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는 때를 들라고 하면 그건 도시나 농촌이나 김장하는 날을 꼽을 수 있겠다. 김장이야말로 갈무리의 끝판왕이니까. 보통 양력으로 12월 1일 전후해서 김장을 한다. 올해야말로 마침 12월 1일이 일요일이니 11월 말일 또는 그 전날부터 배추를 절이고 속을 준비하면서 휴일 날 김장을 하는 가정이 대부분인 듯싶다.

문제는 김장이 끝나면 잠깐 허탈해진다는 것이다. 농촌에서의 한 해 일을 다 마쳤다는 생각에 뿌듯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린 귀촌 가정이니까 계산기를 두드려 보지는 않지만 진짜 농사꾼들은 한해의 수확을 정확한 수입으로 잡을 시기일 것이다. 눈이 오지 않은 채로 대설이 지났다. (12월 9일) 지구 온난화가 눈 오는 시기를 뒤로 늦췄겠지만 아마 옛날에는 이 비슷한 시기에 눈이 내렸을 것이다. 12월의 마지막 절기는 22일에 있을 동짓날이다. 올해는 팥을 수확했으니 내가 심어 거둔 팥으로 팥죽을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농촌의 밤은 길다.

5시 반이면 벌써 어둑어둑하다. 불을 켜게 되면 커튼을 쳐야 한다. 안이 밝으면 창문으로 훤히 보일 수 있으니까. 커튼을 치고 나면 집안은 아늑한 동굴 속과 같다. 동굴 속에서는 아득한 옛 원시인들의 숨결이 묻어나기도 한다. 전기야 없었겠지만 비슷한 상황처럼 생각된다. 그렇게 인간의 옛 선조들로부터 내려오고 또 내려온 우리 현존 인간들의 생활이 꿈결과 같이 흘러가는 속에 내가 있는 듯 느껴진다.

고대인들은 어두워지면 낮 동안 잡거나 채집한 음식물들을 조리하여 식사를 했으리라. 식량이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행복했으리라. 아니면 고픈 배를 쥐어짜며 허술한 잠자리로 들어가야 했겠지. 지금 현대의 우리들은 갈무리한 식량 중에서도 건강에 좋은 쪽으로 신중히 선택해서 한 끼의 식사를 마련한다. 선택의 목적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당뇨와 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음식물을 피하고 활성 산소를 많이 배출할만한 식품을 배제하면서 선택한다. 이렇게 우리 생활은 복잡해져 버렸다. 그런 점은 시골에 있어도 도시에 있어도 비슷해진 것 같다. 회관의 할머니들도 무엇이 건강에 좋은 것인지 많이 알고 유기농 식품을 분별하는 것도 도시의 이웃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의 밤은 길다.

일찍 잠이 들었다면 한 숨 자고 났는데도 한 밤의 중간쯤에 있을 때도 있다. 물론 처음부터 잠이 찾아오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지만. 이럴 때 잠을 더 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 내일 아침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귀촌주부 아닌가? 남편을 출근시켜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나는 이 특권을 죽을 때까지 잘 아끼며 소유하고 싶다. 내일은 내일의 하루가 흘러갈 테고 난 오늘 밤의 시간을 귀하게 사용하고 싶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좋고 유 튜브를 보기도 하지만 책을 보는 것이 가끔 행복하다.

이곳에선 주로 –단포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다. 유 튜브에서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 ‘총, 균, 쇠’를 빌려 보았다. 퓰리처 상 수상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가 저자인데 그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지난 세기의 제국주의 팽창에 대해 언급하면서 –왜 어떤 민족들은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고찰한다. 위의 의문에 대한 답은 지정학적인 이유가 답의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식량이 풍부했던 대륙에 그 나라가 있었다면 여유 시간에 과학을 발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럴 만큼 고대에는 식량이 중요했다.

식량 다음으로는 정보이다. 다른 지역에 대한 정보에 눈멀고 귀 먹어서라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정보를 알 만큼 과학 지식이 발달하지 않아서, 또는 발달한 나라와 너무 먼 곳에 있어서라는 답도 가능한 것이다. 과학의 발달에는 자유로운 경쟁이 기본이자 최선이라는 얘기도 풀어준다. 왜 중국이 고대 문명국가의 하나였으면서 유럽에 뒤처졌는지를 고찰한다. 그 이유는 중국은 대부분 통일 국가로 내려왔지만 유럽은 수많은 나라로 쪼개져 서로 경쟁하며 발전했다는 것이다.

콜럼버스를 예로 들면 그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프랑스와 포르투갈 왕에게 도와주기를 요청했고 거절당했지만 결국 스페인 국왕에게서 자금을 받아 세 척의 배로 탐험에 나섰단다. 즉 4개국이 콜럼버스의 탐험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동양에서는 명나라 사람 정화가 한 때 넓은 바다를 개척했지만 명 황제의 말 한 마디에 모든 배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적시해 준다.

정화를 받아줄 다른 나라가 존재하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책은 역사와 함께 흘러오며 풀리지 않았던 많은 의문을 풀어준다. 저자의 견해가 100프로 정답은 아닐지라도 우리 사유의 폭을 넓혀 준다는 점에서 책은 겨울의 밤을 함께 하기에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 읽다가 치워둔 푸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1권, ‘스완의 집 쪽으로’도 재미있게 읽었다. 길고 지루한 글이라는 통념, 아니 사실 옛날엔 지루했다. 7권까지의 책 중 1권의 분량만도 장편 두 권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한 때라 그런지 묘사와 의미에 방점을 두어가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마르셀이 수많은 불면의 밤이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밤 풍경-어머니의 키스를 애태워가며 기다리던.......-과 마들렌 과자를 홍차에 적셔먹는 순간 떠오른 어린 시절의 낮 풍경이 병치되며 묘사된다. 마르셀의 뇌리에 새겨진 어린 시절의 시골은 콩브레 라는 곳이었다. 그 곳의 자연은 마르셀의 일생을 지배한다. 도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는 사람과 얼마나 대비되는가? 비록 유년에는 시골에서 살지 못 했지만 노년에 이곳 영천 시골에 내려온 나에게도 그런 추억의 귀함이 느껴진다. 지금 맛보는 이 자연의 혜택을 나의 유년에 먼저 세례 받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평생을 보냈더라면 좀 더 보람 있는 생애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꿈을 꾸기에 알맞게 농촌의 밤은 부드럽고 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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