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잘 포장된 논둑길이 있다. 교행 할 길이 넉넉하지 않은 지라 쉽게 들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논둑길 끝에 산소로 들어가는 산길이 있는 것만 생각하고 무심코 그 길로 들어섰다가 급기야 마주 오는 차를 만나고야 말았다. 두 자동차는 마주 보고 당황히 멈춰 섰다. 그리고는 멍하니 앞의 차를 마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차도 쉽게 뒤로 뺄 생각을 못 할 만큼 한 가운데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상대 운전기사는 나보다는 한참 젊은 남자였고 (시골의 젊은 사람이라 60대 전후였을 것이지만) 결국은 자신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일 때까지 한참을 머뭇거렸다. 드디어 그가 움직였고 나는 그를 따라 옆을 지나면서 목례로 미안함과 감사함을 표했다.

이 일이 떠오를 때마다 가끔 자문한다. 그 때 내가 양보해야 했나? 하지만 늙은(?) 여자가 연신 뒤를 보면서 후진을 하고 젊은(?) 남자가 그 뒤를 따라 전진하는 것은 그림으로 보아도 민망할 듯하다. 그렇겠지? 내가 젊었을 때는 연배가 있는 분들에게 존대를 하고 도움을 드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그 분들에게 그런 서비스(?)를 할 때마다 내가 젊음과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연약한 분들을 위해서 그 힘을 쓴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 때는 내가 노인이 된다는 것이 상상되지 않았다. 아니 상상도 하지 않았다.

가끔 버스를 탈 때도 나는 노인, 아기를 안고 타는 여자, 짐이 많은 여자들이 먼저 타는 것을 기다렸다가 탄다. 내가 아직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하긴 70대 초반은 지금 같아서는 노인이라 할 수 없는 것은 맞다.

그런데 가끔 당혹스런 일이 일어난다. 젊은 남자, 여자들이 당연한 듯 거의 밀치는 수준으로 먼저 타려 하는 것이 보인다. 어차피 버스는 손님들이 다 타고 나서야 출발할 것인데 우격다짐 일찍 탄다고 한다면 자리를 먼저 차지하겠다는 생각 아니고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경로석이란 것이 있어서 그나마 노인들 자리가 보존되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요즘은 임산부석이란 것이 분홍색으로 마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멋진 해변에서 열리는 200명 이상 참석하는 국제 세미나 오프닝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행사장 한쪽으로 뷔페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주최 측은 식사 개시 전에 부인들이 먼저 줄을 서고 다음 신사들이 나오면 좋겠다고 미리 장내 공지를 하였다. 여성 참석자들이 먼저 줄을 서고 음식을 가져간 뒤에 남성 참석자들이 줄을 섰다. 국제회의가 정말 국제회의답다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서 비슷한 국제회의가 있었는데 나는 발리의 경험으로 한국에서도 ‘레이디 퍼스트’ 가 이루어 질 것을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행사 주최자의 자그마한 배려가 여자들을 행복하게 한다. 여자들이 행복해 하는 만큼 남자들 또한 내가 젊어서 노인들을 돌볼 때 느낀 것과 같은 힘을 느끼며 행복할 것이라 기대한다. 실지로 그들이 그렇게 느낄까? 아니면 여자들을 앞세우면 여자들이 건방지게 될까봐, 버릇을 잘못 들일까봐, 그런 특혜를 용납하지 않을까?

발리의 만찬장에서 나는 또 한 번 행복한 경험을 하였다. 유럽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꽃무늬로 장식된 ‘토일렛 버스’ 앞에서다. 하얀 바탕에 발리의 자랑스런 꽃- 이름은 캄보쟈- 그림으로 덮인 깨끗한 새 버스인데 양쪽으로 두 군데 화장실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서면 양 쪽은 화장실, 가운데는 두 군데, 손을 씻는 세면대가 있다. 문제는 남녀 한 줄로 서서 기다린다는 점이었는데 내 바로 앞에 섰던 남성 분이 -아마 인도나 파키스탄 분이 아니었나 싶은데- 나더러 먼저 이용하라고 손짓하는 것이었다. 웬 일인가? 싶었지만 응하는 것이 그 분의 호의에 답하는 것이라 생각해 목례를 하고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양보를 베푼 쪽에서 느끼는 행복감 또한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약자를 보호할 때 느끼는 힘이 가장 강력한 힘이 되는 그런 세상이라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가 운전을 할 때, 깜박이 등을 켜 주기만 해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차선을 바꾸기만 해도, 골목길에서 보행자의 길을 지켜주기만 해도, 운전하는 이의 품위를 느끼고 미소가 떠오를 때가 많다. 그 당연하지만 아름다운 행동이 얼마나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가?

큰 트럭은 버스를, 버스는 자동차를, 자동차는 자전거를, 그리고 모든 탈것은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항상 자신보다 약한 자를 보호하는 데에 기쁨을 느끼는 세상이 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가끔 부모의 마음으로 다 큰 자식을 잘 못 되게 인도하는 경우가 있다. 부모 스스로가 대접 받을 때 받아야 하는데 자식에게 버스에서도 먼저 타라 하고 반찬도 맛있는 것을 먼저 먹으라 하다 보면 그 자식은 사회에 나가서도 사회의 질서와 규칙을 지키지 못하고 자기 밖에 모르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자식이 사랑스러워도 좀 더 아름다운 사회의 질서를 위해서 자신의 사랑을 참아야 하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자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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