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타이틀 화면

투데이코리아=김충호 기자 | 시청자 제작 전문 TV채널 시민방송이 박근혜 정부 때 방영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가 부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21일 대법관은 방통위 제재를 두고 "부적법했다(김재형·박정화·민유숙·김선수·노정희·김상환, 이하 다수의견)"와 "적법했다(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이하 반대의견)", 6 대 6 반으로 나뉘어 논쟁했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대법관들은 '백년전쟁'이 방통위의 방송심의 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에 대해 방송 내용의 심의규정 준수 여부에 대해서는 팽팽하게 의견이 갈렸다.

우선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상반된 역사적·사회적 평가가 존재하고 이들의 친일 여부나 업적과 관련된 논쟁은 지금도 정치적 견해 차이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다수의견이 있었다.


반대의견은 "역사적 사실들은 이를 선택해 기록으로 남긴 사람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굴절되기 마련이므로 어떠한 내용이 서적이나 언론보도 등 자료에 기재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숭배해 곧바로 사실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백년전쟁'은 제작자가 선별한 자료만을 근거로 자료의 전체 맥락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일부 표현만을 발췌·인용해 이를 단정적으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방송했다"고 했다.

방송의 구성 등이 시청자에게 남길 수 있는 인상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다. 다수의견은 "방송의 내용과 구성, 인터뷰 대상자의 지위나 경력 등이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기존에 세워진 역사적 사실과 그 전제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추측이나 과장, 단정적 표현 및 편집기술을 통해 사실관계와 평가를 자신의 관점으로 왜곡시켜 역사적 인물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했다"라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사실상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은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했다.

다수의견은 '백년전쟁'이 두 전직 대통령을 해석하는 다양한 입장을 공평하게 다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에게 접근 가능한 방송 기회가 보장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서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에의 참여 등을 통해 여러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열려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백년전쟁'이 방통위 제재 대상이 된 것은 "특정한 관점을 취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관점의 다양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특정 인물에 대한 날선 비판과 조롱만이 있을 분 공정성·균형성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이 방송사업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적 책임도 다하지 못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지 확정할 수 있는 역할을 특정 방송의 제작자 나아가 우리 세대만이 독점할 수 없다"며 "이는 국민 개개인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영역이므로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송하려면 자신의 오류가능성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성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대법관들은 대법원을 반으로 가른 논쟁의 의미에 대해서도 상반된 해석을 내놨다. 다수의견 측은 "백년전쟁이 제기한 역사적 쟁점에 관해 어떤 관점과 평가가 더 올바르고 타당하냐가 아닌 '국민의 역사 해석과 표현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 한계와 정도'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나눈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반대의견 측은 "사법부가 역사를 해석할 수는 없다"면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모욕과 조롱이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 하는 범위 내에 있다는 견해는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단에 대해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방통위의 제재를 비난하며 “유튜브와 같은 1인 매체의 범람으로 방송사 인허가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안 받은 유시민도 방송인이라고 자임하지 않나? 내가 수없이 강조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틀린 말도 할 수 있는 자유다”라며 방통위는 시대착오적 기구라고 지적했다.

또 “방송은 정말 모두 방통위의 심의 대상이 되어야하고, 앞으로도 그들의 판단에 따라 언론이 규제를 받아야 하나?”라며 “방송의 심의 "기준"이 무엇인가? 조선일보의 진실과 한겨레의 진실은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거리가 멀다. 뭐가 진실이라는 것인가?”라며 “다른 의견이 싸우는 것이 민주주의다. 사기꾼 들은 법이 아니라 시민들이 외면해야 성숙한 사회가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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