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타계한 롯데그룹 신격호명예회장은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주변을 5분여간 천천히 돈 다음 고향 선산에 영면했다. “초고층 건물을 올려 세계적 명품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30여년 만에 이룬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당분간 한국의 지붕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재벌 총수의 죽음을 놓고 ‘재계의 별 지다’라는 표현에 동의한다. 암흑했던 시기 불굴의 의지와 번뜩이는 혜안(慧眼)으로 맨땅에서 기업을 일구고, 거대한 성을 쌓아 올린 이들은 영웅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별이라 칭하는데 인색할 수가 없다.
 
최근 들어 유난히 재계의 별들이 많이 타계했다. 작년만도 구본무 LG 회장, 조양호 한진해운 회장, 구자경 LG 명예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에 이어 신격호 회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만도 이동찬 코오롱 회장, 정세영 현대 회장, 박태준 포철 회장, 임대홍 미원 회장 등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들은 대부분 40~50년대 기업을 세웠거나, 60~70년대 경제개발시대에 영웅적인 활약으로 대한민국 경제가 일어서는데 별 역할을 했던 창업세대다. 그들의 나이가 100세에 가까워오면서 창업세대의 퇴장을 가져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 1세대 기업가들의 시대가 저문 것이다.

 

재벌 탄생, 그리고 공(功)과 과(過)

 

우리가 본격적으로 경제를 일으키려고 할 때인 60년대에 우리는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모두 빈손이었다. 전후(戰後) 우리는 하루 세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했다. 미국 같은 선진국과 유엔이 보내주는 쌀 밀가루 분유로 식량을 했고, 그들이 준 비료로 농사지었으며, 초등학교 교과서 맨 뒷장에는 ‘유엔에서 지원해서 만든 책’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던 한반도에 기적이 일어났다. 식량 자급(自給)도 못하던 나라가 한 세대 만에 선진국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했고, 지구촌 곳곳에 원조도 하는 나라로 우뚝 섰다. 한강의 기적이다.

 

그것은 절로 온 기적이 아니라 피와 땀이 베인 ‘발로 뛴 기적’이다. 온 국민이 일궈낸 기적이지만 그중 기업가들의 공도 컸다. 재벌 1세대들의 퇴장을 계기로 그들의 공과 과를 한번쯤 되돌아 보자.
 
군사 쿠테다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경제건설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경제개발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 밖의 것은 무시했다. 예컨대 인권, 민주화, 환경, 노사, 분배 등 등 보편적 가치를 모두 뒷전으로 하고 오직 경제개발에만 몰두했다. 그것이 박정희 철학이었다.

 

그러나 가진 것이라고는 빈 손 뿐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하면서 유무상(有無償 )자금(대일청구권자금 등)을 끌어들여 경제개발의 밑거름으로 썼다. 그 이후에도 필요한 외자(外資)를 조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고, 열사의 나라 중동에 건설 근로자를 보내고, 월남파병을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달러를 손에 쥘 수 있었고, 그 외자가 곧 경제개발의 토대가 된 것이다.
 
돈도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산업을 일으키려는 박정희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온갖 자원을 한 곳으로 몰아주어 경제를 일으켜 보자는 것이었다. 이래서 재벌이 탄생한 것이다. 달러가 모자라면 달러를 밀어주고, 돈이 모자라면 은행 돈 찍어 기업들에게 제공했다. 이자도 싸게 줬다.

 

특혜로 성장한 재벌, 사회기여로 보답해야

 

내자 외자 모두 특혜로 몰아주고, 노사분규가 생기면 정부가 막아줬다. 산업화로 공해 문제가 발생하면 정보부가 나서서 해결했다. 분배, 인권, 민주화는 사치라고 여겼다. 그렇게 모든 것을 올인해 경제개발을 하다 보니 성과는 엄청난 속도가 붙었다. 압축성장이라 불린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재벌이 형성됐다. 정경(政經)유착이 발생했다. 반면 중소기업과 근로자에 대한 배려는 미약했다. 따라서 분배나 평등, 균형 이런 것들은 뒷전에 머물렀다.
 
우리 사회의 재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은 당연하다. 온갖 자원을 집중지원 받아 성장한 재벌들이 사회에 기여한 바가 부족하다는 것이 국민들의 인식이다. 우리 재벌이 경제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엄청난 특혜 속에 성장한 사실을 감안하면 앞으로 두고두고 국민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재벌 또는 대기업들의 공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는 경제개발 초기 창업세대들의 불굴의 기업가정신, 미래를 꿰뚫는 혜안(慧眼), 번뜩이는 아이디어 등 수많은 영웅담을 우리는 잊기 어렵기 때문이다.

 

창업 1세대가 무대에서 사라진 지금, 재벌 2세대 3세대는 이제 사회에 빚을 갚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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