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중요한 정책 한 가지가 마련되었다. 대통령령으로 ‘적극행정 운영규정’과 ‘지방공무원 적극행정 운영규정’이 지난 7월30일 국무회의를 통과, 제정됐다. 필자는 이 제도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공무원이 절차에 따라 소신껏 적극적으로 일하다가 소속기관이나 정부에 손실 또는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와 함께 예산낭비를 줄이거나 좋은 정책효과를 낸 공무원에게는 보상하고, 책임을 모면하려고 소극적인 복무로 복지부동(伏地不動)하는 공직자는 처벌하는 규정도 마련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 같지만 우리 현실에선 매우 중요한 조치다. 뒤늦었지만 환영한다. 공무원들의 소극행정은 특히 이 정부 들어 만연해왔음을 이미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 원인은 이른바 적폐청산 ,과거정리, 지난정권 그림자 지우기 등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을 지나치게 처벌함으로서 복지부동 무사안일 소극행정을 불러왔다.


상사가 시킨 일, 그 당시 정부의 지침을 따라 행한 행정행위 등을 했다고 담당 공무원을 감방에 보내거나 문책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것도 실무 하위직에게 까지 책임을 물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상사가 업무 지시를 하면 휴대폰으로 녹음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관가에 파다하다. 그러다 보니 부하 말고 상사까지도 업무 대화를 녹음한다는 것이다. 훗날 있을지도 모를 후환에 대비하는 자구책이리라. 누굴 탓하기도 어렵다.


그런 분위기에서 무슨 적극적이고 소신 있는 행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이 만연하면 그 피해는 정권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에게 돌아온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최저임금 논란과 관련,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책의 후퇴(속도조절)를 가져온 것은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소극행정이 가져온 결과다. 정책을 주도한 청와대 참모들은 실제로 이상만 좋았지 현장감이 부족했다.


최저임금의 급속인상 직격탄을 맞은 분야는 자영업자들이다. 그런데 정책당국자들은 자영업 비중이 이렇게 큰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선(善)한 의지는 나무라기 어려우나 현장감 없는 정책수립과 집행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공직자 복지부동의 원인부터 찾아야

이 과정에서 일정 행정 공무원들의 ‘직무유기’가 있었다. 학자출신 비서들의 현장감 부재를 공무원들이 보완했어야 했다. 과거엔 그랬다. 그런데 이 정부에선 왜 안 그럴까. 이상주의자들은 공무원들이 이견(異見)을 내면 개혁에 미온적이라며 몰아세웠고, 또 잘못하면 훗날 책임져야 함으로 그냥 청와대 시키는 대로 한 것이다.


그래서 현장감을 정책에 반영하는데 역할을 해야 하는 일선 공무원들이 손을 놓아버린 결과다. 이 복지부동의 책임을 하위직 공무원에게만 돌리면 안된다는 반성이 이번 적극행정운영규정이 나온 배경일 것이다.

또 하나 소극행정의 원인을 찾는다면 해당부처 장관의 영(令)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 정책의 수립 집행의 사령탑이 장관이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고 청와대 참모들이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부처 공무원들이 열과 성을 다해 장차관을 보필할 필요가 없다. 정책추진에 장관 말이 안먹히고 뒤집히는 장관의 무력증(無力症)과 청와대의 독주가 지속되는 한 이런 폐해는 해소되기 어렵다.

정책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공무원을 “일개 사무관이..”라고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는 윗사람들의 자세는 실무 공무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청와대 고위당국자와 여당 고위층이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비난하는 귀엣말이 공개됐을 때에도 공직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사람들은 복지부동을 탓하기보다, 적폐청산 과정에서의 잘못이나 청와대 중심의 정책수행 때문이라고 여겼다.

복지부동을 초래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이번 대책은 방향은 옳다. 기관별로 실행계획을 만들어 시행토록 했다. 기관장의 역할도 강조됐다.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장관 역할이 지대하다. 그런데 장관의 롤에 제약이 많다면 영이 안선다. 장관에게 더 힘이 실려야 한다고 본다.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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