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추위가 목을 움츠리게 한다. 온 세상 돌아가는 형세는 우리에게서 웃음을 앗아간다. 그래도 우리에겐 가슴을 찡하게 울려주는 이웃이 있다. 혹한(酷寒)을 녹이고, 가슴으로 파고든 목을 펴게 하는 천사들의 미담이 줄을 잇는다.

지난 10일 인천의 한 마트. 34살의 아버지와 8살의 아들은 이 마트에서 1만원어치의 먹을거리를 훔치다 주인에게 들켰다. 마트 주인은 경찰에 신고했고, 이내 경찰이 달려왔다.


몸이 안 좋은 아버지는 몇 달 전까지 택시기사를 하다 그만둔 상태로, 극심한 경제난에 끼니를 거르다 그만 굶주림을 못 참고 주인 몰래 아이에게 줄 식료품에 손을 댄 것.

이들 부자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마트 사장님은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경찰에 사정한다. 출동한 경찰 아저씨는 이들을 인근 국밥집으로 데려가 따끈한 밥을 먹인다. 그러는 사이 60대의 한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조그만 봉투를 건네주고 사라진다.


곧장 뒤따라갔지만 이미 총총 사라진 뒤다. 봉투엔 20만원이 들어있었다. 경찰이 수소문 끝에 찾아낸 이 아저씨는 처음부터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아 건넨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두고 ‘현대판 장발장’이라고 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며 찡한 감동을 받는다. 이러한 천사들과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산다는 것에 우리는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필자는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도 있지만 몇 가지 ‘천사 이야기’를 독자들과 다시 나누고자 한다.

대구에는 60~70대로 알려진 세 명의 ‘키다리 천사’가 있다. 12월만 되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키다리 아저씨’의 전화가 걸려온다. “잠시 사무실 앞으로 나와 보소” “식당에서 잠깐 뵙시다” 그리고 찾아간 모금회 직원에게 거액의 수표가 든 봉투를 건넨다. 그 뿐이다. 2012년부터 이 키다리 아저씨는 매년 1억원이 넘는 기부를 한다. 한사코 익명이다.


70대의 ‘수성구 키다리 아저씨’는 2003년부터 추석을 전후해서 쌀 수천포와 라면등을 기부,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수성구 아저씨가 지난 2014년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딸들이 대를 이어 같은 기부 행사를 한다.


6년째 조용한 기부를 해오는 60대의 ‘키다리 아줌마’도 있다. 건물 청소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아줌마는 매월 첫날 모금회에 찾아와 10만원 20만원 40만원 금액을 늘려가며 기부, 이 기부액은 어려운 이웃들의 난방비 부식비로 쓰인다.

선행은 바이러스처럼 번진다

해마다 연말이면 나타나는 ‘전주 얼굴 없는 천사’도 있다. 주민센터 주차장에 돈이 든 상자를 갖다 놓고 전화한다. “소년 소녀 가장 여러분, 힘내세요”라는 인사장과 함께 20여년 가까이 6억이 넘는 기부를 해오고 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네 자매가 1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고려대에 기부한 사람들, 열아홉살 게임왕 강승록군의 1억 원 기부, 30년간 450여명에게 3억 원의 장학금을 전달한 신문배달원 등등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살 맛 나는 사회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얼마 전 읽은 ‘택시 기사가 일러준 선행’이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도 감동적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택시 승객이 지갑을 안 갖고 탔음을 알고 당황했다. 이때 택시기사님은 “그럴 수도 있지요. 괜찮습니다. 손님께서는 오늘 제게 선행을 베풀게 했습니다. 대신 다른 누군가에게 5000원(택시요금) 이상의 선행을 베푸시면 됩니다.


이 글을 쓴 분은 “선행에 대한 그보다 더 멋진 가르침을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이런 감동은 바이러스처럼 번질 것이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어김없이 올해도 사랑의 온도 탑이 세워졌다. 곳곳엔 구세군 냄비가 이웃을 돕자고 청한다. 주변엔 살 맛나게 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한 발짝이라도 들여놓자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데 동참하며 이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자.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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