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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4주년 기념 인터뷰] 영웅 안중근 의사, 그의 유해를 찾아라

    안태근 ‘안중근 뼈대찾기 사업회’ 회장, 유해 장소 알아도 송환못해 恨
    기사입력 2019.08.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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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4_141725.png▲ 안중근의사기념관. 사진=유한일 기자
     
    투데이코리아=김충식 기자 | 대한민국이 독립한지 74년,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109년이 됐다. 우리는 해방을 했다고 광복을 했다고 외치지만 혹자는 “대한민국은 어린 아이가 청소년이 됐을 뿐,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말의 뜻은 국가는 독립을 했을지언정 민족의 정기와 정신을 찾지 못한 미성숙한 독립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상황을 본다면 더 무슨 말을 덧붙이랴.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이의 연장선에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을 했지만, 진정한 독립은 이루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그의 유해조차 돌아오지 못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위치를 몰라서? 아니면, 110년이나 지났으니 이젠 그 유해를 찾기가 힘들어서일까? 이러한 궁금증을 뒤로하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아낸 이가 있다. 안태근 회장. 그는 EBS PD시절 <안중근 순국 백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았다.
     
    안 회장은 "중국 여순감옥 죄인묘지 2열에 묻혀있다"고 증언한다. 그의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또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지 안 회장을 만나 직접 물어봤다. <편집자 주>
     
    안중근 의사 유해, 중국 여순 감옥서 죄인 묘지 2열에 있다?!
     
    김충식 편집국장(이하 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는 사업을 시작하신지 10여년이 넘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바로 여쭙겠습니다. 그 동안의 성과가 있었습니까?
     
    안태근 회장(이하 안): 제가 2010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를 취재해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제보자들, 증언자들 중 생존해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고, 또 여러 문헌 자료들이 존재하고, 이 지역이 확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 계기가 수없이 많습니다. 증언자와 함께 (안 의사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을 가서 취재해서 보도했습니다. 정확히는 여순감옥 죄인묘지, 2열입니다.
     
    20190814_141755.png▲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을 가르키는 이국성씨.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김: 그 지역인 것을 어떻게 확신하셨습니까? 또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안: 저도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처음 2004년도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중국에 방문했는데, 외국인 출입이 안되는 지역이라 중국인처럼 변장을 하고 방문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안 의사 유해가 있다고 해서 야산지역을 갔는데, 너무 넓어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나절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2007년에 다시 그 묘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더 많이 자료를 찾고, 공부해서 갔는데도 찾을 수가 없어 안중근 연구가들의 인터뷰만 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2010년, 순국 100년이 되던 해에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 싶어 그동안 모아온 자료를 정리해 취재했습니다.
     
    20190814_141815.png▲ 故 김영광 의원의 안중근 묘지 참배자인 신현만 씨가 알려 준 메모. 여순 감옥 오른쪽으로 2열 제일 끝에 검정 칠한 부분이 안중근 의사의 묘자리라는 표시이다.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그때 故 김영광 의원을 만났습니다. 김영광 의원이 해준 얘기에 따르면, 김 의원이 옛날에 ‘안중근 묘 참배자 신현만’ 이라고 적힌 서명을 보고 전국의 신현만을 수소문해 만났답니다. 어떻게 된거냐 물으니, 신씨가 1943년에 수학여행을 갔다가 그 옆에 ‘안중근지묘’ 라고 적혀있는 목비와 무덤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 씨에게 그 위치가 어디였냐 하고 물었더니 지도를 그렸는데, 그 지도에 묘지를 표시하면서 ‘2열에 마지막이다’ 하고 썼답니다. 그리고 신현만 씨는 돌아가셨어요. 이 일이 있고 난 후 2009년에 중국 동포가 한 신문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안중근 유해가 어디있는지 안다고 했는데, 신현만 씨가 그린 지도와 일치합니다. 단 하나 틀린 것은 신현만 씨는 제일 끝에 묘지가 위치했다고 말했는데 이 사람은 중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2열인데 왜 틀릴까, 하고 생각해 보니 신 씨가 다녀온 시간과 이 사람이 다녀온 시간 사이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맨 끝의 묘가 가운데 묘가 돼버렸던 겁니다. 맨 끝의 묘 옆에 계속 새로운 묘가 생겼을테니까요. 이 발언이 오히려 더 신빙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과 다시 한 번 중국으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그 분께서 “여깁니다.” 하시는데 너무 흥분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현장을 다큐로 찍어서 2010년 3월 26일 방송에 내보냈죠. 이 뿐만 아니라, 안 의사가 어디에 묻혔는지 보고된 문건들, 신문기사들, 모두 생생한 증거들입니다. 그 당시 1910년에 매장된 사람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당시 신문기사에 ‘일본인 1명, 조선인 1명, 중국인 10명’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조선인 한 명이 안 의사입니다.
     
    20190814_141833.png▲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뭍힌 자리를 기억하고 알려주는 이국성 씨. "여기입니다"라는 그의 말에 안 회장은 "아!"라며 감탄과 탄식의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고 했다.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GPR 조사면 한나절이면 끝나
    안중근 의사 유해 증거는 통관, 십자가, 유리약병, 검정고무신과 약지
     
    김: 그렇다면, 현재 이렇게까지 위치가 정확히 파악된 건데, 우리 정부에서 의지가 있어서 가면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안: 지금은 싱크홀 때문에 GPR 조사가 상식화 돼있습니다. 2008년 당시 GPR이라는 개념이 없을 당시였고, 일반화 돼있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GPR 조사로는 땅속 몇백 미터까지 발견이 가능합니다. 또 그 당시 안 의사의 유해를 몇백 미터씩 파서 묻은 것도 아니고, 발견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또 4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일반 죄수들은 대나무통에 앉은 자세로 매장했어야 했는데, 안 의사를 그럴 수 없어 일반 사람이 쓰는 통관에 누워있는 자세의 유해로 묻혔습니다. 두 번째는,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였기에 항상 십자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일본인들이 그 당시 사형수의 이름을 유리약병 속에 써서 가슴과 다리 사이에 같이 묻었습니다. 그렇게 매장돼있기 때문에 안 의사의 유해에도 유리약병이 발견된다고 하면 확실하겠죠. 마지막으로, 지금은 훼손돼서 증거가 되긴 어려우나 안 의사의 단지된 약지나 검정고무신을 신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이건 시간이 너무 지났기 때문에, 증거로 채택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에 말씀드린 세 가지 단서는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 그러나 말씀 드렸듯이 안 의사의 정확한 유해 위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 제출해도 신빙성이 없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습니다. 자료는 너무나 많습니다. 인정을 하지 않아서 그렇죠.
     
    20190814_141852.png▲ 뤼순 감옥에서 사망한 자의 수. 1910년 사망한 조선인은 안중근 의사 한 명뿐이다.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김: 그럼 이렇게 정확하고 중요한 단서가 있는데, 이번 정권에서는 유해발굴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안: 정권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사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습니다. 이명박 정권 당시 잘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박근혜 정권 때도 양장본을 찍어 청와대에 갖다 드렸는데, 비서실에서 ‘책 잘 봤다’ 는 전화를 받았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PD 신분이고,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고, 자료가 많다보니 계속해서 보훈처에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자’고 제보를 했습니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에 자료를 항상 제공했었고, 매번 안됐습니다. 심지어 이번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자로서 유일하게 효창공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 의사 유해를 모셔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중국과의 사이도 좋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결하고 있지 못합니다. 설령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하더라도 못하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유공자 후손을 초청한 모임에서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을 시작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그 아래의 관련 부서에서도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가 삼일절인데, 삼일절이 하염없이 지나갔고, 벌써 광복절입니다. 이번 광복절에 안 의사 유해를 언급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국가가, 공무원들이 책임지고 해야 합니다. 온 국민의 염원이니까요.
     
    20190814_141920.png▲ 효창공원에는 안중근 기념관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제일 왼쪽)와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백정기 의사와 함께 삼의사 묘가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후 1946년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독립운동 3의사의 유해를 효창공원 내에 안장했고, 그 옆에 언젠가는 안치될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만들었지만 안 의사의 유해는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다. 사진=유한일 기자
     
    국가보훈처, 10여 년 전 잘못된 정보로 발굴
    국제 정세 및 외교 변화로 발굴 더 어려워져
     
    김: 발굴이 이렇게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 공무원들의 잘못입니다. 또 국가의 잘못입니다. 공무원들이 받고 있는 봉급을 생각하면 이럴 수가 없습니다. 2008년에 1차 발굴을 국가보훈처에서 시도했으나 성과가 없었습니다. 제보 받은 것을 토대로 발굴했지만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그 다음 유력한 매장 지역이 일본인이 만든 묘지구역인 동산파(東山坡) 지역이 있었는데, 그 구역을 그 당시에 바로 발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당시 보훈처에서 1차 발굴했던 발굴단들이 발굴에 실패하고 2차 발굴단을 꾸렸는데, 1차 발국던들과 같은 멤버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지목했던 곳이 아니라고 해서 다른 곳을 발굴해야 하는데, 또 할 의지가 있겠습니까? 1차 발굴팀을 제외한 다른 발굴팀들로 2차 발굴단을 꾸렸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당시 대국민 운동도 하고 호소도 했었죠. 하지만 아직까지 성사를 못 시키고 있는 정확한 이유는 저도 궁금합니다. 그때 했으면 되는 일인데 그 사이에 정세 변화도 있었고, 사드 등 외교적으로 변화도 많았습니다. 이미 일이 꼬여버린 것이죠. 그래서 저희가 (국가보훈처에) GPR(Ground Penetrating radar, 지표투과레이더)조사를 하자고 제안을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GPR조사가 없었지만, 지금은 GPR조사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사마저 이루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사실 무거운 십자가를 빨리 내려놓고 싶습니다. 또 이것은 온 국민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일을 (국가에서) 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11년째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20190814_141951.png▲ 2009년 4월 23일자 동아일보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은 뤼순감옥 동남쪽 300m지점 야산이라고 보도했다. 자료제공=안태근 회장
     
    “안중근 의사 유해 송환은 항일정신의 완성, 미완성한 대한독립의 정신적 완성과 성숙한 대한민국 되는 계기될 것”
     
    김: 내년이면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한 지 110주기가 됩니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안: 정확히는 내년 3월 26일이 순국 110주기, 올해가 의거 110주년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한국에 모셔와야 하는 것은 후손으로서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 몸 희생하셨는데, 그런 분을 조국에 모시지 못하면 후손으로서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안 의사의 유해를 모셔오는 것은 물리적인 유해 뿐 아니라, 우리의 민족혼을 되살리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가져오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공무원들의 의지 부족도 있습니다. 안 의사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이는 항일정신의 완성이요, 미완성한 대한독립의 정신적 완성까지 이룬 대한민국의 큰 정신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20190814_143243.png▲ 김충식 편집국장(왼쪽)과 인터뷰하는 안태근 회장(오른쪽). 안 박사는 "안 의사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이는 항일정신의 완성이요, 미완성한 대한독립의 정신적 완성까지 이룬 대한민국의 큰 정신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유한일 기자
     
    김: 개인적으로 활동하시다가 나중에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를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동기가 궁금합니다.
     
    안: 2010년에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취재하고 입수한 자료들을 보훈처에 제보했습니다. 그런데 보훈처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것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담당자의 의례적인 답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포기하지 않고 매달 제보 했습니다. 한 반 년 정도 제보했을까요? 전화를 한통 받았습니다. ‘되려는 모양이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무관 왈, “안 선생님, 아니라는데 왜 그러세요?” 합니다. 그래서 ‘아, 이분들은 할 의지가 없구나’ 싶었습니다. 일반 시민이 어디서 들은 제보도 아니고, 저는 전문직 PD로서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안 의사에 관련한 다큐를 여러 편 만들었고, 자료 제공을 꾸준히 해왔던 사람입니다. 저를 불러서 얘기를 들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말을 저한테 하면 안되는 거거든요. 저는 꾸준히 제보한 대가로 외면을 당했습니다. 그 때 ‘이럴 순 없겠다, 범 시민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허윤석 신부님을 뵙게 됐습니다. 허 신부님이 제게 “이 일은 안 선생님 혼자 하실 일이 아닙니다. 같이 합시다” 하시더라고요. 이 과정에서 유해찾기, 유해발굴과 같은 단어는 식상하다는 생각에 순우리말인 ‘뼈대찾기’로 사업회 이름을 작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출범하게 된 것이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입니다. 이후 모임에 조직원들이 하나둘 모였고, 저희는 가는 곳마다 전단지와 포스터를 돌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돌린 전단지와 포스터가 10만 장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때 저희 사업회에서 유해발굴을 독자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부만을 믿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물론 결론적으로는 말씀드렸다시피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실감했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20190814_143353.png▲ 안태근 회장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지 110주기를 맞는다며 올해는 꼭 정부가 나서서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오는데 앞장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유한일 기자
     
    김: 안 회장님 말씀에 따르면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안 회장님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안: 저 역시도 계획은 있지만 국가라는 장벽에 막혀있습니다. 사실 제가 2017년 6월에 제 사비를 들여서라도 유해 발굴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순일·러 감옥구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관장을 만났고, 그분이 허가를 해주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베이징 중앙정부에 가서 얘기하라고 하더군요. 제가 시진핑 주석을 어떻게 만나겠습니까? 이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외교부가,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인 겁니다. 개인이 하고 싶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또 제가 거기서 GPR조사를 한다고 하면, 바로 주민 신고가 될 겁니다. 거기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충분한 신고 사유 일텐데, 수상한 장비를 가져와서 조사하면 더더욱 이상한 거죠. 제 한 몸 희생해서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외교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발굴이 돼서 환국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방금 하신 말씀이 현 정부에 하고 싶은 말씀이라고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안: 그렇죠. 제가 이렇게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고, 몇 번이나 제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저를 불러서 면담하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할 의지가 있다면 저를 불러서 계속해서 자료를 요구하고, 물어봤을 텐데 말입니다. 의지가 없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마저도 안하면 누가할지...
    안중근 유해(뼈대) 찾기는 될 때까지 해야
     
    김: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안: ‘저는 이제 힘들어서 못합니다’라는 말을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마저도 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요. 국가는 제가 “해야한다!”고 제보하고 소리쳐도 안 하는데, 저마저 잠잠해지면 어떡합니까. 저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안 의사 직계후손은 아니지만, 제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안 하려는 사람들의 핑계는 너무 많습니다. ‘오래돼서 찾을 수 없다’부터 ‘비가 와서 휩쓸려갔다’던지… 다큐멘터리에도 차마 담을 수 없었던 다양한 핑계가 있었습니다.
     
    김: 말씀하신 것처럼, 직계후손이 아닌데도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안: 말씀드린대로 저는 직계후손이 아닙니다. 제 이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시는데 제 이름은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살아 생전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안 의사와 안 의사 아버지 이름인 안태훈에서 한자씩 따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적부터 안중근 의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1990년에 안 의사에 관련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하면서였습니다. 2004년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2007년 <청사초롱과 홍등>과 같은 다큐로 안 의사에 대해 중국에서 취재를 했습니다. 또 2010년에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를 찍으면서 전력투구 했었죠. 어린이 드라마인 <대한국인 안중근>, 2011년 <대륙에 떨친 우리의 민족혼>도 있었고요. EBS 재직시절 천 여편에 달하는 다큐멘터리, 드라마, 종합프로그램, 특집을 제작하고 그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아는 만큼 만드는 거니까요. 그래서 일지, 제게는 사명감이 생겼고 숙명적인 일이 돼버렸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발굴이 되거나 제가 죽거나 해야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여든이 돼도 유해 발굴이 되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하겠습니다. 물론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만 말입니다.
     
    20190814_151612.png▲ 안중근의사기념관.
     
    마치며...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안중근 의사는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지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무려 6회에 걸쳐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일본인들에 의해 형식적으로 진행된 것이었고, 결국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죽음을 앞둔 안중근 의사에게 모친 조마리아 여사는 위와 같은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안 의사는 항소를 진행하지 않았고, 옥중에서 ‘동양평화론’과 ‘안응칠 역사’를 저술하며 의연하게 최후를 기다렸다. 안중근 의사는 후세에 거사의 진정한 이유를 전하기 위해 ‘동양평화론’ 집필에 심혈을 기울이며, 이를 끝낼 때까지 만이라도 사형 일자를 연기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제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셨다.
     
    20190814_143542.png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國權)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하여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을 세우고 업(業)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아우들에게 전한 유언.
     
    대한민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독립운동한 안중근 의사. 그의 뜻대로 우리 국권은 회복됐지만, 우린 아직 안중근 의사의 유언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20190814_142259.png▲ <안태근 회장> 現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회장, 호남대 문화산업경영학과 교수 역임.
     
    인터뷰 : 김충식 편집국장 
    사진 : 유한일 기자
    정리 : 편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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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코칼럼
  • [박현채 칼럼] 무책임한 일본의 방사성 오염물질 관리
  • 박현채 주필|2019-10-18
  • 19호 태풍 하기비스로 인한 폭우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수거했던 방사성 오염 물질이 대거 태평양으로 흘러간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후쿠시마현 다무라시는 원전사고 후 오염 제거 작업과정에서 수거한 흙 등 방사성 폐기물질이 든 자루 가운데 폭우에 유실된 19개 자루를 발견해 17개를 회수했다. 그러나 이중 절반이 넘는 10개 자루의 내용물이 텅 빈 채로 발견됐다. 자루 속에 담겨있던 방사성 오염물질이 하천을 거쳐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국 등 인근 국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은 지난 15일 “회수된 폐기물은 용기가 파손되지 않아 환경에 대한 영향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국회에서 언급, 내용물이 사라졌다는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무책임의 표본이라는 국내외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이같은 허점이 드러나면서 일본 당국의 허술한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 환경성과 다무라시는 폐기물 자루 임시 보관장이나 자루가 유출된 하천 하류의 공간방사선량을 측정한 결과 변화가 없었으며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비교적 낮아 환경에의 영향은 적다”고 주장했다. 도쿄전력은 2011년 대지진에서 비롯된 폭발 사고 이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계속 탱크에 보관해 오고 있다. 폭발사고로 원자로에서 녹아내린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냉각수를 주입하면서 지속적으로 오염수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최소 179톤의 오염수가 유입되며 일주일에 2천~4천톤 정도씩 늘어난다. 올해 7월말 현재 980여개의 저장 탱크에 쌓여있는 오염수는 무려 115만톤으로 한국의 63빌딩을 모두 채우고도 남는 양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저장 탱크는 3년 뒤 포화상태에 이른다. 오염수의 증가는 저장 공간은 물론이고 처리기술 적용과 관리 등에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할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태평양 방류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아직 계획된 바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사실 오염수 처분 방법을 논의하는 정부의 소위원회가 13차례나 열렸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에서는 "영원히 탱크에 물(오염수)을 넣어 두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에 (바다에) 방류해 희석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면서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가 최선이라는 주장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담당 기관들도 오염수를 정화했기 때문에 안전성이나 과학적으로 괜찮다고 주장하며 이미 수년 전부터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가 가장 저렴하고 신속한 처리방법이라고 정부에 권고해 왔다. 문제는 오염수를 정화했다고 하나 여전히 삼중수소(트라이튬) 등 일부 방사성 물질들이 남아 있고 오영수가 앞으로도 수십년 혹은 그 이상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원자로 노심부가 녹는 노심의 용융으로 발생하는 오염수의 방사성 준위가 지금보다 높아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일본 정부는 60여 가지의 방사능이 포함된 오염수를 정화설비를 통해 정화했기 때문에 안전하다면서 오염수를 '처리수'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일부 물질 특히 삼중 수소는 정화를 한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약 27년의 반감기를 갖고 있는 삼중수소는 암이나 기형을 유발하는 물질로 알려진 있다. 일본도 지난해 9월 28일 탱크에 저장된 처리수 89만톤중 해양배출 허용 규제치보다 높은 방사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는 처리수가 약 75만톤에 달한다고 인정한바 있다. 오염수의 해양 방류는 오염된 수산물 섭취와 축적 등으로 이어저 전 인류의 건강과 안전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것이다.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지역은 후쿠시마 연안 일대이겠지만 결국은 해류를 따라 돌면서 북태평양, 한국의 동해안, 남해안 바다와 해양생태계를 지속적으로 파괴할 것이다. 더구나 일시적 방류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 이상 방류를 지속할 것이기에 지구 해양생태계의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야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산물을 소비하는 나라다. 2011년까지만 해도 1인당 세계 최대 수산물 소비국은 일본이었으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이 수산물 소비를 줄이며 순위가 바뀌었다. 일본 다음으로 중국, 미국, 유럽연합 순으로 수산물을 많이 소비한다. 이제 일본 아베정부는 해양생태계 파괴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건강과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을 주는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검토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일본이 정상적인 국가로 인류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 유엔 인권회의, 국제해사기구 등과 국제적인 공동 기구를 만들어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에 대한 전 세계적인 대처 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lt;투데이 코리아 주필&gt;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 [김성기 칼럼] 전기료 인상 대신 ‘탈원전’부터 철회해야
  • 김성기 부회장|2019-10-15
  • 문재인 정부가 대표적인 공약 사업으로 추진해온 탈(脫)원전 정책이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의존도를 높여 전기료 인상을 직접 압박하게 됐다. 탈원전을 겨냥한 에너지 정책 전환이 전력생산 비용을 상승시켜 요금체계 개편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유관 연구기관 등에서 나왔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내년 4월 총선 이후 상반기 중 전기료가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당초 신규원전 건설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연장 불허 등을 골자로 한 탈원전 정책을 발표하면서 신재생에너지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문 대통령 임기말인 2022년까지 전기료를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국민 부담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면밀하게 분석하기 보다 탈원전을 표방한 환경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에 치우친 정책이라는 반대 여론이 많았다. 이런 반발 때문에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이 재개되는 등 일부 변동이 있었지만 탈원전의 큰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탈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국내 원전생태계 기반이 무너져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대기업이 경영난에 처하고 중소 협력업체의 도산이 속출하고 있다. 수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전문인력이 해외로 유출되고 대학과 유관기관의 인력양성에도 큰 타격이 왔다. 탈원전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기업은 한국전력이다. 한전은 견실한 우량 공기업으로 꼽혀 일찌감치 증시에 상장됐지만 문재인 정부 시책에 맞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 전기생산 원가가 급격히 올라가 지난해 6년 만에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전기료 누진제가 완화되면서 3000억원의 손실을 떠안았고 올 상반기 928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외부비용을 포함한 원전의 발전원가는 1킬로와트(kwh) 당 대략 43원 안팎이지만 신재생에너지 원가는 220원이 넘는다는 연구가 있다. 신재생에너지 원가가 4배 가량 비싸다는 계산이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고 국토가 좁아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원가가 미국 영국 독일 등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 11일 국정감사에서 “전기요금을 지금 내가 안 내면 언젠가 누군가는 내야 한다”며 “다음 달까지 사용자 부담 원칙에 맞는 개편안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원료 가격이 오르면 전기료를 올리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기로 하고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22년까지 전기료의 원가 회수율을 100% 현실화하기 위해 가정용과 산업용 요금을 모두 인상해야 한다는 내용을 중간보고서에 제시했다. 한전 산하의 경영연구원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을수록 요금이 상승한다”며 요금인상을 주장해왔다. 소액주주들로부터 배임 혐의로 고발당하고 사퇴압력을 받아온 한전 경영진은 그동안 정부 눈치를 살펴오다가 그나마 어렵게 ‘요금인상’카드를 꺼냈다. 탈원전 정책이 나온 이후 다른 분야에서 나름대로 긴축경영을 통해 원가절감을 시도했으나 더 버티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절박함이 배경이다. 게다가 역시 문 대통령 공약사업인 한전공대설립에 따른 1조6000억원 규모의 자금부담으로 재정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생산비 증가에 따른 요금상승 압박을 무작정 한전이 끌어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전 부실화는 청년층을 비롯한 다음 세대에게 공적연금을 포함한 국가채무와 함께 전기료 부담까지 떠넘기려는 무책임한 처사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대부분 국민이 반대하는 탈원전 정책을 강행하면서 전기료 인상까지 따르게 되면 당장 국민반발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결국 장관직 사퇴를 불러온 조국 사태의 분열에서 보듯 여론을 외면한 정권이 받게 될 타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4월 총선 이후 인상’이라는 단서가 붙었겠지만 총선만 넘긴다고 반발이 무뎌질 사안이 아니다. 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탈원전 정책을 먼저 철회하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아울러 한전공대 설립을 재검토해 한전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한전이 제시한 전기료 인상 방안은 그다음 단계에서 따져볼 일이다. 그래야 원전생태계가 살아나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고 국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카이스트 등 대학생들이 앞장선 탈원전반대 서명운동에 지금까지 56만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한 의미를 정부가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lt;투데이코리아 부회장&gt;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 [데스크 칼럼] 신뢰가 무너진 교육계...사회적 인프라 다시 구성해야
  • 김충식 편집국장|2019-10-12
  • 고려와 조선시대에 상피제(相避制)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는 일정한 범위 안의 친족간에는 같은 관사(官司)나 통솔관계에 있는 관사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또는 청송관(聽松官, 소송을 맡는 관리)·시관(試官, 시험을 맡는 관리) 등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어떤 지방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관리가 그 지방에 파견되지 못하는 것도 이에 포함된다. 이 제도는 인정(人情)에 따른 권력의 집중을 막아 관료 체계가 정당하고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서 시행됐다. 따라서 각 시대마다 독특한 관료 체계의 조직·운영·특성 또는 친족 관계의 법제와 밀접한 관련 아래 구성, 운영됐다. 1092년(고려 선종 9)에 제정되었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이 제도를 엄격히 적용해 친족·외족·처족 등의 4촌 이내로 적용범위가 규정되어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확대 적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시대는 관료제를 지향했던 사회였기 때문에 진골귀족의 신라나 이성귀족(異姓貴族)으로 구성된 고려의 귀족제 사회보다는 왕권의 집권화와 관료 체계의 질서확립 과정에서 권력 분산이 더욱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 숙명여고에서 쌍둥이 여학생이 전교 1등을 한 사건이 있었다. 공부를 잘해서 열심히해서 1등을 이룬 것이라면 아무문제 없겠다. 하지만 아빠인 교무부장이 쌍둥이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녔고, 시험 전 문제가 유출됐고 성적 향상된 아이들이 교무부장의 자녀이 쌍둥이였다. 이 일로 숙명여고 쌍둥이는 퇴학 당하고 교무부장인 아버지는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고 현재는 구속수감 중이다. 당시에도 이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동시에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문제 삼기도 했다. 다시 말해 부모와 자녀가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가까운 친척끼리는 같은 관청에 근무하지 못하게끔 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 조국 장관의 딸인 조 민 씨가 동양대 총장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의 위조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표창장 직인 위조의 핵심 당사자인 조국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에 대해 12일 검찰이 4차 소환조사하고 있고 곧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더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자신이 교수로 있는 대학에 자녀가 와서 인턴으로 근무했다고 하고(진짜했는지 서류상으로만 했는지 검찰이 밝힐 일이다), 또 대학 입시에 가산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 대학 총장의 표창장을 다른 대학에 교수로 있는 모 교수가 자신의 딸 표창장을 위조(이것도 검찰이 사실로 밝힐 일이다)했다고 하고. 뿐이랴. 이들은 사회지도층이자 교수이면서 자기들끼리의 ‘품앗이’로 자식들까지 자신의 계급사회에 들어오게끔 성품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이 학부모와 입시생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하고 있다. 어느 누군들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 좋은 학교에 보내어 좋은 직업 갖게 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지도층들이라는 교수가 총장의 직인을 위조해 자기 자식에게 줄 표창장 만들었다는데 학부모들이 분노하고 조국 장관과 그의 부인을 보며 고개를 내젖고 있는 것이다. 정직함과 신뢰는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어느 것도 이루어 질 수 없다.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뿐 아니라 기업과, 학교, 교육, 법원, 국회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회의 구성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고등학교, 관청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다. 대학진학과 취업에서도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회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인맥을 만들되 자기들만의 ‘끼리끼리’만의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는 현재 서로 품앗이 하는 단계까지 왔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죄를 지은 자는 검찰 수사의 결과로 일벌백계하여 죗값을 물으면 된다. 하지만, 대학 총장의 직인 번호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직인만 있으면 손쉽게 총장 표창장을 만들어 내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 일반 기업에서도 마케팅 행사를 하고 선물을 증정하려면 임직원 가족은 제외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하물며 일반 기업도 그리할 진데 대학이 이를 못할까. 이참에 총장 명의의 표창장 등의 관리 대장을 만들고 인프라를 구축하여 교수 및 직원 자녀들이 불공정하게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시스템화 할 필요가 있다.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행함에 있도록 시스템과 인프라를 구축해야 입시생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원성도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 [권순직 칼럼] 상식(常識)이 통하지 않는 사회
  • 권순직 논설주간|2019-10-11
  •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재판이 시작되고 (구속이 되건 안되건 상관없다), 조 장관이 검찰 조사를 받고 기소가 된다고 가정하자. 지금까지 나타난 청와대나 여당 기류로 보면 조 장관은 대법원으로부터 형 확정판결을 받지 않으면 장관직을 수행할 것 같다. 그것이 언제까지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을 장관에 임명하면서 내비친 의지다. 모든 게 ‘의혹 수준이고 더구나 조 장관이 직접 저지른 위법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만약 이같은 상황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대다수 국민들은 집단 화병(火病)에 걸릴 것 같다. 며칠 간격으로 ‘조국 수호’ ‘윤석열 파면’을 외치는 서초동과 ‘조국 파면’ ‘문재인 하야’를 부르짖는 광화문의 거대한 인파는 지속될 것이고, 나라는 분열과 갈등으로 열병을 앓을 것이다. 국민들은 피로하다, 화나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반환점을 이미 돌아선 지금, 국민들은 피로하다. 생업이 불안한 사람들이 많다. 직장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이웃이다. 집권 초기 2년 여는 젹폐청산이다 뭐다 해서 과거 정리하느라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런 와중에 경제 부문에서는 최저임금이다 소득주도성장이다 해서 시행착오 투성이의 정책으로 민생을 어렵게 해왔다. 집권 3년차에 들어서면서 이제 적폐청산도 마무리되고, 잘못된 경제정책도 수정해가며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조국이 나타나 국가사회를 둘로 쪼개 놓고 말았다. 국민들은 피로감을 넘어 절망감에 빠져들고 있다. 절반을 넘을 것 같은 인구가 조국을 반대하고, 문재인 정부의 잘못을 지적한다는 것이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다. 왜 이런 일이 빚어지는가. 사회에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그렇다. 상식이 안통하고 지도층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혼란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아! 이렇게 감동적인 대통령 취임사가 있었던가.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입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대통령 취임사만 지켜달라 취임사만 지키면 온 국민이 편안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는데 오늘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것은 조국과 그 일가의 부도덕한 언행과 편법 탈법(아직 의혹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내로남불을 보면서 여지없이 기대감을 버리게 만들었다. 조국이 말하거나 글로 썼던 것 대부분이 그 가족의 행태와 정반대로 나타나면서 국민들은 반발했고 분노했다.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고, 결과도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조국에게서 보고 국민들은 실망했고, 좌절했고, 분노했다. 그런 그를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스스로 취임사에서 한 약속을 저버렸다. 그리고 나서도 정권을 옹호하는 서초동 집회는 민의(民意)고 광화문의 함성은 내란이라는 집권당의 의식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이 반반으로 쪼개져 하루가 멀다하고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데도 정부는 상처를 어루만지고 봉합하려는 의지가 안보인다.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모두 내 국민’이어서 존중한다던 취임사는 어디로 간걸까. 조국 사태를 보며 대통령의 ‘불통(不通)’과 ‘인재 풀 빈약’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생각된다. 검찰개혁이 정부의 강한 의지이기 때문에 조국 장관이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이 문제다. 적임자일수는 있어도 이미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잃을대로 잃은 그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면 검찰개혁 이뤄낼 사람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국민들은 그냥 ‘상식이 통하는 사회’ ‘편히 먹고 살 수 있는 경제’면 된다. 이같은 소박한 소망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집권 자격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 조은경 작가의 귀촌주부다이어리
  • [조은경의 귀촌주부 다이어리]2-4
  • 조은경 작가|2019-10-21
  • 투데이코리아=조은경 작가 | 이번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엔 유난히 태풍이 많았다. 16호 링링. 17호 타파. 18호 미탁. 등등.... 바람이 강해지고 폭우가 쏟아져 일부 과일 농가들이 피해를 봤지만 이쪽 경북 내륙 지역은 다행히 심한 재해에선 비껴갔다. 가물었던 작년 여름나기와 대조적으로 올해는 텃밭이나 잔디 물주기에 신경을 덜 써도 되었다. 매해 자연의 모습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농촌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조차 도시 생활을 하던 때와는 다르다. 우리 집에서 처음 비가 오는 것을 알아차리는 때는 잔디 사이, 길을 내기 위해 사용한 표지석에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질 때다. 떨어져 검게 변한 둥근 원이 하나씩 둘씩 동심원을 만들어 나가면서 종국에는 그 큰 돌이 전부 검은 색이 된다. 이내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빗소리는 사각사각 들리기도 하고 자박자박 들리기도 한다. 돌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잔디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섞여서 노래하듯 응얼거림이 되기도 한다. 그 속에 있노라면 가슴 속 깊은 데로 행복이 밀고 들어오는 떨림 같은 것을 느낀다.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들 대부분이 귀촌 생활을 부러워한다면서도 –혼자서 심심하실 때는 무얼 하세요?- 물어 보는 것으로 끝맺음을 한다. 도시에 있다고 혼자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닐 텐데 귀촌자에게 굳이 그 질문을 한다는 것은 시골에 있는 것이 더욱(?) 심심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골에서 심심한 것이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도시에서 사는 분들은 모르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싶어하고 행복한 사람을 부러워하는데 그 행복의 조건이 객관적인 사실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명예와 부가 선행조건이며 그 밖에 다른 필요조건이 많다. 그러다보니 평범한 것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자꾸 더 많은 것을 밖에서 찾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소한 행복에 자신이 없어서 그 행복을 타인에게서 확인 받으려 한다. 자기 동네의 단풍이 제일 아름답다며 꼭 와 보아야 한다고 자랑하는 친구 말을 따라 가 보면 우리 동네의 풍경과 대동소이하다. 요사이 지자체의 동네 꾸미기가 정성스럽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자랑이란 요컨대 자신 없음의 다른 얼굴이다. 상대방의 인정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소소한 행복이란 것이 보잘 것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야만 할까? 자기 동네의 아름다운 단풍을 보면서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는 그 자체만으로 즐거운 일일 텐데. 물론 나의 소소한 행복을 상대방이 보잘 것 없이 여기거나 멸시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다. 하긴 우리가 영위하는 사회생활이란 주관적인 행복감을 높이 인정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명예와 부의 성취, 그것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도시 생활이니, 소소한 행복이라도 나의 가슴의 떨림만으로 만족되지 않고 꼭 타인의 인정이 필요했나 보다. 하지만 남의 인정이 필요한 행복은 이미 행복이 아니다. 남의 인정이 필요한 기쁨이 이미 기쁨이 아니듯이. 아마 그래서 행복을 찾는 것이 도시에서는 어려운 일이 되어가나 보다. 같이 슬퍼해 주는 친구를 찾는 것은 쉬워도, 같이 기뻐해 주는 친구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보다. 자연에서 살면, 빗소리를 구별해서 들을 정도로 자연과 가까이 살면, 기쁨은 남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 가슴이 기쁨으로 떨리는 것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 새들의 지저귐을 듣는다. 서울의 아파트에서도 들을 수 있었지만 새들의 모습은 많이 보지 못했다. 여기서는 이 가지 위에서 저 가지 위로 놀러 다니는 까치를 자주 만나고 콩새와 참새와 박새를 구별하기도 한다. 아직 연미복의 신사라는 제비는 만나지 못 했지만 왕관을 쓴 후투티가 마당에 놀러와 기다란 부리로 땅을 파서 지렁이를 잡아먹는 광경을 한참동안 구경한 적도 있다. 집에 찾아온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도 심심할 때, 내가 할 일이다. 남긴 것이 없을 때는 제법 요리(?)도 해서 준다. 그 중 한 놈과는 꽤 오래 안면을 텄는데도 나와 직선거리 1미터 이내가 되면 놈은 꼭 본능적으로 몸을 피한다. 이런 야생 고양이들에게 1년 이상 밥을 준 적이 있는 분의 말에 따르면 딱 1년이 되었을 때 털을 만지도록 해 주었다는 것이다. 흠.... 가끔 컨디션이 좋은 때면 잡초를 뽑는데 시간을 보낸다. 이 일처럼 몰두하게 되는 일도 없다. 오른 쪽 어깨와 팔을 많이 썼다고 생각되면 왼쪽 팔로, 왼쪽 손으로 호미나 낫이나 정원 삽을 사용해서 풀을 뽑는다. 풀은 어디에나 자라고 있어 언제나 뽑을 수 있다. 특별히 헬쓰 장에 가지 않아도 그 정도의 일은 언제나 나를 땀 흘리게 해 주고 목욕물에 푹 잠기고 싶게 해 준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만족감과 함께 행복감을 또다시 맛보게 된다. 이상이 귀촌주부인 내가 심심할 때 하는 일이다. 그 모든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 누가 꼭 인정해 주지 않아도 행복하다. 행복의 주관성을 믿으라고 권하고 싶다. &lt;작가&gt;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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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기자수첩] 계속되는 대학 교수 성비위 논란, 학자 이전에 윤리적 일 순 없나?
  • 편은지 기자|2019-10-14
  •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여자를 만나고 싶다” “헤어롤을 하고 화장하는 학생들이 있던데 이런 행동은 외국에서는 매춘부들이나 하는 짓” “내 자녀는 짱깨랑은 사귀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해도 문제가 될 말들이다. 그러나 이 말은 모두 대학교수가 강단에서 강의를 듣는 수많은 학생들을 보며 한 말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도 심심한 사과문을 쓰고 버젓이 교수 생활을 이어가거나 가벼운 징계 조치를 받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지난 4일 총신대학교 신학과 A교수는 강의 도중 “헤어롤을 하고 화장하는 학생들이 있던데 이러 행동은 외국에서는 매춘부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오! 저사람은 대학생같이 생겼는데 매춘을 하는구나. 내가 교수가 아니면 야, 내가 돈 한 만원 줄테니까 갈래? 이러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7일 총신대 총학생회가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며 학생들에게 공론화됐다. 그러자 그는 8일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거리에서나 공원에서 화장하는 사람을 보고 매춘부로 오인해 만 원을 줄테니 가자고 할까봐 염려된다고 한 것”이라고 해 또 문제가 제기됐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A교수는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한명이라도 수업을 들어야 할 권리가 있고 제게 수업을 해야 할 책임이 있기에 오늘도 수업하고 왔다. 학생들이 용서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국회 교육위원회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올해까지 전국 4년제 대학 65곳에서 123건의 성비위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조사에 불응한 학교도 70곳이나 됐다. 따라서 더 많은 징계사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총신대 매춘부 발언을 한 교수에게 다수의 학생들은 강단에서 내려오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수업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결국 지난 11일 총신대학교 측에서 해당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넘기고 엄중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으나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성비위 발언 등으로 문제가 된 교수 중 스스로 책임을 지고 강단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교수 본인은 사과문에서 잘못을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그뿐이다. 버젓이 교수 생활을 이어가거나 경징계를 받은 교수들이 대다수이며 파면당한 소수의 교수는 그저 학생들의 강한 요구와 학교 측의 징계절차에 어쩔 수 없이 내려오게 되었을 뿐이다. 교육부에서 해임요구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아직까지 해임이 되지 않은 교수도 있다. 성신여자대학교에서는 지난해 6월 학생들에게 “너를 보니 전 여자친구가 생각이 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여자를 만나고 싶다” 등의 발언을 해 문제가 됐던 B교수는 교육부의 사안조사 결과 ‘해임요구’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본지의 조사결과 여전히 성신여대 측은 B교수를 해임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신여대 학생들은 지난 3월부터 학교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거리를 행진하는 등 B교수의 해임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학교 측이 교육부의 해임요구에도 아직까지 교수를 해임하지 않자 성신여대 총학생회장은 여전히 학교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교수의 자질은 학문적인 검증이 먼저다. 따라서 교수의 학문적 영역에 대한 연구와 양심적인 발언은 자유 영역이다. 학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신변잡기 발언은 자제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게 교수가 아닐까 한다. 학생들은 학문적으로 배움을 얻기 위해 한 학기에 몇 백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낸다. 그렇다면 교수는 전문적인 전공 지식과 연구를 통한 학문적 지식만을 가르치면 된다. 교수 개인이 화장하는 여성을 보고 매춘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어린여자를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것까지 학생들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박찬대 의원은 "대학에서 교수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지만 온라인 클릭 몇 번이면 교육 이수가 된다거나 성폭력 관계 법률만 나열하는 등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있다"며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교수 대상 성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교수는 없는 것인지, 문제 발언을 하기 전에 ‘이런 말은 하면 안된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교수를 채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많은 의문이 남는다.
  • [기자수첩] 정말 원하는 게 ‘공장의 미래’가 맞다면
  • 유한일 기자|2019-09-25
  • “우리가 얼마나 절실하고 절박하면 우리 차를 불매한다고 했겠나” 지난 24일 한국GM 노동조합이 카허 카젬 사장과 경영진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논란이 됐던 ‘자사 수입차 불매운동’과 관련해 한 말이다. 최근 자동차 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소식이 있었다. 사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GM 노조가 투쟁 방침 중 하나로 한국GM이 최근 판매를 개시한 중형 픽업트럭 ‘콜로라도’와 대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트래버스’ 불매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 두 모델은 한국GM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고 미국 현지에서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한국GM이 콜로라도와 트래버스에 기대는 남다르다. 누적 적자가 4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신차 효과를 극대화해 실적 회복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는 사측이 이번 임단협에서 경영 위기를 이유로 기본급·호봉 동결, 성과급·일시급 지급 불가를 제시하자 파업과 함께 불매운동 카드를 꺼냈다. 충격적이었다.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신차를 사지 말자고 권장하다니 참 놀라운 발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자해행위다’, ‘제 발등 찍기 밖에 안된다’ 등의 평이 나오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한국GM 노조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불매운동을 마치 바로 시작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기획단계일 뿐”이라면서도 “조합원들의 여론을 수용해 동의를 얻으면 과감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은 아쉬움이 남았다. 자신들은 돈 보다도 2022년 이후 공장의 미래 보장이라고 강조해 온 노조가 가장 많이 던진 메시지는 “팀장급 이상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우리만 왜 성과급을 주지 않느냐”였다. 기자들이 투쟁 전략, 협상 일정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지만 설명 뒤에는 꼭 ‘성과급’ 문제가 거론됐다. 사실 노조의 투쟁은 ‘고용 불안정’과 직결된다. 노조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2022년 이후 부평2공장의 생산 계획이 없어 폐쇄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또 회사가 수입차 판매 비중을 늘리면 국내 생산 물량이 줄고, 그 결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의 이 같은 행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공장의 미래가 걱정되니 파업을 단행하고, 회사의 실적 개선 발판인 신차를 불매할 계획을 짜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지난해 군산공장 폐쇄를 시작으로 부도 기로에 섰던 한국GM은 8100억원에 달하는 혈세를 산업은행으로부터 지원받으며 다시 일어섰다. 물론 노조 역시 이 시기에 임금 동결 및 복리후생 축소, 3000명 구조조정 등 뼈를 깎는 고통분담에 나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지금의 노조가 과거 고통이 되풀이 되지 않길 원하고 정말 부평2공장의 미래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노조가 앞서 말한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하면...’이라는 간절함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향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노조가 먼저 한국GM 정상화를 위해 대승적 결단을 내려 상생의 길을 열어야 한다.
  • [기자수첩] 막지못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제부턴 확산 막아야
  • 최한결 기자|2019-09-17
  • 경기도 파주시에 소재한 돼지농가에 국내 최초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병한 가운데 발병 가능성을 두고 음식물쓰레기(잔반) 지급과 발병국가로부터 해외방문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결과 밝혀졌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잠복기는 짧으면 4일에서 길면 21일(3주) 이후 증상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고열현상과 함께 감염된 돼지는 자립하지 못해 주저 앉으며, 호흡기에서 출혈이 일어나면서 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바이러스형 출혈병으로 돼지류에게만 발병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일어날 수 있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잔반을 돼지가 섭취하거나, 발병한 돼지의 분비물 접촉 등으로 전염된다. 발병국을 방문한 사람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다. 문제는 백신의 부재다. 1920년대에 최초 발견됐지만 현재까지도 백신이 나오지 않았고 치료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치사율은 100%에 가까워 전염을 막기 위해선 살처분과 예방적 살처분밖에 없다. 해당 농가는 돼지 번식을 전문으로 하는 농장으로 총 2400마리 중 어미돼지(모돈) 300마리, 새끼돼지(자돈) 2100마리를 키우고 있다. 발병 증상을 일으킨 모돈 5마리가 며칠 전부터 사료 배식을 거부했으며 고열 증상과 함께 주저 앉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또한 해당 농가는 사료 지급으로만 돼지를 사육해 잔반으로 인한 감염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국가 방문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농장주 부부와 외국인 노동자 4명이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데, 외국인노동자 4명은 모두 네팔인이다. 이들은 최근 해외 방문과 자국을 방문하지 않았으며 네팔은 돼지열병이 발병하지 않은 청정국가로 분류돼 있다. 또한 해당 돼지농가는 지난 2월과 6월, 농림축산식품부 주관으로 한 혈청검사 결과 돼지열병 감염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조사결과가 있어 그 이후에 발병원인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적이 있고, 파주가 북한 인접 지역이니 북한에서 넘어온 야생 멧돼지 등이 발병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야생멧돼지로부터 돼지열병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농장 관계자는 멧돼지를 목격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고, 해당 농가는 DMZ와의 거리도 상당하며 창문이 없고 출입문으로만 접근이 가능해 돼지열병에 걸린 야생멧돼지의 접촉으로 인한 발병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역학조사가 밝혀지기 이전까진 돼지열병의 감염 경로 파악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원인을 밝혀 내는데 시간이 좀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양돈 관계자들이나 정부 부처도 당혹감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20km 밖에서 양돈 농가를 운영중인 김 모씨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지난 5월에 북한에서 감염이 확인된 이후 감염 걱정에 가족들도 만나지 않았다"며 "백신도 없어 만약 이대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한다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토로했다. 농식품부 검역본부는 항구와 공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역국가에서 오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돼지열병DNA를 가진 휴대용 돼지고기 가공품 반입을 금지했고 적발시 벌금형도 최대1000만원으로 강화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의 감염 사실 공개 이후 인근 지역의 소독과 차량, 사람의 방문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발병원인으로 꼽는 잔반 금지 등도 실시했다. 양돈 관계자들의 발병국가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협조문과 돼지 농가의 철저한 소독등도 실시한 바 있다. 지난 2월과 6월에는 전국적인 혈청검사까지 이뤄졌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발병은 막지 못했다는 것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전염병이라는 재난인만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는 주장과 "아시아 전역으로 퍼진만큼 막을 수 없을 만큼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두가지 의견이 충돌한다. 일단 벌어진 일 인만큼 초동 대책이 중요하다. 선우선영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초동 대처의 골든타임을 얼마로 보느냐는 질문에 "48시간 스탠드스틸(Standstill·전국 일시이동중지명령)이 걸려 있는 이때 빨리 농장 출입자들 또는 출입 차량에 대해 추적 조사가 이뤄진다고 하면 어느 정도 빨리 쉽게 막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7일 오전 브리핑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1주일로 보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이미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국내에 들어왔다. 정부는 이제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초동대처에 실패한 만큼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
  • [기자수첩] 홍콩시위, 넋 놓고 보다 한국경제 타격 올 수 있다
  • 김태문 기자|2019-08-21
  •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홍콩 반정부 시위가 새로운 악재로 떠올랐다. 홍콩은 한국의 4번째로 큰 수출상대국이자 중국으로의 수출 우회로였다. 따라서 홍콩 경제가 흔들리면 한국에 타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홍콩의 대규모 시위 사태가 중국 중앙정부의 무력개입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으면 한국경제에도 상당한 충격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對홍콩 무역액은 480억 달러로, 이 가운데 수출이 460억 달러(약 56조원)에 달했다. 수출액 기준으로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로 홍콩으로 수출되는 제품의 대부분은 중국으로 재수출되는 상황이다. 우리 기업들이 홍콩을 중계무역지로 적극 활용하는 것은 동아시아 금융허브로서 무역금융에 이점이 있고, 중국기업과 직접 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낮은 법인세와 무관세 혜택도 장점으로 꼽힌다. 주요 수출품목은 반도체로 지난해 홍콩을 상대로 한 수출액이 274억1111만 달러로 60%를 차지했고,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기기와 기계류는 전체 수출액의 82%에 달했다. 이에 따라 홍콩 사태가 격화하면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가뜩이나 쪼그라들고 있는 대(對)중국 수출이 더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중국으로의 수출은 작년 대비 16.6% 줄었다. 한국 기업들이 홍콩을 중국 수출의 중간 단계로 활용하는 건 중국과 직접 거래하는 것보다 법적·제도적 리스크가 적고 무관세 등의 혜택이 많아서다. 2003년 홍콩과 중국이 체결한 포괄적경제 동반자협정(CEPA)에 따라 홍콩은 중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에 관세를 면제받는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린다. 이때 홍콩 내 외국 기업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한국 기업들은 중국 진출에 홍콩을 활용해왔다. 홍콩이 동아시아 금융·물류 허브로서 우리나라 핵심 수출품목의 중국 시장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금융권 일각에서는 향후 사태가 악화하면 금융시장 불안은 물론 중계무역 등 실물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관련 홍콩 관련 금융투자 상품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홍콩H지수(HSCEI)는 국내 증권사들이 발행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기초자산으로 많이 쓰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발행된 ELS 가운데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포함한 상품(중복 집계)은 39조9072억 원어치에 이른다. ​올해 전체 ELS 발행금액 52조1981억 원의 76.5%다.​ 금융당국은 당장 국내 ELS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ELS는 만기 내 기초자산 가격이 정해진 기준 아래로 떨어질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하지만 홍콩 사태가 장기화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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