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키코(KIKO) 사태가 빚어진 지 10년만에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이 거액의 원금 손실을 보게 되는 사건이 다시 등장, 파생상품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등 금융회사가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상품을 파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일자, 문제의 파생상품을 설계·판매한 금융사 등을 대상으로 오늘(23일)부터 고강도 검사에 들어갔다.

문제가 된 파생상품은 선진국 금리에 연계된 DLS(파생결합증권)와 이를 모아 펀드로 만든 DLF(파생결합편드)다. 판매 규모는 총 8224억원으로 독일 10년물 국채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과 미국 CMS(달러화 이자율스왑) 5년물 및 영국 CMS(파운드화 이자율스왑) 7년물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상품 등 두 가지다. 이들 상품은 해외금리가 만기까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최고 연 4%의 수익을 주지만 기준치 미만으로 떨어지면 원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잃는 구조로 되어 있다. 독일 국채금리 연계 상품은 현재 판매액 전체가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했고 현재의 금리 수준이 9~11월 만기까지 이어지면 원금의 95%를 잃게 된다. 미국·영국 CMS 금리 기준 상품은 이보다는 손실 폭이 작지만 현재의 금리 수준이 유지될 경우 내년 만기 때 총 손실률이 56%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2008년에 터진 키코 사태와 판박이다. 수익률 상단이 정해져 있고, 손실률은 무한정이라는 것이 똑같다. 단지 키코는 환율 변동에 기초한 것이고 이번에 문제된 상품은 국채 금리변동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번 상품은 글로벌 금리인상, 다시말해 긴축을 예상하고 만든 상품이다. 이에 따라 미국 등 각국 기준금리가 오르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중 무역 분쟁 등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흔들리면서 각국 금리가 급락하자 문제가 터졌다.

파생금융상품은 위험도가 높아 상품을 판매할 때 투자자의 동의를 구하고 신청서류에 고객의 동의 서명을 받는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이 불완전판매 등을 이유로 소송을 하더라도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은 위험성이 높은 상품을 자신의 결정으로 선택했다는 자필 서명과 원고 상당수가 주가연계증권(ELS), 주식 등 위험도가 높은 상품 투자경험이 풍부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 신뢰를 최우선시 해야 하는 금융사가 기대수익이 고작 연 4%에 불과한데도 원금 손실 위험이 최대 100%나 되는 초고위험 파생결합상품을 고객의 동의를 얻었다는 사인 하나만으로 책임을 회피한 채 아무 거리낌 없이 판매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고객 위험을 부담하고 관리하는 금융사 본연의 역할을 방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금융 불안정은 이미 예견됐던 사안인데 금융사들이 금리와 연계된 고 위험 상품을 공격적으로 판매한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도 공식 성명을 통해 “키코와 DLS 사태의 공통점은 비전문가인 기업이나 개인에게 은행이 초고위험의 옵션 상품을 권유했다는 것”이라며 “은행의 이익 우선주의와 금융당국의 허술한 감시와 규제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문제 상품을 설계한 증권사와 판매한 은행, 상품 운용사를 대상으로 상품구조에 문제는 없는지, 오로지 금융사의 수입 증대만을 위한 불완전판매는 없었는지 등을 점검하기 위한 검사에 들어갔다. 금융당국으로서는 마땅히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이같은 검사를 통해 문제점이 있으면 이를 시정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칫 자본시장 자체를 위축시켜 더 많은 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망된다.

사실 파생상품시장은 2011년 '건전화 조치'로 크게 위축됐다. 한국거래소가 관리하는 장내파생상품 거래대금은 2011년만 해도 하루 평균 66조원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45조원으로 32% 가까이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 거래대금은 17조원에서 6조원으로 65%가량 격감, 전체 투자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14%로 쪼그라들었다. 반면에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50%와 36%에 달해 외국인들이 파생상품 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파생상품시장이 또다시 주저앉으면 국부유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2011년 건전화 조치로 파생상품 전문가가 대부분 시장을 떠나 이번 사태가 초래됐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숙련된 전문가가 많았다면 DLS가 추종하는 해당국가 금리나 시장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 봐 이번 사태와 같은 심각한 손실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금융사의 과욕과 운용자산 쏠림 현상, 투자자의 자산 배분 어려움 가중 등 저금리가 유발한 여러 가지 금융 시스템 부작용 중 하나로 간주된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불완전판매 문제 등을 해결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참에 금융업계의 '시스템 문제' 자체를 철저히 점검해 근원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보다 주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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