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리스트에서 한일군사협정 파기까지...실리 외교가 중요

▲ 최한결 기자 (경제부)

최근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우리나라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반도체 사업에 큰 제동을 건지 한 달을 채워간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 3개 항목에 대해 화이트(백색)국가에 지원하는 특권을 없앤 후 다음 달 2일에는 한국을 우방으로 인정하지 않겠단 뜻으로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키로 한 것이다.

지난 4일 규제 발표 이후 약 4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이 제대로 된 답변을 준비해서 가져와야 할 것"이라고 으름짱을 낸 바 있다.

또한 지난 24일(현지시간) WTO 일반이사회에 정부가 파견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팀장은 "일본에게 즉석적으로 일대일 고위급 회담(대화)를 진행하자는 것에 일본이 답변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주 제네바 일본 대표부 이하라 준이치 대사는 "한국이 언급한 조치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진행된 점으로 WTO 의제로는 부적절하다"며 서로 상반된 입장을 되풀이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한 날은 다음달 2일이다. 3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다수 일본 언론 등은 다음달 2일 각의 결정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도한다"고 말했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이 내려지면 주무대신 서명과 총리 연서 등의 절차를 거쳐 다음달 말쯤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는 '일본은 앞에서 웃고 뒤에서 칼을 꼽는다', '일본은 믿지 못하는 나라'라는 여론이 거세게 불었다.


특히 지난 11일 유니클로의 대주주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오카자키 다케시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일본산 불매운동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안그래도 부정적인 여론에 불을 질렀다.

결국 페스트리테일링은 지난 22일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불매운동을 넘어 일본 여행 가지 않기, 일본산 대체제 구매하기부터 일본 기업을 분류해둔 인터넷 사이트(노노재팬)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한국에 들어온 일본기업이지만 우리나라의 국민들도 불매운동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점이다. 일본산 맥주가 불매운동의 여파로 팔리지 않자 편의점 점주들은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실제 CU에서는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가 발표된 지난 7월 1일부터 21일까지 일본산 맥주 매출이 전월 동기 대비 40.3% 줄어들었다.


재밌는것은 앞서 설명한 노노재팬의 개발자가 뉴스 인터뷰 중 사용하고 있던 사무실 내 키보드가 고가의 일본제로 밝혀져 비판을 받았다. 해당 키보드는 일본의 리얼포스사가 제작한 키보드로 한화로 약 30만 원 대였다. 개발자 본인은 이에 대해 부주의하였음을 사과하며, 다만 이미 사용하고 있는 일본제 제품을 버리는 것과 불매운동은 별개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국가간 개념은 더욱 희석된다. '스파이더 맨 파 프롬 홈'이 지난 2일 개봉하면서 불매운동에 포함되냐 아니냐 논란이 트위터에 일었다. 본사와 일하는 노동자가 미국에 있으니 미국 기업이다, 일본의 뿌리(자회사)를 두고 있으니 일본 회사가 맞다는 식의 논리다.

확실히 말하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배급사가 소니 픽쳐스로 일본의 기업이라고 봐야한다. 공식 홈페이지에도 "Sony Pictures Entertainment is subsidiary(자회사) of Tokyo-based Sony Corporation"라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기업의 국적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당장 대기업들만 보더라도 해외 지사가 많이 존재하며 다자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만큼 자유무역주의에서는 이러한 가치 판단을 조심해야 한다.

또한 이성적 판단이 우선돼야 하는 시점에서 감정적 대응으로 추가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게다가 일본에게 '괘씸죄'를 매긴다면 동북아시아의 중요 요충지인 한반도는 더욱 안보위기에 놓이게 된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다음달 2일 한국을 정말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면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파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지난 18일 정의당 대표는 “일본 정부의 무역규제는 한국을 안보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한국정부는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파기를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일본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는 지난 29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요시히데는 "양국 관계가 어렵지만 연대해야만 하는 과제는 굳건히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직위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발언에 대해 괘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일본의 대화 의지로도 엿볼수 있다.

미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연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국무부는 오는 8월로 종료되는 한일 군사정보협정에 대해 "재연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VOA를 통해 지난 18일(현지시간) 밝힌 바 있다.

이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침범하고 북한의 2발의 미사일 도발 등의 현 상황을 봤을 때 한·미·일간 긴밀히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기에 매우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우리나라는 민족성을 잃고 나라를 잃은 슬프고도 치욕적인 과거가 있다. 하지만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지난날 우리 민족이 외교적으로 얼마나 나쁜 선례를 만들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명(明)을 위한 명분만으로 실리를 져버려 청나라에 치욕적인 항복을 한 것도, 을사늑약이라는 잊을 수 없는 상처도 모두 실리보다는 명분에 중요시했던 외교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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