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재팬(No Japan).

투데이코리아=유한일 기자, 편은지 기자 |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배상판결을 빌미삼아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규제라는 경제보복에 나서며 촉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된지 100일을 넘어섰다.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일본의 평가와 달리 우리 국민들은 ‘노 재팬(No Japan)’을 외치며 활활 타오르는 불매운동을 전개해 왔다. 소비자 주도로 이제 일상이 된 ‘안사고, 안가고, 안타는’ 불매운동이 100일 동안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업계별 현황을 점검해봤다. <편집자주>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우리 국민들이 펼친 불매운동이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비상식적 근거로 수출규제를 단행한 일본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시작된 이번 불매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불매운동은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 속에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불매운동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 촉매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마케팅 업체 엠포스에 따르면 올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불매’가 언급된 횟수는 118만3825건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13년 ‘일본 다케시마 행사’에 따른 불매운동 당시 SNS에서 회자한 10만3476건의 10배가 넘는다.

불매운동은 한국에 상륙해 있는 일본 기업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 그 피해는 서서히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 서울에 위치한 혼다 전시장.

◇ 일본車 불매운동 ‘현재진행형’

먼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승승장구 하던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은 이번 불매운동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브랜드는 판매량 감소세를 소폭 회복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판매와 점유율이 추락하고 있는 추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토요타·렉서스·혼다·닛산·인피니티 등 일본차 5개 브랜드는 지난 9월 1103대를 판매하며 전년동월(2744대) 대비 59.8% 급감한 성적표를 거뒀다. 불매운동이 본격화되기 전인 6월 판매량(3946대)과 비교하면 무려 72.1% 감소했다.

일본차 브랜드는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모델 수요에 힘입어 올 상반기까지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 20%대 점유율을 이어왔다.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 5대 중 1대는 일본차라는 뜻이다. 하지만 6월 20.35%의 점유율을 보인 일본차는 7월 13.75%까지 떨어진 데 이어 8월 7.71%, 9월 5.46%로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브랜드별로 살펴보면 닛산의 상황이 제일 심각하다. 지난달 닛산의 판매량은 46대에 그쳤는데, 이는 불매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6월(284대) 대비 83.3% 떨어진 수치다. 닛산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의 지난달 판매량은 48대로 집계됐다.

일본차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고전하고 있는 닛산은 급기야 외신 보도를 통해 ‘한국 철수설’까지 돌았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한국시장에서의 활동을 앞으로도 지속해 나갈 것임을 확실히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 닛산 판매장 관계자는 불매운동과 관련해 “드릴 말씀은 없다”면서도 “통계로도 나오듯이 최근 상황이 어려워진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적게 팔린 브랜드는 혼다로 지난달 166대 판매에 그쳤다. 혼다는 일본차 브랜드 중 유일하게 전월(8월) 대비 판매량이 20.3%로 증가했다. 다만 지난달 기준 혼다는 국내 판매 일본차 브랜드 내에서 점유율이 15%에 불과하다.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는 0.82%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또 토요타는 지난달 374대를 판매해 6월(1384대) 대비 78.3% 줄었다. 전년동월 대비로는 61.9% 감소했다.

렉서스의 경우 9월 469대를 판매하며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다만 렉서스는 일본차 브랜드 중 유일하게 올해 ‘누적판매 1만대’를 돌파했다.

한 렉서스 판매장에 따르면 불매운동으로 렉서스 역시 타격을 입었지만 ES300h 등 주력 모델들을 찾는 고객들은 여전히 관심과 구매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자동차 커뮤니티 사이트 보배드림에 올라온 일본차 8자리 번호판. (사진=보배드림 캡쳐)

특히 최근에는 9월부터 국내에서 시행된 ‘8자리 번호판 제도’가 새로운 반일(反日) 운동의 표적이 되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9월부터 새로 등록한 차량의 번호판은 기존 7자리가 아닌 8자리를 적용한다. 만약 일본차가 8자리 번호판을 달고 있으면 불매운동이 시작된 7월 이후 구매한 차량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최대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서는 8자리 번호판을 ‘매국노 식별도구’로 활용한다는 취지의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한 회원은 8자리 번호판이 달린 렉서스 차량 사진을 올리고 “매국노를 만났다”고 했다. 또 “일본차의 교통법규 위반 행위를 신고했다”고 인증한 게시물도 찾아볼 수 있었다.

불매운동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최근 8자리 번호판 제도가 도입되며 당분간 일본차 브랜드의 추락은 이어질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본차 브랜드 관계자는 “모든 소비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여전히 일본 브랜드에 대한 반감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며 “실적과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가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 지난 8월 2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오사카행 한 항공사 카운터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일본 안가요” 관광객도 반토막

뜨겁게 펼쳐지고 있는 불매운동은 단순 제품 뿐 아니라 관광까지도 확대되고 있다. 해외여행 성수기임에도 불매운동 영향으로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20만1200명으로 전년동기(47만9773명) 대비 58.1%나 줄어들었다. 이는 8월 전년동기 대비 감소폭(-48.0%) 대비 10.1%p 늘었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단행한 7월(-7.6%)과 비교하면 50.5%p나 확대된 수치다.

한국 관광객들이 일본 여행을 집단으로 거부하며 국내 항공업계 역시 피해가 불가피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대안신당 윤영일 의원에 따르면 한일 관계 약화로 항공업계의 피해가 올 연말까지 5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윤 의원은 “단기적으로 위기를 단계별로 구분해 적합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론 다양한 노선을 재편하는 등 대체시장 발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유니클로 명동중앙점 입구에 ‘15주년 감사 세일’라는 행사 문구가 붙어있다.

◇ 한산했던 유니클로...100일 지난 지금은?

일본 불매운동 열기는 소비자들이 가장 손 뻗기 쉬운 유통업계에 활발히 퍼져나갔다. 특히 지난 7월 ‘유니클로’ 일본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 오자키 타케시 재무책임자(CFO)의 “한국인들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은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

불매운동이 어느덧 100일, 3달을 넘어선 이 시점에서 <투데이코리아>는 유니클로에 대한 불매운동 열기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16일 오후 2시께 대표 매장인 명동중앙점을 찾았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이후 주타킷으로 지목된 유니클로는 최근 ‘15주년 감사 세일’을 진행 중이다. 이 때문인지 꽤 많은 고객들이 유니클로 매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장 내부 역시 이전과 비교하면 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불매운동 초기 방문 고객 수보다 직원 수가 많았던 상황과 비교해도 최근 유니클로가 다시 활기를 찾는 분위기임을 알 수 있었다.

이날 기자가 확인한 결과 매장 내 외국인과 한국인의 비율은 6:4 정도였다. 매장 1층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에 비해 2,3,4층은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 유니클로에 소비자들이 다시 모이는 것은 15주년 세일의 영향도 있지만 불매운동이 시작된 여름과 달리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히트텍’과 ‘후리스’ 등 유니클로 주력 상품을 구매하려는 계층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샤이 재팬’ 현상은 여전히 뚜렷해 보였다. 매장 앞에서 유니클로 쇼핑봉투를 들고 나오는 소비자에게 ‘유니클로 불매운동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런거 모른다”, “이런거 하지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황급히 자리를 뜨기 바빴다.

매장에는 들어갔지만 구매는 하지 않은 이들은 “살게 없었다”, “세일이라고 해서 들어갔다가 구경하고 나왔다”, “그냥” 등의 반응을 보였다.

▲ 지난 16일 기자가 방문한 유니클로 명동중앙점 1층.

불매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7~8월 유니클로의 국내 매출은 70% 가까이 급감했다. 유니클로는 판매 부진에 따른 실적 감소로 올 하반기 국내 시장의 구체적인 매출 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유니클로 창업자 야나이 타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은 최근 “한국인이 일본에 반대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며 “지금 일본은 최악”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유니클로 회장이 이례적으로 자국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 것을 두고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유니클로에 대한 반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간 강세를 보이던 유니클로가 고전하고 있는 사이 국내 SPA 브랜드 신성통상의 탑텐과 이랜드월드의 스파오 등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제 유니클로 ‘경쟁 브랜드’가 아닌 ‘대체 브랜드’로 지목된 것이다.

탑텐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45% 증가한 1200억원이다. 회사는 올해 연매출 28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파오 역시 올해 올해 매출 목표를 3500억원으로 잡고 2022년까지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 서울 시내 한 마트 주류코너 모습.

◇ 10년 만에 1위 내려놓은 日 맥주

일본 맥주 역시 유통업계에서 대표적으로 타격을 입은 품목으로 꼽힌다. 일본맥주는 국내 수입맥주 시장에서 10년 동안 지켜오던 1위 자리를 내줬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산 맥주는 지난 9월 수입액 순위에서 27위로 추락했다. 1년 전과 비교해 3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불매운동이 시작된지 불과 2개월 만이다.

대형마트의 감소세도 수치적으로 매우 크게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이마트의 경우 7월 기준 일본맥주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80.4% 감소했다. 8월과 9월 역시 전년동기 대비 94.2%, 96% 감소로 하락세가 더욱 확대되는 모양새다.

또 지난 7월 대비 8월 일본맥주 매출은 71.8% 감소했다. 이어 7월 대비 9월은 81.9%까지 하락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일본 맥주의) 매출은 계속 하락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맥주를 제외한 해외 맥주는 물론 국내 수제맥주 업계까지 활짝 웃게 됐다. 국내 수제맥주 기업인 제주맥주에 따르면 올해 6~9월 서울지역 신규 입점 유흥 매장 수가 전월 대비 월 평균 34%로 지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주맥주는 “여름 시즌에 수요가 크게 늘었다가 점차 감소하는 맥주업계 특성상 이례적인 성과”라고 설명했다.

◇ 불매운동 열기 이어질 듯...“日 역사왜곡 잡는 계기”

현재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난 7월에 비해서는 그 기세가 다소 약해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을 한일 양국이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수출규제 등 경제보복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예전의 불매운동은 몇몇 시민단체가 먼저 주도했다면, 이번 불매운동은 네티즌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지난 100일 간의 일본 불매운동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 좋은 계기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