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기업도, 돈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국내 투자 환경이 나빠지면서 기업의 ‘코리아 엑소더스’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이 유치한 외국인투자는 1500억 달러에 불과했는데, 한국 기업은 해외에 나가서 3100억 달러를 투자하고 150만개의 일자리를 해외에서 만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중소기업들마저 앞 다퉈 탈(脫) 한국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온갖 규제와 고비용, 노동시장 경직 등에 질려 대.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살길을 찾아 해외로 탈출하는 상황이다.

국내외 기업들의 국내 총투자금액은 작년 2분기부터 다섯 분기 연속 줄어들었다. 특히 국내 설비투자는 지난해 11월 이후 9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2년 전만 해도 16% 안팎의 증가세를 보였지만 올 1분기에 17.4% 급감한 데 이어 2분기에도 7.8%나 줄었다. 반면에 해외직접투자액은 지난해부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자본의 해외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전체 고용의 87%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투자 증가세가 뚜렷하다. 지난 2년간 29.1%나 급등한 최저임금 탓이 크다. 올 상반기 외국인직접투자액도 전년 동기 대비 45.2%나 감소, 외국기업들의 국내투자도 썰물처럼 줄어들고 있다. 제 나라 기업들도 국내 투자를 외면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어떤 외국 기업이 돈을 들고 한국에 사업하러 오겠는가.

기업의 해외투자가 나쁜 일은 아니다. 글로벌 분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적합한 곳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첨단 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글로벌 분업 체계 활용 차원에서 공장이나 판매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라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소규모 개방경제인 점을 감안할 때 해외 시장 진출이나 선진기술 도입을 위해 해외 직접투자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있다. 선진시장으로 투자처를 다변화하기 위해서도 해외 직접투자는 불가피하다 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투자 급증세가 탈(脫)한국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경직과 각종 규제 등으로 국내 투자가 얼어붙어 있는 가운데 해외 투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하는 돈이 국내에서 돌지 못하고 해외로 빠져나가고 외국인 직접투자액이 줄고 있다는 건 한마디로 ‘한국에선 기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돈은 이윤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34.3달러(2017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 내 꼴찌 수준이다. 일본은 41.8달러, 독일은 59.9달러다. 국내 완성차 5개사의 평균 임금은 8915만 원으로 도요타(8484만원)나 폴크스바겐(8892만 원)보다 높다. 매출액 중 임금 비중도 12.1%로 최고다. 높은 인건비와 낮은 노동생산성, 세금, 규제 등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장벽은 높은데 원격의료와 공유경제 서비스 등 신(新)산업에 대한 규제혁신에는 거의 손을 놓고 있으니 기업들이 살길을 찾아 줄줄이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투자 매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상태가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되겠다. 기업이 해외로 떠난다는 건 자본뿐 아니라 일자리와 기술도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 부진은 일자리 감소를 초래하고 이것이 소비 둔화와 경기 침체로 이어져 투자를 더욱 위축시키는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최근 1년간 구직활동조차 단념한 ‘취업 포기자’가 54만4238명(상반기 월평균)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이 0.98명(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유일의 ‘출산율 0명대 국가’로 전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고령화와 저성장이 가속화하는 나라에서 미래까지 보이지 않으니 탈 한국 현상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국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면 기업 애로사항부터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말로는 혁신을 외치지만 기업 애로를 해소시켜 줄 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새롭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절실하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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