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시장’ 정책 부작용 누적돼 악순환 우려

▲ 김성기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아베 정권의 무역보복으로 촉발된 일본과의 갈등이 경제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국내에서 반일(反日)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화와 협상의 길’을 언급하면서 경색된 양국 관계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 자극한 반일 감정은 일본 여행 자제와 불매운동으로 위세를 떨치면서 국내정치에도 이른바 ‘친일대 반일 프레임’이 미묘한 변수로 떠올랐다.

그동안 국민 정서를 대변한다고 자부해온 신문과 방송 등 전통 언론은 물론 인터넷과 모바일 동영상까지 반일 정서에 휩쓸린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일단 반일 정서가 일단 큰 흐름으로 가닥을 잡게 되면 언론의 속성 상 눈덩이가 커지 듯 확대 재생산되는 수순으로 굴러가기 쉽다. 최근 일본 여행객수와 신용카드 사용액이 격감하고 맥주와 화장품 유아용품 사무용품에 이르기까지 일본 상품 수입이 크게 줄어 시장점유율이 바뀌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선제 보복에 나선 일본이 오히려 위기로 몰리고 있다는 식의 과장된 전망도 나온다. 지나친 반일 감정의 확산을 경계하는 사설이나 칼럼 등이 가끔 보이지만 아직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반일대 친일 프레임이 굳어지면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 지지율이 반등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뒤 민주당은 ‘물 만난 고기’처럼 반일 감정 확산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나타나 내년 4월 총선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을 담은 보고서까지 공개돼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켰다. 서울 중구는 대로변과 상가에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NO Japan’ 배너기를 내걸었다가 상가 입주자와 주민들로부터 지나치다는 항의를 듣고 철거했다.

반일과 극일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금융시장 혼란과 수출 차질 등 심각한 경제현안은 여론의 관심 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이 심화되는 세계 수출시장의 여건과 한일간 갈등이 확산되는 추세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쯤으로 여기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처한 어려운 현실에 외부변수에 따른 불가피한 요인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시장경제 원리에 역행하는 정책들의 부작용이 누적돼 경제가 활력을 잃은 상태에서 세계수출시장의 불확실성과 갈등이 겹쳐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는 분석이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추진해온 소득주도성장(소주성)과 주52시간 근무제, 탈원전 정책 등을 대표적인 ‘반(反)시장 정책’으로 지목할 수 있다. 게다가 환경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추진한 4대강 보철거 방침 등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정책이 이어졌다.

국토교통부가 오는 10월부터 서울 과천 분당 등 전국 31곳 투기과열지구 민간택지 아파트에 확대 적용키로 한 분양가 상한제도는 시장 기능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가격통제 제도로 꼽힌다. 토지 감정평가액과 표준건축비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하겠다는 방침인데 당장 해당 지역의 아파트 분양가를 누르는 단기 효과는 있겠지만 길게 보면 아파트 공급을 위축시켜 오히려 기존 집값을 자극하는 부작용이 크다. 건설업계는 가뜩이나 경제가 침체에 빠진 어려운 시기에 정부가 활로를 열어 주기는커녕 위축된 경기를 억누르는 조치라고 반발한다. 야당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단기처방이라고 비난한다.

경제정책 결정에는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부작용도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을 미리 마련하고 수정 보완을 거쳐 정책의 강도를 조정하게 된다. 소주성이나 주52시간 근무제, 탈원전 등 정책은 시행과 함께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정부가 이미 수정 보완에 나섰다. 그러나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민간의 요구에 크게 미흡하거나 이마저 현실과 맞지 않아 폐기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반일 감정의 확산에 고무돼 경제 실정까지 어물쩍 덮고 넘어가려 하면 부작용이 고질로 남아 두고두고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된다. 국민이 경제난으로 겪어야 할 수출 부진과 부도, 폐업, 실직의 고통은 깊어지고 자칫 경제적 번영의 기반까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지나치게 선거의 표를 의식한 정책 결정은 부작용을 키우는 악순환을 불러 감당하기 어려운 큰 화를 불러올 위험이 높다는 경고를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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