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유한일 기자 |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도 불황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바쁜 한해를 보냈다. 현대·기아·르노삼성·쌍용·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5개사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증명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시장 주도권 쟁탈을 위해 공격적인 SUV 신차 출시를 이어가며 ‘SUV 대전(大戰)’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의 고질병인 노사간 마찰은 올해도 재현돼 몇몇 회사가 몸살을 앓고 있다. 또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불매운동으로 일본차 브랜드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기도 했다. 올 한해 자동차 업계를 달군 ‘3대 이슈’를 선정했다. <편집자주>
▲ 팰리세이드.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 팰리세이드가 일으킨 SUV 돌풍, 車 시장 판도 바꿔

올해 국내 자동차 시장을 뒤흔든 첫 번째 키워드는 단연 ‘SUV’다. 최근 ‘신차 2대 중 1대는 SUV’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판매량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대형 SUV 팰리세이드가 증명한 SUV 인기에 국내 완성차 업계는 앞다퉈 SUV 신차를 출시하며 시장 주도권 쟁탈전에 나섰다.

먼저 팰리세이드로 대형 SUV 시장에서 재미를 본 현대차는 지난 7월 엔트리 SUV 베뉴를 출시하며 소형 SUV 시장에도 도전장을 냈다. 베뉴는 코나보다 작은 차체를 가진 SUV로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현대차의 야심작이다. 베뉴가 출시됨으로써 현대차는 ‘베뉴-코나-투싼-싼타페-팰리세이드’로 이어지는 SUV 풀라인업을 완성했다.

기아차 역시 막강한 SUV 라인업 구축으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지난 7월 출시된 소형 SUV 셀토스는 등장과 동시에 소형 SUV 시장 정상에 오르고, 기아차 판매실적까지 견인하는 등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9월 대형 SUV 모하비 더 마스터까지 가세하며 힘을 실었다.

SUV에 ‘올인’하고 있는 쌍용차의 경우 상품성이 증명된 티볼리와 새롭게 돌아온 코란도를 앞세워 ‘전통 SUV 명가’ 명성을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르노삼성차는 QM6 LPG 모델과 가솔린 모델이 판매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추세다. 한국GM은 최근 대형 SV 트래버스와 중형 픽업트력 ‘콜로라도’를 국내 시장에 출시했다.

SUV의 인기는 수치로 증명됐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SUV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역대 최고치인 44.2%를 기록하며 세단(51.4%)의 턱밑까지 위협하고 있다. 물론 대두분의 완성차 업체가 세단 신차도 꾸준히 출시하며 균형 맞추기에도 주력하고 있지만,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 트랜드로 자리 잡은 SUV의 인기는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 한국GM 노동조합이 지난 9월 24일 ‘2019 단체교섭 노동조합 요구 수용 및 카허 카젬과 경영진(ISP) 퇴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유한일 기자)

◇ 어김없는 ‘노조 리스크’...내우외한 겪는 車 업계

자동차 업계 이슈에 단골손님인 ‘노조 리스크’는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업계 맏형격인 현대차 노조가 사측과 8년 만에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뤄내며 업계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마찰과 파열음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르노삼성차와 한국GM은 판매량 감소로 인한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실적 반등이 최우선 과제지만 노조와의 갈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르노삼성차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파업 깃발’을 들 준비를 하고 있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쟁의행위(파업) 찬반투표에서 66.2%의 찬성을 얻으며 파업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차 노사는 지난 9월 올해 임단협 단체교섭을 진행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기본급 12만원 인상과 수당·격려금 지급 등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경영 정상화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약 1년간 이어진 2018년 임단협 과정에서 62차례의 파업을 단행한 바 있다. 이 기간 회사가 입은 손실은 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 임단협을 타결한 르노삼성차 노사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동반성장을 골자로 한 ‘노사 상생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며 모범적 노사 관계로 돌아가 재출발하기로 약속했지만 결국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노조가 파업을 준비하며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모양새다.

한국GM의 경우 연내 임단협 타결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지난해 군산공장 폐쇄 이후 계속 노사갈등 구도가 이어지고 있어 한국GM은 폭풍전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이달 초 선출된 신임 지부장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앞으로 노조를 이끌어 갈 신임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김성갑 지부장은 대표적 ‘강성 성향’으로 꼽힌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재개할 임단협 과정에서 김 지부장이 어떤 방향으로 협상에 임할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당장 내년 초부터 르노삼성과 한국GM의 노조 리스크가 재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적부진을 겪고 있는 이들 두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여건이 안되는 상황에서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더라도 긍정적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 서울에 위치한 혼다 전시장.

◇ 활활 타오른 ‘NO 재팬’...일본차 궁지에 몰았다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배상판결을 빌미삼아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규제라는 경제보복에 나서며 촉발된 ‘불매운동’도 자동차 업계에 큰 이슈였다.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일본차는 불매운동이 본격화된 7월 판매량이 전월(6월) 대비 72.1% 감소했고, 일부 브랜드는 ‘한국 철수설’까지 돌기도 했다.

지금까지 일본차는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모델 수요에 힘입어 국내 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지 일본차는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 평균 20%의 졈유율을 이어왔다.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 5대 중 1대는 일본차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난 6월 20.35%의 점유율을 보인 일본차는 7월 13.5%까지 떨어진 데 이어 8월 7.71%, 9월 5.46%까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11월에는 다시 9.2%까지 올랐는데, 불매운동으로 위기감을 느낀 일본차 브랜드들이 최대 1500만원이라는 ‘폭탄 할인’ 공세를 퍼부은 결과다.

일본차 브랜드들의 판매량이 일시적으로 회복하는 모양새지만 이 기세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소비자의 수요를 찾아오기 위해 계속 1000만원이 넘는 할인 공세를 이어갈 순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9월부터 시행된 ‘8자리 번호판’ 제도가 일본차 판매량 반등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9월 이후 출고된 차량에게 적용되는 8자리 번호판이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난 7월 이후 일본차를 구매했다는 식별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자동차 온라인커뮤니티 등에는 8자리 번호판을 장착한 일본차 사진을 찍고 ‘매국노’라고 비판하고, 교통법규 위반행위를 신고했다는 게시물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최근에는 일본차 딜러들이 서류 조작을 통해 7자리 번호판을 달아 불매운동 이전에 산 것처럼 가장해 주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브레이크 없는 추락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차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근본적 원인인 일본의 경제보복 철회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한·일 관계를 봤을 때 내년까지는 수출규제에 대한 양국의 접점을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