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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4주년 기념 인터뷰] 영웅 안중근 의사, 그의 유해를 찾아라

    안태근 ‘안중근 뼈대찾기 사업회’ 회장, 유해 장소 알아도 송환못해 恨
    기사입력 2019.08.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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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4_141725.png▲ 안중근의사기념관. 사진=유한일 기자
     
    투데이코리아=김충식 기자 | 대한민국이 독립한지 74년,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109년이 됐다. 우리는 해방을 했다고 광복을 했다고 외치지만 혹자는 “대한민국은 어린 아이가 청소년이 됐을 뿐,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말의 뜻은 국가는 독립을 했을지언정 민족의 정기와 정신을 찾지 못한 미성숙한 독립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상황을 본다면 더 무슨 말을 덧붙이랴.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을 했지만, 진정한 독립은 이루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그의 유해조차 돌아오지 못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위치를 몰라서? 아니면, 110년이나 지났으니 이젠 그 유해를 찾기가 힘들어서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뒤로하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아낸 이가 있다. 안태근 회장. 그는 EBS PD시절 <안중근 순국 백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았다.
     
    안 회장은 "중국 여순감옥 죄인묘지 2열에 묻혀있다"고 증언한다. 그의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또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지 안 회장을 만나 직접 물어봤다. <편집자 주>
     
    안중근 의사 유해, 중국 여순 감옥서 죄인 묘지 2열에 있다?!
     
    김충식 편집국장(이하 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는 사업을 시작하신지 10여년이 넘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바로 여쭙겠습니다. 그 동안의 성과가 있었습니까?
     
    안태근 회장(이하 안): 제가 2010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를 취재해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제보자들, 증언자들 중 생존해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고, 또 여러 문헌 자료들이 존재하고, 이 지역이 확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 계기가 수없이 많습니다. 증언자와 함께 (안 의사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을 가서 취재해서 보도했습니다. 정확히는 여순감옥 죄인묘지, 2열입니다.
     
    20190814_141755.png▲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을 가르키는 이국성씨.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김: 그 지역인 것을 어떻게 확신하셨습니까? 또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안: 저도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처음 2004년도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중국에 방문했는데, 외국인 출입이 안되는 지역이라 중국인처럼 변장을 하고 방문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안 의사 유해가 있다고 해서 야산지역을 갔는데, 너무 넓어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나절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2007년에 다시 그 묘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더 많이 자료를 찾고, 공부해서 갔는데도 찾을 수가 없어 안중근 연구가들의 인터뷰만 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2010년, 순국 100년이 되던 해에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 싶어 그동안 모아온 자료를 정리해 취재했습니다.
     
    20190814_141815.png▲ 故 김영광 의원의 안중근 묘지 참배자인 신현만 씨가 알려 준 메모. 여순 감옥 오른쪽으로 2열 제일 끝에 검정 칠한 부분이 안중근 의사의 묘자리라는 표시이다.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그때 故 김영광 의원을 만났습니다. 김영광 의원이 해준 얘기에 따르면, 김 의원이 옛날에 ‘안중근 묘 참배자 신현만’ 이라고 적힌 서명을 보고 전국의 신현만을 수소문해 만났답니다. 어떻게 된거냐 물으니, 신씨가 1943년에 수학여행을 갔다가 그 옆에 ‘안중근지묘’ 라고 적혀있는 목비와 무덤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 씨에게 그 위치가 어디였냐 하고 물었더니 지도를 그렸는데, 그 지도에 묘지를 표시하면서 ‘2열에 마지막이다’ 하고 썼답니다. 그리고 신현만 씨는 돌아가셨어요. 이 일이 있고 난 후 2009년에 중국 동포가 한 신문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안중근 유해가 어디있는지 안다고 했는데, 신현만 씨가 그린 지도와 일치합니다. 단 하나 틀린 것은 신현만 씨는 제일 끝에 묘지가 위치했다고 말했는데 이 사람은 중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2열인데 왜 틀릴까, 하고 생각해 보니 신 씨가 다녀온 시간과 이 사람이 다녀온 시간 사이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맨 끝의 묘가 가운데 묘가 돼버렸던 겁니다. 맨 끝의 묘 옆에 계속 새로운 묘가 생겼을테니까요. 이 발언이 오히려 더 신빙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과 다시 한 번 중국으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그 분께서 “여깁니다.” 하시는데 너무 흥분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현장을 다큐로 찍어서 2010년 3월 26일 방송에 내보냈죠. 이 뿐만 아니라, 안 의사가 어디에 묻혔는지 보고된 문건들, 신문기사들, 모두 생생한 증거들입니다. 그 당시 1910년에 매장된 사람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당시 신문기사에 ‘일본인 1명, 조선인 1명, 중국인 10명’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조선인 한 명이 안 의사입니다.
     
    20190814_141833.png▲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뭍힌 자리를 기억하고 알려주는 이국성 씨. "여기입니다"라는 그의 말에 안 회장은 "아!"라며 감탄과 탄식의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고 했다.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GPR 조사면 한나절이면 끝나
    안중근 의사 유해 증거는 통관, 십자가, 유리약병, 검정고무신과 약지
     
    김: 그렇다면, 현재 이렇게까지 위치가 정확히 파악된 건데, 우리 정부에서 의지가 있어서 가면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안: 지금은 싱크홀 때문에 GPR 조사가 상식화 돼있습니다. 2008년 당시 GPR이라는 개념이 없을 당시였고, 일반화 돼있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GPR 조사로는 땅속 몇백 미터까지 발견이 가능합니다. 또 그 당시 안 의사의 유해를 몇백 미터씩 파서 묻은 것도 아니고, 발견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또 4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일반 죄수들은 대나무통에 앉은 자세로 매장했어야 했는데, 안 의사를 그럴 수 없어 일반 사람이 쓰는 통관에 누워있는 자세의 유해로 묻혔습니다. 두 번째는,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였기에 항상 십자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일본인들이 그 당시 사형수의 이름을 유리약병 속에 써서 가슴과 다리 사이에 같이 묻었습니다. 그렇게 매장돼있기 때문에 안 의사의 유해에도 유리약병이 발견된다고 하면 확실하겠죠. 마지막으로, 지금은 훼손돼서 증거가 되긴 어려우나 안 의사의 단지된 약지나 검정고무신을 신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이건 시간이 너무 지났기 때문에, 증거로 채택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에 말씀드린 세 가지 단서는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러나 말씀 드렸듯이 안 의사의 정확한 유해 위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 제출해도 신빙성이 없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습니다. 자료는 너무나 많습니다. 인정을 하지 않아서 그렇죠.
     
    20190814_141852.png▲ 뤼순 감옥에서 사망한 자의 수. 1910년 사망한 조선인은 안중근 의사 한 명뿐이다.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김: 그럼 이렇게 정확하고 중요한 단서가 있는데, 이번 정권에서는 유해발굴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안: 정권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습니다. 이명박 정권 당시 잘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박근혜 정권 때도 양장본을 찍어 청와대에 갖다 드렸는데, 비서실에서 ‘책 잘 봤다’ 는 전화를 받았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PD 신분이고,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고, 자료가 많다보니 계속해서 보훈처에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자’고 제보를 했습니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에 자료를 항상 제공했었고, 매번 안됐습니다. 심지어 이번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자로서 유일하게 효창공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 의사 유해를 모셔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중국과의 사이도 좋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결하고 있지 못합니다. 설령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하더라도 못하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유공자 후손을 초청한 모임에서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을 시작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그 아래의 관련 부서에서도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가 삼일절인데, 삼일절이 하염없이 지나갔고, 벌써 광복절입니다. 이번 광복절에 안 의사 유해를 언급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국가가, 공무원들이 책임지고 해야 합니다. 온 국민의 염원이니까요.
     
    20190814_141920.png▲ 효창공원에는 안중근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제일 왼쪽)와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백정기 의사와 함께 삼의사 묘가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후 1946년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독립운동 3의사의 유해를 효창공원 내에 안장했고, 그 옆에 언젠가는 안치될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만들었지만 안 의사의 유해는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다. 사진=유한일 기자
     
    국가보훈처, 10여 년 전 잘못된 정보로 발굴
    국제 정세 및 외교 변화로 발굴 더 어려워져
     
    김: 발굴이 이렇게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 공무원들의 잘못입니다. 또 국가의 잘못입니다. 공무원들이 받고 있는 봉급을 생각하면 이럴 수가 없습니다. 2008년에 1차 발굴을 국가보훈처에서 시도했으나 성과가 없었습니다. 제보 받은 것을 토대로 발굴했지만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그 다음 유력한 매장 지역이 일본인이 만든 묘지구역인 동산파(東山坡) 지역이 있었는데, 그 구역을 그 당시에 바로 발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당시 보훈처에서 1차 발굴했던 발굴단들이 발굴에 실패하고 2차 발굴단을 꾸렸는데, 1차 발국던들과 같은 멤버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지목했던 곳이 아니라고 해서 다른 곳을 발굴해야 하는데, 또 할 의지가 있겠습니까? 1차 발굴팀을 제외한 다른 발굴팀들로 2차 발굴단을 꾸렸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당시 대국민 운동도 하고 호소도 했었죠. 하지만 아직까지 성사를 못 시키고 있는 정확한 이유는 저도 궁금합니다. 그때 했으면 되는 일인데 그 사이에 정세 변화도 있었고, 사드 등 외교적으로 변화도 많았습니다. 이미 일이 꼬여버린 것이죠. 그래서 저희가 (국가보훈처에) GPR(Ground Penetrating radar, 지표투과레이더)조사를 하자고 제안을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GPR조사가 없었지만, 지금은 GPR조사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사마저 이루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사실 무거운 십자가를 빨리 내려놓고 싶습니다. 또 이것은 온 국민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일을 (국가에서) 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11년째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20190814_141951.png▲ 2009년 4월 23일자 동아일보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은 뤼순감옥 동남쪽 300m지점 야산이라고 보도했다.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안중근 의사 유해 송환은 항일정신의 완성, 미완성한 대한독립의 정신적 완성과 성숙한 대한민국 되는 계기될 것”
     
    김: 내년이면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한 지 110주기가 됩니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안: 정확히는 내년 3월 26일이 순국 110주기, 올해가 의거 110주년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한국에 모셔와야 하는 것은 후손으로서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 몸 희생하셨는데, 그런 분을 조국에 모시지 못하면 후손으로서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안 의사의 유해를 모셔오는 것은 물리적인 유해 뿐 아니라, 우리의 민족혼을 되살리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가져오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공무원들의 의지 부족도 있습니다. 안 의사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이는 항일정신의 완성이요, 미완성한 대한독립의 정신적 완성까지 이룬 대한민국의 큰 정신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20190814_143243.png▲ 김충식 편집국장(왼쪽)과 인터뷰하는 안태근 회장(오른쪽). 안 박사는 "안 의사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이는 항일정신의 완성이요, 미완성한 대한독립의 정신적 완성까지 이룬 대한민국의 큰 정신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유한일 기자
     
    김: 개인적으로 활동하시다가 나중에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를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동기가 궁금합니다.
     
    안: 2010년에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취재하고 입수한 자료들을 보훈처에 제보했습니다. 그런데 보훈처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것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담당자의 의례적인 답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포기하지 않고 매달 제보 했습니다. 한 반 년 정도 제보했을까요? 전화를 한통 받았습니다. ‘되려는 모양이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무관 왈, “안 선생님, 아니라는데 왜 그러세요?” 합니다. 그래서 ‘아, 이분들은 할 의지가 없구나’ 싶었습니다. 일반 시민이 어디서 들은 제보도 아니고, 저는 전문직 PD로서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안 의사에 관련한 다큐를 여러 편 만들었고, 자료 제공을 꾸준히 해왔던 사람입니다. 저를 불러서 얘기를 들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말을 저한테 하면 안되는 거거든요. 저는 꾸준히 제보한 대가로 외면을 당했습니다. 그 때 ‘이럴 순 없겠다, 범 시민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허윤석 신부님을 뵙게 됐습니다. 허 신부님이 제게 “이 일은 안 선생님 혼자 하실 일이 아닙니다. 같이 합시다” 하시더라고요. 이 과정에서 유해찾기, 유해발굴과 같은 단어는 식상하다는 생각에 순우리말인 ‘뼈대찾기’로 사업회 이름을 작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출범하게 된 것이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입니다. 이후 모임에 조직원들이 하나둘 모였고, 저희는 가는 곳마다 전단지와 포스터를 돌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돌린 전단지와 포스터가 10만 장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때 저희 사업회에서 유해발굴을 독자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부만을 믿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물론 결론적으로는 말씀드렸다시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실감했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20190814_143353.png▲ 안태근 회장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지 110주기를 맞는다며 올해는 꼭 정부가 나서서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오는데 앞장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유한일 기자
     
    김: 안 회장님 말씀에 따르면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안 회장님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안: 저 역시도 계획은 있지만 국가라는 장벽에 막혀있습니다. 사실 제가 2017년 6월에 제 사비를 들여서라도 유해 발굴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순일·러 감옥구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관장을 만났고, 그분이 허가를 해주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베이징 중앙정부에 가서 얘기하라고 하더군요. 제가 시진핑 주석을 어떻게 만나겠습니까? 이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외교부가,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인 겁니다. 개인이 하고 싶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또 제가 거기서 GPR조사를 한다고 하면, 바로 주민 신고가 될 겁니다. 거기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충분한 신고 사유 일텐데, 수상한 장비를 가져와서 조사하면 더더욱 이상한 거죠. 제 한 몸 희생해서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외교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발굴이 돼서 환국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방금 하신 말씀이 현 정부에 하고 싶은 말씀이라고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안: 그렇죠. 제가 이렇게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고, 몇 번이나 제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저를 불러서 면담하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할 의지가 있다면 저를 불러서 계속해서 자료를 요구하고, 물어봤을 텐데 말입니다. 의지가 없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마저도 안하면 누가할지...
    안중근 유해(뼈대) 찾기는 될 때까지 해야
     
    김: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안: ‘저는 이제 힘들어서 못합니다’라는 말을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마저도 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요. 국가는 제가 “해야한다!”고 제보하고 소리쳐도 안 하는데, 저마저 잠잠해지면 어떡합니까. 저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안 의사 직계후손은 아니지만, 제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안 하려는 사람들의 핑계는 너무 많습니다. ‘오래돼서 찾을 수 없다’부터 ‘비가 와서 휩쓸려갔다’던지… 다큐멘터리에도 차마 담을 수 없었던 다양한 핑계가 있었습니다.
     
    김: 말씀하신 것처럼, 직계후손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안: 말씀드린대로 저는 직계후손이 아닙니다. 제 이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시는데 제 이름은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살아 생전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안 의사와 안 의사 아버지 이름인 안태훈에서 한자씩 따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적부터 안중근 의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1990년에 안 의사에 관련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하면서였습니다. 2004년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2007년 <청사초롱과 홍등>과 같은 다큐로 안 의사에 대해 중국에서 취재를 했습니다. 또 2010년에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를 찍으면서 전력투구 했었죠. 어린이 드라마인 <대한국인 안중근>, 2011년 <대륙에 떨친 우리의 민족혼>도 있었고요. EBS 재직시절 천 여편에 달하는 다큐멘터리, 드라마, 종합프로그램, 특집을 제작하고 그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아는 만큼 만드는 거니까요. 그래서 일지, 제게는 사명감이 생겼고 숙명적인 일이 돼버렸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발굴이 되거나 제가 죽거나 해야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여든이 돼도 유해 발굴이 되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하겠습니다. 물론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말입니다.
     
    20190814_151612.png▲ 안중근의사기념관.
     
    마치며...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안중근 의사는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지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무려 6회에 걸쳐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일본인들에 의해 형식적으로 진행된 것이었고, 결국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죽음을 앞둔 안중근 의사에게 모친 조마리아 여사는 위와 같은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안 의사는 항소를 진행하지 않았고, 옥중에서 ‘동양평화론’과 ‘안응칠 역사’를 저술하며 의연하게 최후를 기다렸다. 안중근 의사는 후세에 거사의 진정한 이유를 전하기 위해 ‘동양평화론’ 집필에 심혈을 기울이며, 이를 끝낼 때까지 만이라도 사형 일자를 연기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제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셨다.
     
    20190814_143542.png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國權)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하여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을 세우고 업(業)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아우들에게 전한 유언.
     
    대한민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독립운동한 안중근 의사. 그의 뜻대로 우리 국권은 회복됐지만, 우린 아직 안중근 의사의 유언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20190814_142259.png▲ <안태근 회장> 現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회장, 호남대 문화산업경영학과 교수 역임.
     
    인터뷰 : 김충식 편집국장 
    사진 : 유한일 기자
    정리 : 편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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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코칼럼
  • [권순직 칼럼] 예산은 정권의 철학(哲學)이다
  • 권순직 논설주간|2019-08-16
  • 내년 나라살림을 짜는 시기가 도래했다. 예산 편성 규모와 내용 방향을 놓고 벌써부터 정치권의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정부와 예산 관련 당정 협의회를 갖고 내년 예산을 최소 510조원 이상으로 편성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일부에서는 530조원 대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예산 469조원보다 최대 60조원을 늘리라는 요구다. 각 부처가 요청한 내년 예산 498조원에 비하면, 510조원일 경우 10조원, 530조원일 경우 무려 30조원을 증액하자는 것이 여당 측 요구다. 예산당국은 내년 예산증가율을 한 자릿수인 9.5%로 잡았으나 여당은 두 자릿수를 주장하는 셈이다. 여당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내년 예산은 초(超)수퍼 예산이 된다. 재정건전성과 경기 동향 등을 감안해 기획재정부는 무리한 확장예산에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요구에 어떻게 맞설지 주목된다. 문재인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 자리에서 “현 경제 상황에서 재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정책의 의지가 예산을 통해 분명히 나타나도록 준비를 잘해 달라”고 지시했다. 확장재정을 주문한 것이다. 예산에는 정권의 철학이 담겨있다. 통치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정권에 국가 경영을 위임했다. 그러므로 5년간 정권을 담당한 정부가 그들의 통치 철학에 맞춰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들이 국민에게 제시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대부분 예산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러나 국민들이 국정을 위임했다지만, 예산편성이나 국정 운영에 있어서 방향이 틀렸다고 보거나 규모 등에 있어서 이의가 있다면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 또한 당연한 권리다. 예산의 경우 규모가 적절한지, 국민경제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인지, 그 내용은 타당한지 등을 따지는 일은 국민과 국회의 의무다. 따져 보아야 할 사항들 우선 규모다. 여당측이 주장하는 510조원과 530조원이 적절하고 국민들이 감내할 만한 수준인가. 국내외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국면에서 재정의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규모가 문제다. 정부는 정권초기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짜면서 2022년까지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을 7.3%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올해예산 469조원은 작년보다 9.5% 늘었다. 내년에 두 자릿수로 늘린다면 당초 계획을 크게 벗어난다. 다음으로 팽창예산이라면 국민경제가 버텨낼 수 있느냐이다. 예산이 지출이라면 주 수입은 세금징수액이다. 세수가 심상찮다. 작년까지 만도 반도체 호황 등으로 세수가 좋았지만, 올들어 상반기 총국세수입은 156조2000억원으로 작년동기보다 1조원이 줄었다. 국내외의 경제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고, 한일간의 무역 갈등에다 미국과 중국간의 분쟁 등 어느 곳을 보아도 경제가 좋아져서 세금이 더 걷힐 것 같지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증가율을 두 자릿수로 높이는 게 타당한지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나친 예산 증가는 재정건전성에 문제를 가져온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6% 수준으로 건전한 편이다. 그러나 계속 팽창예산을 편성한다면 마지노선으로 여겨온 40%를 넘길 수 있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이 40%를 지키려 노력해왔다. 그러던 것이 이 정부 들어 “도대체 40%가 마지노선이라는 근거가 뭐냐”면서 확장재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이 40%라는 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지켜나가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선을 무시해버리면 뒷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애써 지켜온 것이다.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가 또한 중요한 문제다. 대통령 말씀대로 경제상황이 엄중하니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정을 통해 갈수록 낮아지는 잠재성장 동력을 회복시키고, 미래 먹거리 산업을 창출해나가는 방향이 바람직하고 시급한 과제다. 그런 쪽으로 간다면 환영이다. 다만 선심성 복지나 총선용이 주축을 이룬다면 포퓰리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과 임시방편적인 일자리창출 등 실패한 정책을 뒷감당하는 쪽으로 예산이 대거 투입된다면 문제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혼란스러운 가짜(경제)뉴스 논쟁 경제 상황을 놓고 벌이는 ‘가짜뉴스’ 논란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정부쪽에서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야당이나 일부 언론의 태도를 가짜뉴스라고 비판한다. 반면 야당이나 언론에서는 정부가 자기 입맛에 맞는 통계만 인용하며 ‘고용사정도 호전되고 경제체질도 튼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가짜뉴스라고 맞서는 형국이다. 참 한심한 논쟁이다. 최저임금 등살에 문을 닫는 자영업자, 일자리를 잃은 알바생들, 52시간 근무로 쉬는 날은 늘었지만 월급봉투가 얇아진 샐러리맨, 허드렛일 알바 성격의 노년층 일자리 증가 말고는 고용사정이 날로 나빠지는 30,40대의 고충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국민들은 다 아는데 경제체질이 튼튼하다고 우기는 일은 좀 구차스럽다. IMF외환위기 직전 정부 경제정책 당국자들의 “우리 경제 펀더멘털은 건전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 [박현채 칼럼]부작용 있더라도 집값만은 잡겠다
  • 박현채 주필|2019-08-09
  • 정부의 당초 방침대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다. 오는 12일 당정 협의를 거쳐 세부 시행계획을 확정 발표하고 입법예고 등 후속 작업을 거친 뒤 시행에 나설 계획이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로 경제가 어려운데 민간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한다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부정적인 입장이 여권 등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되면서 상한제 시행이 상당기간 뒤로 미루어 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이미 세부안을 확정하고 이를 강행하기로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 집값이 지난달 초부터 오름세로 반전되는 등 불안 조짐을 보이자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에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가 왔다”고 공론화했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성장률 하락과 함께 주택 값도 크게 떨어졌던 사례가 보여주듯, 대내외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고 성장률이 하락할 때는 "부동산도 안전할 수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제동이 걸리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금'값이 6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고 미 달러화 매집이 늘어나는 등 안전자산으로 돈이 쏠리고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마저 높아지자 집값도 크게 오르지 않을 까 하는 우려가 대두되면서 정부가 강행 쪽을 선택했다. 국토부는 그동안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보증을 무기로, 민간아파트 분양가가 과도하게 높아지지 않도록 간접 통제해 왔다. 그러나 HUG를 통한 분양가 통제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크게 뛰었다. 지난 5월 말 서울의 새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2574만원으로 지난 1년간 상승률이 12.54%나 됐다. 같은 기간 중 서울 기존 아파트 값이 1.96% 오른 것에 비해 6배 넘게 급등했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아예 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아파트를 80%이상 지은 뒤 분양하는 이른바 후분양을 선택하는 편법까지 등장, 서울 강남권 재건축 조합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후분양을 하면 HUG의 보증이 필요 없어 조합 측이 분양가를 임의로 높이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서울 삼성동이나 반포동 등 강남권 주요 지역의 경우 3.3㎡당 6천만~7천만원대 분양이 가능해 진다. 이는 현재 HUG가 요구하는 강남권의 종전 최고 분양가 수준인 ‘3.3㎡당 4500만원 이내’와 비교할 때 훨씬 높다. 분양가 상한제는 주택을 분양할 때 택지비와 건축비에 건설업체의 적정 이윤을 보탠 가격을 산정한 뒤 그 가격 이하로 분양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현행법상 지금도 시행이 가능하다. 다만 적용 요건이 까다로워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일 뿐이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주택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까다로운 요건을 완화, 공공택지처럼 민간 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가 광범위하게 시행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 제도는 주변 시세에 상관없이 분양가를 크게 낮출 수 있어 단기적으로 집값을 억제하는 효과가 무척 크다. 또한 높은 분양가가 주변의 기존 집값을 끌어올리고, 오른 집값이 다시 분양가에 반영되는 악순환의 고리도 끊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주택 공급 위축이 우려된다. 택지를 보유한 건설사나 재건축·재개발 사업자들이 분양가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사업을 연기하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참여정부가 2007년 민간 아파트에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자 3년 후 분량 물량이 10만 가구 이상 감소한 적이 있다. 또한 가격 통제로 청약에 당첨된 이들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차익을 누리게 되는 이른바 ‘로또 아파트’가 양산되고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꾼이 급증할 수 있다. 이밖에 값싼 자재를 사용하는 등 주택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민간 분양가 상한제가 사문화한 것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불거지면서 2014년에 시행요건이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데도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확대 시행하기로 한 것은 부작용이 예상되더라도 더 이상 집값 상승만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하겠다. 당장의 집값 안정을 위해서라면 미래의 장기적인 공급 물량 감소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미다. 사실 집값은 뛰기 시작하면 가수요가 발생, 거품을 키우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조기 차단이 무척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렵사리 구축해 놓은 집값 안정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특히 지금은 집값 오름세가 재연될 최적의 환경이 조성돼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부동산 전문가 106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1년 뒤 집값이 오를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가 53.8%로 절반이 넘었다. 불과 3개월전 조사에서 59.4%가 “내릴 것”이라던 예측과 정반대 결과다. 이는 단기 부동자금이 1100조원을 넘어선 상태에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데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해 최근 집값이 많이 오른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 한해 이 제도를 시행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함께 투기꾼 급증을 막기 위해 전매 제한 기간 강화 방안도 함께 내놓을 방침이다. &lt;투데이 코리아 주필&gt;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 [데스크 칼럼] 故 이민화 이사장을 기리며
  • 김충식 편집국장|2019-08-06
  • 지난 3일 이민화 창조경제 연구회 이사장(KCERN, 카이스트 교수)가 향년 66세로 영면에 들었다. 故 이민화 이사장은 ‘벤처’의 아버지라 불렸다. 그는 198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실험실에서 같이 연구하던 동기들과 함께 의료기기 제작 전문 벤처기업인 ‘메디슨’을 창업했다. ‘벤처’라는 말 자체가 메디슨이 생기면서 처음 생겨난 말일 정도로 그는 벤처업계의 대부였다. 메디슨에서 최초로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해 벤처기업으로는 처음으로 500만 달러 수출을 돌파한 것이 1991년이었다. 이 이사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1995년 벤처기업협회(KOVA)를 설립해 2000년까지 회장을 지냈다. 그는 기술을 가진 우량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장외시장에 상장, 공모, 증자를 할 수 있게 허용해야한다는 내용을 담은 ‘벤처기업 육성방안’을 발표해 관련제도를 바꿔놓았다. 이러한 안을 바탕으로 1996년 메디슨을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이 이사장은 당시 “벤처기업 자금난 해결 위해 기술이나 아이디어 등 ‘지적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해 1997년 벤처기업 육성을 명시한 '벤처기업특별법'이 제정되는 데 기여했다. 또 “21세기 급변하는 지식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영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세계 최고의 기업가 정신을 가진 한국의 벤처기업들은 분명 21세기 한국 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2000년에는 한국기술거래소를 설립해 초대이사장으로 부임했다. 이어 2009년 KCERN(창조경제 연구회)을 설립하여 창업자연대보증 폐지, 기업가정신 교육, 공인인증서 폐지, 코스닥 분리, 크라우드 펀딩, 기술 금융 전략, M&amp;A 활성화, 핀텍 규제 해소 등 주요 국가혁신 정책에 기여했다. 또한 2009년 6월부터는 모교인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으며 같은 해 7월부터 11월까지는 초대 기업호민관을 맡았다. 그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끝까지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특히 이민화 이사장은 “4차산업혁명은 데이터 클라우드 혁명”이라며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려면 “대한민국은 클라우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공공데이터는 물론 민간데이터도 규제로 클라우드에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AI 예측을 위해 활용한 데이터가 없어 데이터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려면 '데이터 쇄국주의'가 아니라 '데이터 균형주의'로 가야한다. 공공 데이터는 원칙적으로 개방하고 개인정보 통제와 활용은 균형을 맞춰야 한다. 네거티브 데이터 규제로 전환해 개인정보 자율과 책임을 부여해야 4차 산업혁명에 맞는 데이터 인프라를 갖춘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왜 클라우드 중심의 4차 산업혁명으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가 살펴보면, 놀랍게도 국가가 서버 기반에서 클라우드 기반으로의 전환 장벽임이 드러난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한국의 공공기관에는 보안 명목으로 클라우드 사용이 금지돼 조직 내부는 물론 국민과도 차단돼 있다. 국가 경쟁력이 추락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가 공공기관의 클라우드 차단이라고 단언한다. 4차 산업혁명은 클라우드 데이터 혁명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그는 자신의 SNS에서 ‘데이터 족쇄 풀기 서명운동’도 실시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대표 혁신으로 불리는 공유경제에 대해서도 규제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국토교통부가 여객운송시장에서 플랫폼산업으로 공유경제를 펼쳐가던 ‘타다’ 서비스에 대해 합법적인 영업을 하려면 택시면허 취득(6000만~7000만 원)을 하도록 한 것과 관련 SNS를 통해 “한국의 4차산업 혁명은 물거품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은 공유경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다 갈등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은 망국적 조치다. 데이터와 클라우드 규제에 이어, 공유경제 갈등해소 역량부족은 한국을 4차산업 혁명 경쟁에서 탈락하게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공유를 통하여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혁신을 촉발하여 사회적 가치창출과 가치분배를 선순환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 본질”이라며 “4차 산업혁명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하는 O2O경제의 급속한 확대로, 2030년이면 공유경제가 전세계 경제의 절반을 초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정부가 규제를 혁신하지 못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안타까워했다. 이제 그가 남긴 기업가 정신은 벤처인들과 젊은 스타트업 기업인들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격동의 시기를 맞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따끔하게 지적하고 더 발전해 갈 수 있는 대안을 만들고 직언을 해 줄 이가 사라졌다. 안타까운건 산업계와 벤처기업계를 대표하고 한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갈 인재를 잃었다는 것이다. 누구의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겠냐마는 변혁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현 대한민국을 바라보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이병태 교수(KAIST)는 SNS에 이렇게 적었다. “나라를 진정 사랑하고 걱정했던 이런 분들을 하늘이 일찍 소환하는 것을 보면 국운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김성기 칼럼] 10년 만에 다시 직면한 경제위기와 변화의 기로
  • 김성기 부회장|2019-08-06
  •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를 의미하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지난 1965년 한일 수교이후 양국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의 수출 규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강행하자 주식과 외환 등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충격파가 확산되고 국민 반발도 거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도발에 맞대응을 천명하면서 “다시는 일본에 지지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피해자 배상판결 이후 정부의 후속조치에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일본의 도발에는 결연한 대처가 마땅하다.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징용배상 판결을 이유로 강압을 가하는 일본에 밀려서는 안 된다. 아울러 일본 도발에 따른 피해가 당장 심각할 것으로 우려되므로 금융혼란과 연쇄 도산을 차단할 비상대책과 함께 경제체질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돌이켜 보면 1960년대 후반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한 이후 여러 차례 위기와 변화의 전환기를 겪어왔다. 1973년 1차 오일쇼크에 이어 79년 2차 오일쇼크로 중화학공업육성정책을 추진하던 경제가 엄청난 시련을 겪었고 유신정권 붕괴라는 정치적 태풍을 초래했다. 1987년에는 5공 정권의 철권통치에 맞선 시민항쟁이 일어나 자칫 유혈사태와 극한대립으로 악화될 지도 모를 상황에 직면했으나 국민과 정치권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민주화를 향한 대로를 열었다. 1997년에는 IMF 외환위기로 기업과 은행권의 부도가 속출하고 실업자가 넘치는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위기극복 위한 국민의지가 결집된 금모으기운동이 일어났고 여파로 당시 여당에서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수평적 교체가 처음으로 성사됐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도래했다. 국내경제에도 큰 파장을 미쳐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지만 IMF 외환위기를 이겨낸 국민적 의지와 정부의 친기업 정책, 규제혁파가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이번엔 소득주도성장과 주52시간 근무제 탈원전 등 정책기조의 급변으로 최저임금이 급등하고 중소상공인과 기업의 경영여건이 악화돼 지난해 이후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진 시기에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급소를 때렸다. 2차 오일쇼크를 기준으로 보면 대략 10년 내외를 주기로 경제위기나 변화의 충격파가 다가오는 셈이다. 이른바 ‘10년 주기 위기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부터 공공연히 나돌기 시작한 위기설이 아니라도 한국경제는 지금 안팎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거센 파고에 직면해 있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기업투자와 생산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수출마저 감소세가 이어져 경제성장이 위축된 시기에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배제 결정이 나왔다. 올해 경제성장이 1%대로 떨어져 2009년 이후 최저치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엄혹한 난관이 다가오는 시기에 정부 방침에 이의를 달면 친일파라는 식으로 매도해 국민을 겁박하고 친일과 반일 2분법으로 줄세우려는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 발언은 오히려 국익에 반하는 이적행위다. 더구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반일감정을 고조시켜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구상은 경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어 심각한 정치적 역풍을 불러올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정부는 3일 소재 부품 장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예산과 금융 등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당연히 추진해야 할 대책이지만 기술격차를 감안하면 빠른 시일 안에 이들 산업을 제대로 육성해 일본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대체수입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한 비상대책을 세심하게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기조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노조와 시민단체의 요구에 휘둘려 탈원전이나 소득주도성장 등 반기업적 정책에 집착하는 한 국난 극복은 요원하다. 정부가 기술개발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혁파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노조와 시민단체의 과도한 요구는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국정의 최우선 목표가 이념이 아니라 안보와 경제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부 여당의 행보에서는 아직 변화의 조짐을 읽기가 어렵다. 소 잃은 뒤에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할 텐데 이마저 시기를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lt;투데이코리아 부회장&gt;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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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기자수첩] 부끄러운 줄 모르는 그들의 ‘친일가’
  • 권규홍 기자|2019-08-13
  • 지난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 아베 내각은 수출규제 조치라는 카드를 꺼내 들어 사실상 우리나라에 대해 경제 전쟁을 선포했다. 국민들은 이에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전개했고, 일본 관광을 취소했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는 자매결연 도시로 지정된 일본의 각 도시와의 교류도 중단하며 일본 정부의 대응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 이후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계속 이어졌고,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조치를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의 보좌관인 에토 세이이치는 지난1일 한국 국회의원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올해 71세인데 한국에 한 번 가봤다. 과거 일본인들이 매춘 관광으로 한국을 많이 갔는데 그런 걸 싫어해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조사 과정에 참여했지만, 불법적인 정황을 찾지 못했다”고 하여 한국 의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또한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린 국제예술제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정부의 요구에 전시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우리 국민의 반일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그릇된 망언은 일본 정치인들에게서만 나오진 않았다. 극우단체인 엄마부대의 주옥순 대표는 지난 1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사죄해야한다”고 말해 시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또한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반일 종족주의 ’를 통해 “일제의 식민지배 기간에 강제 동원이나 위안부 성 노예는 없었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이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여야할 것 없이 비판이 제기됐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구역질이 난다”고 비판했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비상식적이고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다”고 평가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두통을 유발한다. 역사에 대한 자해행위”라고 비판했다. 계속되는 비판에도 이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으로부터 영업장소를 받아 업자와 수익 일부를 나누는 관계일 뿐이었다”라며 “피해자가 아닌 개인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고 거듭 주장하며 국민적 비판을 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일제치하 36년간 말도 못 할 굴욕을 겪었다. 일본 제국은 우리의 국토를 파괴했고, 수많은 문화재와 자원을 수탈했으며 국민들은 창씨개명과 동시에 강제로 일왕에게 충성을 강요당했고 민족정기는 철저히 유린당했다. 꽃다운 나이의 소년, 소녀들은 전쟁터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었고, 성 노예가 되었다. 일본으로 태평양으로 동남아시아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강제노역에 동원되었으며 제대로 된 임금 한번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직도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 한 번 받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본 정부의 생각을 동조하며 과거 일은 잊자고 주장하는게 과연 합당한 일일까?  과연 그들은 교단에서, 거리에서, 각종 강연을 통해서 대체 자라나는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일본 식민지배가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논리대로라면, 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기라도 하자는 것일까?  그들의 부끄러운 줄 모르는 망언 속에 사회적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 방송들은 이들의 발언을 열심히 전하며 “한국에서도 아베 내각의 수출규제조치에 동조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해나가며 일본 우익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들의 주장에 대해 “우리들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이후 민족정기 확립을 이루지 못한 후과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주변이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이웃 국가들로부터 수많은 압박과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오늘 날의 대한민국은 국가적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누구 때문이라고 얘기하기 전에) 국가적 위기 앞에서만이라도 하나로 일치단결된 국민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대한민국이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잘못된 식민사관을 바로 잡고 당장이라도 그들의 ‘친일가(親日歌)’를 중단시키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기자수첩] 불매운동 본질 벗어난 ‘유니클로 감시’
  • 유한일 기자|2019-08-07
  • 일본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나서며 촉발된 불매운동이 심상치 않다. 한국에 자리잡은 여러 일본 기업이 타격을 입은 가운데 일본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는 최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11일 유니클로 일본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 오자키 다케시 CFO(재무책임자)의 “한국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이 이번 유니클로 불매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유니클로 측은 두 차례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유니클로는 이번 운동의 대표 불매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불매운동이 시작된지 약 한 달째로 접어든 지난 2일 취재를 위해 찾은 유니클로 강남역점은 예상대로 한산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대로에 위치했고 3개 층을 쓰는 대형매장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외국인 손님들만이 진열된 의류를 보고 있는 정도였다. 매장은 둘러봤으니 현장 직원들에게 최근 상황에 대해 들어보려 했지만 예상 밖의 반응이 나왔다. 그들은 ‘불매운동’이라는 운을 떼자 “어떤 말도 해드릴 수 없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 매장의 다른 직원들도, 추가 취재를 위해 방문한 롯데월드몰점 직원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매장 한편에서는 직원들이 긴급회의를 하듯이 심각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 취재를 나가기 전 머릿속에 짐작가는 그림이 있었다. 최근 유니클로가 불매운동의 상징처럼 대두한 만큼 매장 내 손님들이 없는 모습은 예상대로 재현됐다. 하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뜻 밖이었다. 적어도 “평소보다 손님이 줄긴 했다”는 말 정도는 해 줄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장 직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최근 본사에서는 각 매장에 ‘매장에 대한 어떤 정보도 말해주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 본사 임원의 실언으로 여론이 악화돼 불매운동의 타깃이 된 만큼 언론 취재 등에 대응하지 않고 몸을 사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직원들은 기자의 신분 확인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는데 최근 유니클로 직원들과 방문객의 사진을 몰래 찍어 인터넷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시해 고발하고 조롱하는 이른바 ‘유니클로 감시’가 생겼다. 이를 자처하는 네티즌들은 인근 유니클로 매장을 찾아 사진을 찍고 ‘이상무’, ‘텅텅 비어있음’ 등의 멘트를 남기거나, 유니클로를 들어가 쇼핑을 하는 손님들을 촬영하고 ‘친일파’, ‘매국노’라고 폄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불매운동의 본질은 상대에 대한 ‘점잖은 항의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본 기업의 매출에 영향을 주고,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목적이 아니다. 우리의 이번 불매운동이 빛난 이유 역시 국민들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강제가 아닌 자발적 참여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감정적 공격을 펼친 일본과 달리 우리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응을 했다. 우리가 토요타 자동차를 안 타고, 아사히 맥주를 안 마시며, 유니클로 옷을 안 입는 이유만으로 당장 일본이 경제보복을 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다만 우리는 이번 자발적 불매운동을 통해 ‘한국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던 기업을 혼쭐내줬다. 나아가 비상식적 근거로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일본에 ‘한국 국민의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유니클로 감시’ 사례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여준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누군가를 매도하고 공격하는 양상으로 변질되는 순간 지금까지 다져온 내부 결속력이 무너지는건 시간문제다. 더욱이 누군가에게는 불매운동이 생계·생존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들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채 일방적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결코 미화될 수 없다.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향해 활을 겨누는 행동이 과연 애국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 불매운동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머리에 새기고 조금 더 성숙한 접근이 필요한 시기다.
  • [기자수첩] 일본산 불매운동, 그 피해자는 한국도 포함된다
  • 최한결 기자|2019-07-30
  • 최근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우리나라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반도체 사업에 큰 제동을 건지 한 달을 채워간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 3개 항목에 대해 화이트(백색)국가에 지원하는 특권을 없앤 후 다음 달 2일에는 한국을 우방으로 인정하지 않겠단 뜻으로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키로 한 것이다. 지난 4일 규제 발표 이후 약 4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이 제대로 된 답변을 준비해서 가져와야 할 것"이라고 으름짱을 낸 바 있다. 또한 지난 24일(현지시간) WTO 일반이사회에 정부가 파견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팀장은 "일본에게 즉석적으로 일대일 고위급 회담(대화)를 진행하자는 것에 일본이 답변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주 제네바 일본 대표부 이하라 준이치 대사는 "한국이 언급한 조치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진행된 점으로 WTO 의제로는 부적절하다"며 서로 상반된 입장을 되풀이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한 날은 다음달 2일이다. 3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다수 일본 언론 등은 다음달 2일 각의 결정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도한다"고 말했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이 내려지면 주무대신 서명과 총리 연서 등의 절차를 거쳐 다음달 말쯤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는 '일본은 앞에서 웃고 뒤에서 칼을 꼽는다', '일본은 믿지 못하는 나라'라는 여론이 거세게 불었다. 특히 지난 11일 유니클로의 대주주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오카자키 다케시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일본산 불매운동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안그래도 부정적인 여론에 불을 질렀다. 결국 페스트리테일링은 지난 22일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불매운동을 넘어 일본 여행 가지 않기, 일본산 대체제 구매하기부터 일본 기업을 분류해둔 인터넷 사이트(노노재팬)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한국에 들어온 일본기업이지만 우리나라의 국민들도 불매운동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점이다. 일본산 맥주가 불매운동의 여파로 팔리지 않자 편의점 점주들은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실제 CU에서는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가 발표된 지난 7월 1일부터 21일까지 일본산 맥주 매출이 전월 동기 대비 40.3% 줄어들었다. 재밌는것은 앞서 설명한 노노재팬의 개발자가 뉴스 인터뷰 중 사용하고 있던 사무실 내 키보드가 고가의 일본제로 밝혀져 비판을 받았다. 해당 키보드는 일본의 리얼포스사가 제작한 키보드로 한화로 약 30만 원 대였다. 개발자 본인은 이에 대해 부주의하였음을 사과하며, 다만 이미 사용하고 있는 일본제 제품을 버리는 것과 불매운동은 별개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국가간 개념은 더욱 희석된다. '스파이더 맨 파 프롬 홈'이 지난 2일 개봉하면서 불매운동에 포함되냐 아니냐 논란이 트위터에 일었다. 본사와 일하는 노동자가 미국에 있으니 미국 기업이다, 일본의 뿌리(자회사)를 두고 있으니 일본 회사가 맞다는 식의 논리다. 확실히 말하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배급사가 소니 픽쳐스로 일본의 기업이라고 봐야한다. 공식 홈페이지에도 "Sony Pictures Entertainment is subsidiary(자회사) of Tokyo-based Sony Corporation"라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기업의 국적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당장 대기업들만 보더라도 해외 지사가 많이 존재하며 다자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만큼 자유무역주의에서는 이러한 가치 판단을 조심해야 한다. 또한 이성적 판단이 우선돼야 하는 시점에서 감정적 대응으로 추가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게다가 일본에게 '괘씸죄'를 매긴다면 동북아시아의 중요 요충지인 한반도는 더욱 안보위기에 놓이게 된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다음달 2일 한국을 정말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면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파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지난 18일 정의당 대표는 “일본 정부의 무역규제는 한국을 안보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한국정부는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파기를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일본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는 지난 29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요시히데는 "양국 관계가 어렵지만 연대해야만 하는 과제는 굳건히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직위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발언에 대해 괘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일본의 대화 의지로도 엿볼수 있다. 미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연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국무부는 오는 8월로 종료되는 한일 군사정보협정에 대해 "재연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VOA를 통해 지난 18일(현지시간) 밝힌 바 있다. 이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침범하고 북한의 2발의 미사일 도발 등의 현 상황을 봤을 때 한·미·일간 긴밀히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기에 매우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우리나라는 민족성을 잃고 나라를 잃은 슬프고도 치욕적인 과거가 있다. 하지만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지난날 우리 민족이 외교적으로 얼마나 나쁜 선례를 만들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명(明)을 위한 명분만으로 실리를 져버려 청나라에 치욕적인 항복을 한 것도, 을사늑약이라는 잊을 수 없는 상처도 모두 실리보다는 명분에 중요시했던 외교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기자수첩] 혁신보다는 ‘총선’이 중요한가 봅니다
  • 김태문 기자|2019-07-23
  • 최근 국토교통부가 불법 논란을 빚던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자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해 운송사업 허가를 내주는 것을 골자로 한 ‘혁신성장과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제도 개편방안’(이하 상생안)을 발표했다. 제도적 틀 안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그 혜택은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상생안은 지난 3월 7일 정부와 여당, 택시업계, 모빌리티 업계 간에 이룬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첫 후속조치다. 하지만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느라 국민 편익은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오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택시업계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번 상생안으로 최대 직격탄을 맞은건 ‘타다’다. 상생안에 따르면 플랫폼 사업자는 일정한 기여금을 내야 제도권 안에서 영업을 허가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 돈으로 매년 일정 규모의 택시면허를 사들이고 플랫폼 사업자에게 배분할 계획이다. 사업에 진입할 플랫폼 사업자는 영업차량 대수만큼 택시면허를 사들이거나 대여해야 한다. 또 플랫폼 기사는 택시면허 보유자로 제한했다. 렌터카를 활용하는 방안도 이번 상생안에는 포함되지 않아 플랫폼 사업자는 차량을 직접 구입해야 한다. 렌터카를 금지한 이유는 택시업계의 반대 때문이다. 이번 상생안을 접한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플랫폼 사업자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려면 사실상 ‘택시회사’를 하나 차리라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타다를 운영하는 VCNC 박재욱 대표는 “기존 택시 산업을 근간으로 대책을 마련한 까닭에 새로운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은 더 높이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타다는 서울 등에서 약 1000여대의 승합차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이 차량들은 모두 VCNC의 모회사 쏘카에서 렌트한 것이다. 타다는 렌트카와 기사를 한 번에 제공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타다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쏘카의 차량을 매입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타다가 차량을 직접 보유할 경우 최소 300억원의 차량 매입 비용이 든다. 여기에 차량 수만큼 택시면허를 얻으려면 추가로 수백억원, 택시기사 자격증 보유 기사로 교체하는데도 상당한 추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정부는 이번 상생안 발표로 제도권에 들어오는 문은 열어줬지만 문턱은 더욱 높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금력을 확보한 업체만 운송사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기업에게는 진입장벽에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과연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신규 사업자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국토부가 내놓은 이번 상생안을 보면 정치적 목적이 담겼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정부가 연일 혁신을 외치는 것과 달리 시대를 역행하는 이러한 결과가 도출됐다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의 주요 표밭인 택시업계를 의식한 것이라는 의심이다. 현재 전국에서는 약 26만대의 택시가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평균 가구원수가 2.5명(통계청)인 것을 고려하면 택시업계는 약 65만표를 쥐고 있는 셈이다. 타다는 기껏해야 약 3만표, 모빌리티 업계 전체를 합쳐도 택시업계와 상대가 안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토부가 이번 상생안 발표 말미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아직 세부적인 룰은 정해지지 않았다. 렌터카 허용 여부도 추후 실무기구에서 의견을 수렴해 결정한다고 한다. 정부가 앞으로 있을 실무기구에서 소비자 편익을 우선으로 하고 혁신과 상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성찰해 보길 바란다. 정부가 말하는 상생이 총선을 앞둔 상황에 기존 이해관계의 손을 들어주고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라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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