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이 서울 강남구의 한 약국에서 나오고 있다.

투데이코리아=유한일 기자 | 지난해 발생한 발암 우려 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 성분이 검출된 고혈압약 ‘발사르탄 사태’와 관련해 제약사들이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가 부담금을 제약사로부터 돌려받겠다며 61개 제약사에 20억원에 달하는 구상금을 청구했고, 이번 사태 여파로 대부분 회사의 발사르탄제제 처방실적이 바닥을 찍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약사에 책임을 전가한다며 소송전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를 상대로 맞서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지난달 26일 69개 제약사에 ‘발사르탄 고혈압 치료제 교환에 따른 공단부담 손실금 고지 안내문’을 발송하고 구상금 20억3000만원을 청구했다. 공단은 해당 제약사에 이달 10일까지 구상금을 납부하라고 독려했다.

이번 구상금은 지난해 발사르탄 판매 중지로 환자들이 다른 고혈압약을 조제 받아 발생한 것에 따른 손실금이라는 것이 공단의 주장이다. 지난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NDMA 함유 발사르탄 원료를 사용한 70개 제약사 175개 품목에 대한 잠정 판매중지를 내리면서, 환자가 먹던 약을 바꿔 환자의 재처방·재조제로 발생한 부담금을 제약사로부터 돌려받겠다는 설명이다.

구상금 청구 규모는 제약사별 차이를 보였다. 전체 69개 제약사 중 38곳은 1000만원이 넘었다.

구상금이 가장 많이 청구된 회사는 대원제약으로 2억2275만원 규모다. 이어 △한국휴텍스제약 1억8000만원 △LG화학 1억5900만원 △한림제약 1억4000만원 △JW중외제약 1억2088만원 △한국콜마 1억314억원 등이 1억원 이상 청구됐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당초 정해진 기간인 지난 10일까지 구상금을 납부한 제약사는 전체의 23.2%에 불과한 16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납부금액 또한 고지액(20억3000만원)의 4.8%인 1억원으로 집계됐다.

정부로부터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를 받은 제약사들은 지난 1년 동안 오히려 수백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공동소송으로 맞설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공단은 “독촉고지를 한 후 끝까지 납부하지 않는 제약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 손해배상 청구 대상 제약사 69곳의 판매금지 발사르탄제제 원외 처방실적 (단위: 백만원, %, 자료: 유비스트)

의약품 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 8월까지 공단으로부터 구상금이 청구된 제약사 69곳의 발사르탄제제 84개 품목 원외 처방규모는 전년동기(1055억원) 대비 81.6% 감소한 194억원으로 나타났다. 처방손실 규모가 86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공단이 청구한 구상금 규모보다 40배 이상 많은 손해를 감수한 셈이다.


69개 제약사 중 처방손실 규모가 가장 큰 곳 역시 대원제약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지난 2017년 9월부터 2018년 8월까지 82억6200만원의 처방실적을 냈다. 하지만 이후 올 8월까지 처방실적은 0원으로 나타났다.

한국휴텍스제약은 2017년부터 2018년 8월까지 85억600만원의 처방실적을 냈는데, 이후 11년 동안 처방액이 6000만원으로 추락했다. LG화학은 같은 기간 72억7300만원에서 0원으로 떨어졌다.

또 △JW중외제약(61억5400만원) △명문제약(51억4800만원) △한국콜마(46억100만원)△한림제약(45억9000만원) 등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총 69개사의 60개 품목이 같은기간 처방실적인 0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체 84개 품목 중 71%에 달하는 수치로, 발사르탄 의약품 10개 중 7개가 시장에서 사라졌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구상금 청구가 부당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소송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NDMA는 전 세계적으로 발사르탄 원료에서 규격 기준이 없는 유해물질이기 때문에, 제약사가 발사르탄 수입·제조 과정에서 NDMA 검출 위험을 인지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정부 역시 위험성 인지를 하지 못한 상황에 사태가 발생하자 부랴부랴 모든 책임을 제약사에게 묻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일부 제약사들은 정부를 향한 대응에 공감하면서도, 이 사실이나 회사 이름이 알려지는 걸 꺼려하고 있었다. 어찌됐던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찍히면 회사에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또 소송으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쉽게 소송에 나서길 꺼리는 것도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사실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규정대로 다 진행한 일을 가지고 정부가 제약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아 부당하다고 느껴진다”면서도 “제약사들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정부한테 낙인 찍히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소송전이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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