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식 편집국장

혹세무민(惑世誣民),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인다는 말이다. 혹(惑)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여 어지럽힌다는 뜻이고, 무(誣)는 없는 사실을 가지고 속이거나 깔본다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그릇된 이론이나 믿음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대개 사이비(似而非) 종교 교주,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는 학자와 정치가 등을 꼽기도 한다.


명나라 때 환관 유약우의 저서 ‘작중지’를 보면 “불교를 극진히 싫어하므로 불교의 가르침을 ‘혹세무민’하는 것으로 여겨 가장 먼저 마땅히 배척해야 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특별히 어떤 고사가 있었다기 보다 작중지에 나온 문장에서 쓰였던 것이 유명해져서 지금까지도 널리 활용됐다라는 설이 있다.


혹세무민의 대표적인 인물로 고려 말 공민왕 때의 승려인 ‘신돈’이 꼽힌다. 그는 일정 기간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기도 했다. 신돈은 공민왕이 개혁을 맡긴 5년6개월 동안 2년 만에 타락해 권문세족들의 주색잡기에 빠졌고, 부패했다. 그의 집은 7채나 됐으며 창고에는 뇌물로 들어온 재물이 산처럼 쌓였다. 그는 기고만장해져 처첩을 거느리고 아이를 낳았으며 주색에 빠져 살다 결국 역모의 혐의로 죽임을 당했다.


진시황제의 사후 ‘조고’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악행을 저지른 환관이다. 그는 진시황의 차남 호해의 혹세무민의 맹종으로 황제 이상의 권력을 휘둘렀다. 조고는 진시황이 전국 순시 중에 사망하자 그의 유서를 조작하여 장남 부소(扶蘇)를 자결하게 하고, 막내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했다. 호해의 형제 20여명과 충신들을 제거 한 후, 황제는 주지육림에 빠뜨려 놓고 국정을 농단했다. ‘지록위마’라는 말이 탄생한 배경이 되는 인물이다. 결국 조고는 자영에 의해 암살당했다.


러시아의 요승(정도를 어지럽히는 요사스러운 승려) ‘라스푸틴’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몰락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에서 많은 병사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엄청난 인원과 물자가 전쟁에 동원되면서 경제는 파탄나고 국민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황실을 지해한 사람은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아니라 황후 알렉산드라의 전폭적 신임을 받는 요승 라스푸틴이었다. 그 당시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황제나 다름없는 권력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1916년 12월 30일, 라스푸틴은 총에 난사당하고 은촛대로 머리를 강타당한 뒤 밧줄로 몸이 묶인 채 네바 강에 던져진채 살해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최고의 권력에 사로잡혀 국민을 돌보지 않고 왕의 눈과 귀를 가려 자신의 이익을 탐하다 결국 죽임을 당했다는데 있다.


최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폐기를 요구하며 ‘민부론’을 경제 정책 대안으로 들고나왔다. 황 대표는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내세우고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 가구당 연간 소득 1억원, 중산층 비율 70%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위한 전략으로는 경제 활성화, 국가가 아닌 국민 중심의 경쟁력 강화, 자유로운 노동시장, 지속 가능한 복지를 꼽았다. 구체적인 정책 과제로는 소득주도성장 폐기, 규제개혁, 양자 통상체제 강화, 탈원전 폐기, 시장 중심 노동법으로의 전환, 노조의 사회적 책임 부과, 복지 포퓰리즘 방지 등 20개 항목을 제시했다.


민부론은 국가 주도 경제 정책인 국부론(國富論)에서 시장 주도 자유경제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은 시대를 거스르는 실패한 정책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낙수 정책이 새로운 시대의 비전이 될 수도 없다. 이제는 유수 정책이 필요하다”며 “지능 자본이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유수 경제, 협력, 공유, 개방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한민국을 대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22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발표한 경제정책 '민부론(民富論)'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재탕한 수준"이라며 혹평했다.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실현 가능성은 알 바 아니고, 그냥 사람들 관심만 끌면 된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747' 공약과 판박이고, 정부의 과보호에서 벗어나 자유경쟁으로 기업과 개인의 활력을 높인다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줄푸세'의 환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변인은 "황교안 대표는 혹세무민하지 말아야 한다. 머리를 깎은 채 헤드셋을 끼고, 영화배우처럼 등단해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나 '극장의 우상'을 섬기는 퍼포먼스에 불과했다"며 "민부론의 실상이 참으로 아쉽고 민망하다"고 비난했다.


지난 2년 4개월간 한국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소득주도성장론, 탈원전, 남북 판문점 대화, 미북 대화 등 깜짝 이벤트도 많았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임금이 올랐지만 소상공인들은 알바조차 채용하는 것을 꺼리게 됐고, 기업도 인건비의 과도한 인상과 함께 주52시간제 근무제로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됐다. 국책기관이 발표하는 경제성장률은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은 검찰 수사로 연일 방송에 오르내리며 청문회장에서 한 말은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 누가 혹세무민하고 있나?


정권에 붙어 자신의 안위를 꾀하고 국민의 피같은 세금을 흥청망청 써대며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하고 경제는 폭망시켜가면서 오직 정권유지에 혈안이 된 채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으로 표를 달라고 하는 자가 누구인지, 국민은 알고 있다. “혹세무민 하지 말라?”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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