘폭력피해 이주여성 상담소’는 지난 4월에야 처음으로 생겨났다. 국제결혼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한 1995년 이후 24년만이다.

전문가들은 이주여성들이 쉽게 이혼을 선택하거나 폭력피해를 신고조차 못하는 이유로 아이 양육과 체류권 문제가 가장 크다고 말한다. 이들의 체류권은 사실상 남편에게 달려있으며 이혼을 하고 한국에서 계속 체류를 원한다면 재판을 통해 남편의 잘못이 판결문에 명시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불거진 베트남 여성 폭행 사건에서 아내 A씨가 “한국에서 아이를 계속 양육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사건 또한 재판에서 남편의 잘못이 명시돼야만 아내 A씨는 아들과 한국에서 살 수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대표가 지난 1월 SNU 인권주간 인권강연에서 강연한 내용에 따르면 이주여성들은 본국의 대사관에서도 보호와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에 결혼 이주를 하는 나라들은 문화적 특성 때문에 결혼 이주에 대해 ‘나라를 배신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 다누리콜센터 홈페이지 캡쳐.

◇ 가정폭력 당했으면 경찰서·다누리콜센터에 주저 말고 신고해야

이주여성들의 가정폭력 신고는 여성가족부 산하에서 운영되는 ‘다누리 콜센터’에서 받고 있다. 가정폭력을 당했다면 주저할 것이 아니라 경찰서나 다누리 콜센터로 신고해야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누리콜센터는 365일 24시간 운영되고 있으며 온라인 상담도 가능하다. 또한 이주여성 전문상담원이 13개 언어로 상담을 지원한다.


다누리 콜센터의 연간 이용자는 2015년 11만6039명이었던 것에서 2018년 13만2115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다누리콜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면 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긴급피난시설과 의료·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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