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한국 경제가 2% 안팎의 저성장 함정에 빠져 내년에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대대적인 재정살포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잠재성장률(2.5~2.6%)을 밑돌 것이 확실시된다. 석유파동이나 외환위기 등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잠재성장률을 크게 밑돈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집행 예산을 금년 내에 반드시 소진하도록 독려하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에 힘입어 올해 성장률이 가까스로 2% 선에 턱걸이하더라도 이는 한은이 성장률을 집계하기 시작한 1954년 이래 5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10년 만에 최악의 성적이다. 성장률이 이보다 낮았던 해는 1956년(+0.7%), 1980년(-1.7%), 1998년(-5.5%), 2009년(+0.2%) 등 네 번뿐이다. 제2차 석유파동(1980년), 외환위기(1998년), 금융위기(2009년) 등 하나같이 세계적 차원의 경제 충격이 있을 때 발생했다.

내년에는 한국 경제가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과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교차한다. 한은은 올해보다 높은 2.3%로 내다봤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S&P 등도 2.1~2.3%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내년을 더 나쁘게 보는 기관들도 많다. LG경제연구원 등 일부 민간 경제연구기관들과 국가미래연구원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1.8% 내외로 보고 있다. 외국 투자은행(IB)인 아메리카-메릴린치(BoA-ML)와 모건스탠리도 올해 성장률을 1.8%로 제시한 데 이어 내년에는 1.6%, 1.7%로 더 나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내년 성장률 전망이 엇갈리는 것은 대외경제 환경이 무척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내년이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미·중 무역 분쟁이 완화돼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이로 인해 내년 중반 이후 수출과 설비투자가 늘어나면서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 등으로 민간 소비도 증대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미·중 무역 갈등이 나아지지 않고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경우, 내년 역시 올해처럼 지지부진한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은은 내년도 설비투자 증가율을 4.9%로 잡았다. 일부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고 있어 올해보다는 나아지겠지만 올해의 -7.8%와 수출부진 등을 감안해 과도하게 높게 설정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 잠재성장률을 2.5~2.6%로 추정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자본과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였을 경우에 무리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이를 밑돈다는 것은 국가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불행하게도 한국 경제는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2.5% 아래에 머물 것이 확실시된다. 이는 1954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를 반영,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 경제가 반세기 만에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경제는 점차 선진화하면서 매년 성장률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모습이다. 산업구조를 고도화하지 못해 고부가가치 기술이 부족한 상태이고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은 이제 우리 주력산업의 기술력을 턱밑까지 추격,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최근 발표한 ‘내년 40개 산업별 산업위험 전망’에 따르면 내년에 실적이 개선될 업종은 전무한 상태다. 주력산업의 조로현상과 새로운 성장 동력 부재가 한국 경제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저출산ㆍ고령화 심화로 우수한 노동력 확보마저 쉽지 않아 잠재성장률도 2%대 중후반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유니콘 기업 육성’과 ‘인공지능(AI) 국가’를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의 주요 키워드로 내세우기로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AI와 유니콘 기업 육성을 산업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제도 정비 방안을 다음 주에 확정·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I 계획에는 차세대 AI 기술 확보, AI 기업 육성, 공공·민간 전 분야에서의 AI 활용 전면 확대, AI가 촉발하는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 정비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잘 진행돼 AI가 제조업을 뒷받침할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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