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유한일 기자 | 지난 2018년 9월 본격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 경영을 시작한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매직’이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보좌하는 수준에서 ‘경영 수업’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사실상 총수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는 평가를 받으며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작년 한 해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성적표를 화려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현대차는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 100조원을 돌파했다. 작년 현대차그룹은 시장 수요에 대응해 다양한 라인업의 신차들을 줄지어 출시했다. 거의 대부분의 신차들이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자율주행 등 미래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그룹도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자율주행 분야 연구개발(R&D)과 투자에 뛰어들며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 확보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에서 ‘플라잉카’까지 선보이며 지상에 이어 하늘길까지 지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2020년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 ‘정의선 시대’ 개막...혁신·통 큰 투자로 ‘게임체인저’ 도약

지난 2018년 9월 현대차그룹은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정의선 당시 현대차 부회장을 임명했다. 2년가량 정몽구 회장을 대신하던 역할을 공식적으로 맡으며 세대 교체 신호탄과 함께 본격적인 ‘정의선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정몽구 회장의 경영권은 여전히 공고하지만 직책상으로 명실상부한 그룹 내 2인자가 된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혁신을 통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수석부회장으로 취임되기 전 주요 신차 발표 행사나 글로벌 산업 전시회에 직접 참석하며 자신의 존재감과 위상을 다져왔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1월 2일 1999년 입사 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그룹 시무식을 주재했다. 당시 시무식은 현대차그룹의 세대 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가 됐다.

그는 “앞으로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제조업의 추격자 중 하나’가 아닌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의 판도를 주도해 나가는 게임체인저로 도약할 것”이라며 “올해(2019년)가 새로운 도약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 같은 해 2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경영에 뛰어든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현대차그룹은 향후 5년간 45조원을 투자하는 중장기 계획을 공개했다. 신차 등 상품 경쟁력 확보, 시설 장비 유지보수와 노후 생산설비 개선, 미래 기술 등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내실을 다지고 경쟁력 확보에 나서겠다는 포부다.

아울러 작년 12월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회사’로 변신하기 위한 ‘2025 전략’을 공개, 2025년까지 미래 기술 분야 등에 61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기존 사업 구조를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과 ‘지능형 모빌리티 서비스’로 전환하겠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올해 그룹의 전략과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임원인사에서는 ‘전문성’과 ‘성과주의’를 내세웠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주고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경영 색채가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사진=뉴시스 제공)

◇ 현대차그룹 1년 성적표, “Good”

2019년 한 해 현대차그룹을 이끈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성적표는 실적에서 나타났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 반등했다. 특히 2012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던 현대·기아차는 ‘V자 반등’에 시동을 걸었다.

먼저 현대차는 작년 매출액 105조7904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 100조원을 넘어섰다. 영업이익은 작년 3분기 대규모 일회성 비용 발생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52% 증가한 3조6847억원을 달성했다.

현대차는 주요 시장 수요 위축, 미중 무역 갈등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 속에서도 SUV를 포함한 신차 판매 호조가 실적 개선에 힘을 실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지난 2018년 12월 대형 SUV ‘팰리세이드’ 출시로 국내 SUV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팰리세이드가 증명한 SUV 가능성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앞다퉈 SUV 신차를 출시하기도 했다. 올해 현대차는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SUV ‘GV80’ 출시로 판매량 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기아차도 작년 ‘어닝서프라이즈(깜짝 실적 개선)’를 보이며 반등의 신호탄을 쐈다. 기아차는 작년 매출액이 전년 대비 7.3% 증가한 58조1460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무려 73.6% 증가한 2조97억원이다.

기아차 역시 미국 시장에서 대형 SUV 텔루라이드가 6만대 가까이 판매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함에 따라 매출 확대와 수익성 강화를 견인했다. 이 밖에도 셀토스, K7 등 고수익 차종의 판매 확대에 따른 믹스 개선 등도 힘을 보탰다는 평가다.

공격적인 신차 투입, 판매량 확대에 힘입은 현대·기아차는 작년 국내 자동차 시장 베스트셀링카 1~10위 모델을 모두 독식했다. 수입차를 포함한 국내 시장 점유율은 70.8%다. 국내에서 판매된 차량 10대 중 7대는 현대·기아차인 셈이다.

현대·기아차의 반등은 올해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먼저 내부적으로는 양사가 모두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타결하며 노조 리스크를 씻어냈다. 기아차의 경우 약간의 진통은 있었지만 노사가 머리를 맞댄 협상을 진행한 끝에 임단협을 최종 타결했다. 특히 현대차 노사는 일본의 경제보복, 미중 무역 갈등 등 대외적 악재를 함께 타개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8년 만에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뤄냈다.

현대차는 아반떼, 투싼 등 볼륨 차종의 풀체인지 모델 출시로 판매 모멘텀을 더욱 강화하고, 기아차는 지난해 말 출시한 신형 K5를 비롯해 신형 쏘렌토와 카니발 등 올해 출시를 앞둔 경쟁력 있는 신차 판매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CES 2020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 중 개인용 비행체 에어택시 S-A1 콘셉트 모델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 2020년 ‘미래 시장 리더십 확보’ 원년 설정

현대차그룹은 2020년을 ‘미래 시장에 대한 리더십 확보’의 원년으로 삼았다. 전동화,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등 미래 신기술 역량을 강화해 새로운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을 위한 투자 확대도 적극 추진해 나간다.

작년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자율주행’ 분야에서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 우버 ‘그랩’에 3100억원 투자 △인도 차량호출 기업 ‘올라’에 3300억원 투자 △네이버 출신 국내 스타트업 ‘코드42’에 투자 △전기 하이퍼카 업체 ‘리막’에 1000억원 투자 등 글로벌 시장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특히 자율주행 분야 세계 최상위권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앱티브’에 40억달러를 출자하고 미국 현지에 합작법인을 세운다는 발표도 나왔다. 그간 나온 단순 투자 형태가 아닌 합작법인을 통한 자율주행 기술 공동개발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대차그룹은 합작법인을 통해 레벨4~5 수준의 자율주행차 기술을 최단기간 안에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레벨 4부터는 운전의 주체가 사람에서 차량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시대의 변화도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실제 정의선 수석부회장 승진할 당시 현대차그룹은 “4차 산업혁명과 모빌리티 등 미래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조응해 그룹 차원의 민첩하고 효율적인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는 판단도 승진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미래차의 핵심인 자율주행 분야는 앱티브사(社)와의 합작법인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혁신적인 자율주행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20203년에는 상용화 개발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필두로 미래 모빌리티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이제 ‘하늘길’에도 도전한다. 지난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현대차는 최초로 ‘플라잉카’를 공개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의 우버와 손잡고 만든 PAV(개인용 비행체) 콘셉트 ‘S-A1’은 수직이착륙 방식으로 조종사를 포함해 5명이 탑승할 수 있다. 상용화 초기에는 조종사가 직접 조종하지만 자율비행기술이 안정화 된 이후부터는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개발될 것이라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현대차는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공개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 △Hub(모빌리티 환승 거점)를 제시했다.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인류의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고, 인간 중심의 역동적인 ‘미래도시’를 구현하겠다는 포부다.

현대차는 ‘UAM-PBV-Hub’를 축으로 하는 미래 모빌리티 비전으로 고객에게 끊김 없는 이동의 자유로움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구체화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현대차는 이동시간의 혁신적 단축으로 도시간 경계를 허물고, 의미 있는 시간 활용으로 사람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목표를 이루며 새로운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역동적인 인간 중심의 미래 도시 구현에 기여할 것”이라며 “CES는 시작점에 불과하며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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