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복지부동’ 산자부를 공론장에 불러내

▲ 투데이코리아 김성기 부회장.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얼마 전 언론 인터뷰에서 각종 전기료 특례할인을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한전의 적자 재정을 도마에 올려놓고 정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사실상 공개토론을 요구한 발언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강행하면서 적자가 커지기 시작했으나 산자부는 한전의 곤경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모른 척해왔다. 적자는 한전이 알아서 대처하면 되고 탈원전은 정부 원안대로 간다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우량 공기업으로 꼽혀 국내와 미국증시에 상장된 한전은 탈원전 정책에 따라 비교적 값이 싸고 오염물질이 적은 원전 가동을 줄이고 태양광과 풍력, LNG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면서 지난해 2080억 원, 올 상반기 9285억 원 적자를 냈다. 비상경영에 들어가 불필요한 지출을 가급적 줄이는 긴축대책을 시행했지만 정책 선회에 따른 구조적인 적자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내증시와 뉴욕증시에서 한전 주가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했고 S&P 등 국제신용평가사의 등급도 떨어졌다.

국내 소액주주들로부터 업무상 배임혐의로 소송에 말린 김 사장은 정부 정책에 따라 도입된 전기료 특례할인을 폐지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전 특례할인은 필수 사용량 보장공제와 주택용 절전할인, 여름철 누진제 할인, 신재생에너지 할인, 전기차충전과 전통시장 할인 등을 망라해 지난해 할인액이 1조1434억 원에 달했다. 사실상 전기요금을 올리겠다는 통첩과 다를 게 없다.

김 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제시한 카드가 그냥 통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 산자부가 발끈하면서 국회에서 벌어질 공방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윤모 산자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할인 특례 일괄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즉각 밝혔다. 성 장관은 이달 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각종 특례요금은 도입 목적과 정책효과를 감안해 검토를 거친후 조정과 연장,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며 한전을 구상을 반박했다. 그러나 이종구 위원장은 성장관에 대해 “한전 적자를 방치할 것이냐”며 “장관이 책임지고 적자 해소방안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라고 한전을 거들었다. 한전은 산자부의 반대 방침 대해 “일몰(종료시한) 도래 이후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계획일 뿐 일방적인 폐지는 아니다”라고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달 28일 이사회에서 요금체계 개편논의에 착수하겠다는 토를 다시 달았다.

전기요금체계 개편은 산자부의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한전 이사회 표결로 확정되는 만큼 당연히 정부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를 뻔히 알고 있는 한전이 폐지 카드를 불쑥 내민 배경에는 적자를 더 이상 떠안기에는 한계에 도달했으니 정부 내에서 금기로 여겨온 탈원전 철회요구를 공론화해 해법을 찾아달라는 다급한 항변이 깔려있다. 정부가 무리한 정책을 도입해 생산비를 잔뜩 올려놓고 한전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책임에 대한 반발이다.

정부는 문 대통령 임기 중에는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거듭 공언했다. 하지만 한전 적자누적으로 내년 4월 총선 이후 어떤 식으로 든 전기요금 체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탈원전의 부담을 또 국민에게 떠넘기느냐는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탈원전 반대 여론은 갈수록 높아지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 4호기 건설재개 범국민 서명운동’도 힘을 받고 있다. 한전이 산자부 입장을 잘 알면서도 특례할인 폐지를 들고나온 계산에는 얻어터질 때 터지더라도 일단 탈원전 이슈를 링에 올려놓고 공개 스파링을 벌여보자는 심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전도 이제 할 말은 하겠다는 각오와 끈기가 필요한 결심이다. 한전이 이런 각오를 얼마나 관철시킬지, 그 항변이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 관심을 끈다.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문 대통령 정부가 이제라도 경제 회생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로 탈원전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을지 국민이 주목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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