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는 당사에서 취임 1개월 기자간담회를 갖고 '새로운 진보' 노선이 당의 향후 나아갈 길이 될 것임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손학규 대표는 '새로운 진보'의 3대 가치로 △더 많은 기회 △더 높은 책임 △더 넓은 배려를 제시했다.

이 중 '더 많은 기회'에 대해 손 대표는 “기업은 더 많은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위기극복과 구조조정을 위해 취해졌던 여러 규제조치들이 합리적으로 완화돼야 한다”며 출총제나 금산분리 같은 재벌규제 정책의 대폭적인 완화를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또한 '더 높은 책임'에 대해선 “기업은 건전하고 투명한 경영에 대한 책임, 일자리를 창출할 책임, 노동자와 혁신의 주체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할 책임을 져야 하고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기여를 해야 할 책임도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며 “노동의 사회적 역할과 비중이 막중해진 지금 노동자는 일방적으로 자기 권익만을 앞세우기보다 국가이익과 사회발전에 대한 책임을 더욱 크게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기자는 이것이 이명박 당선자의 기자간담회인지 앞으로 야당이 될 대통합민주신당 대표의 기자간담회인지 혼란스러웠다.

이명박 당선자가 후보 시절부터 해왔던 말들과 거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비단 기자만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기자간담회에 취재나온 타 언론사의 한 기자는 질문 시간에 손 대표에게 “손 대표의 말을 들으니 내가 혹시 이명박 당선자의 기자간담회에 온 게 아닌지 혼란스럽다”며 “도대체 이 당선인이나 한나라당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우리 가야할 길에는 이 당선인 노선과 같은 점도 있다”며 “이명박 노선은 과거 보수주의에서 중도보수로 옮겨가는 것이고, 우리는 과거 좌파 중심의 진보에서 중도실용적 진보로 옮겨가는 것”이라며 '새로운 진보' 노선이 이명박 당선자의 '실용주의'와 사실상 별 차이가 없음을 시인했다.

즉 손학규 대표는 대통합민주신당이 다시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이전의 '좌파 중심의 진보' 노선을 버리고 이명박 당선자처럼 실용주의를 내세워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손 대표의 이런 진단은 사실 관계를 잘못 파악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먼저 참여정부나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전혀 진보적이지 못했다.

다른 미 동맹국들이 모두 이라크에서 발을 빼는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이라크 파병 연장을 관철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철저하게 미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한ㆍ미 FTA 협상을 졸속으로 마무리 한 점,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사용 기간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비정규직법들을 통과시켜 전국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몬 것, IMF라는 혹독한 경험을 통해 확립된 출총제나 금산분리 같은 재벌규제 정책을 무력화시킨 점, 각종 비리 기업인들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거나 사면을 남발한 점 등 철저하게 친재벌ㆍ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일관했다.

솔직히 참여정부나 열린우리당이 지난 5년 동안 한나라당과 정책상의 차이로 대립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

이번에 이명박 당선자가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것도 국민들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좌파 중심의 진보' 노선에 실망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극심한 양극화와 고용없는 성장으로 인한 취업난, 고용불안정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이 '묻지마 정권 교체'를 통해 탈출구를 찾으려 한 데서 기인한 측면이 더 크다.

하지만 현재 이명박 당선자는 극심한 양극화와 고용없는 성장으로 인한 취업난, 고용불안정 등에 대해 “규제완화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켜 해결한다”는 이상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때 예비야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나아갈 길은 '새로운 진보' 노선을 앞세운 이명박 따라하기가 아니다.

지금 대통합민주신당이 취해야 방향은 △이명박 당선자가 추진하는 각종 규제완화가 얼마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지를 면밀히 검토한 후 문제점 지적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은 한계에 봉착했음을 지적한 후 중소기업 육성책 마련 △재벌 건전성 증진책 마련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보완책 마련 △대기업들의 각종 불법과 탈법에 대한 엄중 처벌 촉구 △취업난 해결을 위한 정치권의 공론의 장 마련 등을 통해 한나라당보다 경제의 건실한 성장을 이루고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안 세력임을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에게 인식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광효/투데이코리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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