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민의길 관계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WTO 개도국지위 포기, 문재인 정부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최한결 기자 | 사실상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도국 지위 포기를 시사하면서, 한국 농업이 분기점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 WTO에 가입할 시기에 농업분야에 한정해 개도국 혜택을 아직까지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한국은 놀라운 성장을 했음에도 WTO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노린다"며 "이는 매우 불공평한 행위"라며 비판했다.

또한 지난 2월 WTO 일반이사회에서 현 개도국 지위 결정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OECD 가입국(32개국) △G20 회원국 △세계은행 고소득 국가(1인당 GNI 1만2056달러 이상) △세계 상품교역의 0.5% 이상 등 4가지 조건 중 한 가지에 해당할 경우 개도국이 아니라는 제안서를 WTO에 제출했다. 우리나라는 4가지 요건에 모두 해당된다.

WTO 협정상 개도국은 보조금과 관세 제도 등을 운영할 때 선진국의 3분의 2를 이행하면 된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 포기를 결정한 것은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데다 이를 방어할 논리 마련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소속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5개 농민단체 및 3개 생산자 단체는 20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면서 개도국 지위 포기를 규탄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를 우려하며 정부에게 지위 유지를 요구했다.

또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지난 10일 성명서를 내면서 "WTO규정에 따르면 농민에게 지급하는 농업보조금도 절반정도 줄여야 한다"며 "식량자급률 20%대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농업과 농민을 살리고, 건강한 먹거리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하루속히 마련돼야 하는 판국에 자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막무가내로 칼날을 휘두르는 트럼프 정권의 요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별 쿼터(CSQ)가 기존 TRQ(40.9만t) 내에서 배분됐고 기존 513% 쌀 관세율도 유지된다"며 "우리 농업에 추가적인 부담은 없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 5개국과 이러한 내용을 담은 협의도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홍 부총리는 “(우리나라는) 현재 논의 중인 WTO 농업협상은 없으며 당분간 예정된 협상도 없다”면서 “기존의 혜택에 당장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입장도 난처한 모양새다. 미국의 압박과 WTO의 개도국 혜택유지에 명분이 없고 미국의 압박은 압박대로 들어오는 셈이다.

만약이라도 WTO를 통해 개도국 지위를 잃어버린다면 한국 농업은 해외의 거대 자본을 필두로한 농산품들에 상대가 될 수가 있을까. 기업형 농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쌀과 효율과 상품성을 극대화한 플랜트 팩토리(스마트팜)에서 생산된 농산품을 생각해보면 그 결과는 뻔해 보인다.

디플레이션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저물가에 한국 농업의 취약성도 드러났다. 농산물의 작황 개선으로 생산량 증가로 가격이 폭락한 농산품들이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개도국을 졸업할 것이기 때문에 가정을 대비한 대책 마련이 지금부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브라질의 경우 미국이 양자협상을 통해 향후 협상에서 브라질은 개도국 우대혜택을 누리지 않겠다는 ‘포기 선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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