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편은지 기자 | “커피 드시고 가세요? 가지고 가세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들을 수도 있는 질문이다. 이는 지난해 8월부터 정부가 내놓은 일회용품 규제책에 커피전문점 종사자라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질문이 됐다.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우 플라스틱 컵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환경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정부는 최근 1-2년간 전례에 없던 강한 규제책을 내놨다. 마트와 슈퍼마켓, 제과점 등에서 무상봉투 제공을 금지시키고 커피전문점에서는 포장의 경우에만 플라스틱 컵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무료로 즐기던 것들이 사라지자 소비자들의 불만은 쏟아졌고, 유통업계에서는 이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대책을 세우는데 전력투구 하고 있다.
▲ 자료사진.

◇ 빠르고 편한 ‘배달·택배’의 부작용

일회용품 사용 제로가 불가능한 업계가 있다면 그건 바로 스마트폰과 함께 급성장한 배달업계일 것이다. 국내 배달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일회용품 소비도 늘었다. 이전에는 그릇을 수거해가는 업체가 많았으나 요즘은 수거 인력의 인건비를 덜 수 있어 일회용품을 선호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번거롭지 않으니 편하다는 반응이다.

최근 음식 주문앱(app) ‘배달의민족’에서는 주문을 할 때 ‘일회용 수저, 포크 안 주셔도 돼요’라는 선택란이 생겼다. 그러나 이 선택란에 체크를 하고 주문해도 음식 용기는 결국 플라스틱이다. 다시 말해 배달 업계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소비자가 일회용 수저를 쓸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정도다. 결국 음식 용기를 정하는 것은 주문한 가게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 1인가구와 온라인 쇼핑 증가의 영향으로 택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또한 일회용품의 소비를 촉진시키고 있다. 경기연구원의 ‘폐플라스틱 관리정책의 한계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택배 건수는 44.8건으로 세계1위 수준이다.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또한 지난 2017년 기준 연간 790만t(톤)으로 5년간 30% 늘었다.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의 재활용률은 62% 수준으로, 일본의 재활용률인 83%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 냉매는 물로, 플라스틱은 종이로

정부의 친환경 규제책에 가장 큰 직격타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유통업계에서는 일회용품을 줄이려 대안책 강구에 필사적인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국내 온라인 쇼핑 업계에서는 택배로 인한 일회용품 사용을 최대한 줄이려 다양한 방법을 내놨다.

새벽배송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마켓컬리는 ‘올 페이퍼 챌린지’(All Paper Challenge)를 표방하며 올해 9월부터 플라스틱 지퍼백을 종이 포장지로 바꿨다. 배송에 들어가는 모든 포장재는 100% 종이다. 마켓컬리 홍보팀 관계자는 "사탕수수와 옥수수에서 추출한 소재가 20% 이상 포함된 지퍼백을 사용하다가 이마저도 플라스틱이 들어가게 돼서 100% 종이를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로켓배송을 내세우고 있는 쿠팡 역시 1년여 전부터 포장법을 꾸준히 혁신했다. 신선식품에 사용되던 스티로폼 박스를 없애고 종이 상자로 바꿨다. 또 기저귀, 생수, 휴지 등을 배송할 때는 별도로 포장을 하지 않는다. 보냉을 위해 사용하던 PET 소재 아이스 팩은 지난해 10월 종이 소재 팩으로 바꾼 데 이어 올해 6월부터는 냉매 대신 물을 얼린 팩으로 대체했다.

쓱(SSG)닷컴과 헬로네이처는 회수를 통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보냉 가방을 선보였다. 쓱닷컴이 올해 6월부터 새벽배송 이용자들에게 제공한 40ℓ 용량의 가방은 9시간 가량 보냉이 유지된다. 개당 3만 원이 넘지만 고객이 돌려주지 않아도 벌금은 없다.

▲ 한 마트에서 시민들이 종이박스로 물건을 포장하고 있다.

◇ 관심 많은 소비자, 규제 높이는 정부, 새우 등 터지는 기업

일회용품 줄이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녹색소비자연대와 공동으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7.4%는 ‘제품 구매 시 플라스틱 포장이 과도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이들은 플라스틱 등의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쇼핑 방식이 등장한다면 구매처를 변경해서라도 이용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게다가 정부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지난달 22일 환경부가 발표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중장기 단계별 계획(로드맵)’에 따르면 오는 2021년부터는 △종이컵 사용 금지 △먹다 남은 음료 테이크아웃(포장) 무상제공 금지 △포장·배달 시 일회용 식기류 제공 금지 등의 규제가 적용된다. 지난해와 올해에 이어 더 강도 높은 규제책이다.

그러나 사실상 플라스틱이 없어져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유통업계에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온다. 최근 몇 해 사이 급진적이고 강도 높은 친환경 정책에 고객들의 불만이 쏟아졌으나 이를 어르고 달래며 대안책을 내놓은 것은 결국 업계 종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땅한 대책 없이 규제 강도만 높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들 역시 사용하는 물건이 환경오염을 줄이고 인체에도 해가 되지 않는다면 찾아 쓸 의향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경각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친환경적 제품이니 소비자에게 무조건 사용하라고 권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줄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가 불편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례로 정부는 장바구니 사용 독려를 위해 대형마트에서 자율포장대의 종이박스를 없애려다 해당 사안이 국민청원에까지 올라오는 등 불만이 커지자 결국 꼬리를 내렸다. 환경부는 결국 “대형마트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대형마트 측에 선택권을 쥐어줬고, 대형마트 3사는 테이프와 노끈만 제외하고 계속해서 종이박스를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의 경우에도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빨대를 도입했으나 종이 빨대가 물에 닿아 젖으면 금방 눅눅해지고 접혀 이를 불편해하는 소비자가 많다.

이에 고객잡기가 중요한 유통업계 측에서는 친환경도 좋지만 소비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전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 1위’라는 꼬리표를 빨리 떼어내고 싶은 정부의 욕심도 이해하지만 사실상 이를 바꿔나가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과 적절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제품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사용이 가능토록 하고 회수율을 높이는 작업도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을 안 쓰는 게 가장 좋지만, 소비자들에게 급작스러운 규제책을 강요하기보다는 버려진 플라스틱을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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