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유한일 기자 | 누적적자가 4조원을 넘어서며 극심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GM이 6년 만에 신차를 출시하며 재도약의 의지를 밝혔다. 최근 급격히 몸집을 키우고 있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시장을 공략, 판매량 제고와 점유율 확대를 통한 수익성 확보에 시동을 걸겠다는 전략이다.

한국GM은 이 신차를 경영 정상화의 핵심 모델로 꼽으며 사활을 걸었다. 신차 발표회 때는 한국GM 사장이 직접 나서 “쉐보레 브랜드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핵심 모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GM의 명운을 짊어진 이번 신차가 구원투수로 활약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과거 티볼리를 통해 부진의 늪에서 벗어난 쌍용자동차의 선례처럼 이번 신차가 ‘제2의 티볼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반면, 가격이나 브랜드 경쟁력 측면에서 타사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을 수 있고 아슬아슬한 노사 관계도 향후 생산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 트레일블레이저. (사진=한국GM 제공)


2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 16일 준중형 SUV ‘트레일블레이저’를 공개하고 본격적인 사전계약에 돌입했다. 트레일블레이저의 포지션은 한국GM의 중형 SUV 이쿼녹스와 소형 SUV 트랙스 사이다.

 

 

트레일블레이저는 한국GM이 지난 2018년 5월 발표한 ‘미래 회생 계획’의 전략 차종이다. 당시 한국GM은 한국 정부와 KDB산업은행으로부터 8100억원을 지원 받고 5년 안에 15종의 신차 및 부분변경 모델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트레일블레이저는 이 중 7번째 신차다.

 

 

◇ 내수 꼴찌 오명...트레일블레이저로 SUV 시장 공략

 

 

트레일블레이저가 가진 책임감은 무겁다. 가장 최우선 과제는 2018년 군산공장 폐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내수 시장 판매량 회복에 기여하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GM의 작년 내수 판매는 7만6471대로 전년(9만3317대) 대비 18.1% 줄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에 이어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 중 꼴찌로, 해외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작년 국내 판매량(7만8133대)보다도 떨어진다.

 

 

올 상반기까지 한국GM의 전략은 트레일블레이저의 흥행을 이끌어 국내 SUV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서는 것이다. 최근 대형-중형-소형을 막론하고 국내 SUV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를 보면 작년 국산차의 경우 SUV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RV 모델이 전체 판매량의 45.9%를 차지했다.

 

 

한국GM은 본격적으로 SUV 시장에 도전장을 낼 트레일블레이저의 올해 판매 목표를 30만대로 설정했다. 이 중 내수 비중은 20~30%로, 나머지는 수출로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트레일블레이저 전 물량은 인천 부평공장에서 생산된다.

 

 

 

 

▲ 셀토스. (사진=기아자동차 제공)


◇ 투싼-셀토스-스포티지-코란도...자리 잡고 있는 경쟁차종

 

 

트레일블레이저는 내수 시장 1, 2, 3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는 현대·기아·쌍용차의 SUV와 경쟁해야 한다. 브랜드 파워로 봤을 때는 다소 밀릴 가능성이 있지만, 한국GM은 트레일블레이저에 사활을 건만큼 파격적인 구성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현재 완성차 업체들이 체급별 SUV 라인업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점은 트레일블레이저에게 부담이다. 대형 SUV 팰리세이드로 재미를 본 현대차는 작년 ‘베뉴-코나-투싼-싼타페-팰리세이드’로 이어지는 SUV 풀라인업을 구축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트레일블레이저와 가장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아차의 셀토스는 출시 후 돌풍을 이어가며 SUV 시장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한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출시 후 월평균 5000대를 넘나드는 판매량을 올린 셀토스는 작년 총 3만20001대가 판매돼 기아차의 실적을 견인함과 동시에 30~40%의 점유율로 소형 SUV 1위 자리에 올랐다.

 

 

현대차의 투싼과 기아차의 스포티지 역시 올해 풀체인지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고, 쌍용차의 코란도도 출시 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경쟁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현재까지 트레일블레이저에 대해 호평이 나오고 있는 건 한국GM에게 긍정적이다. 준중형 SUV 답지 않은 강렬한 디자인과 합리적으로 책정된 가격이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특히 트레일블레이저가 가장 주목을 받은 건 가격이다. 기본 모델이 트림에 따라 1995~2490만 원으로 책정돼 ‘1000만 원대 SUV’라는 타이틀을 만들었다. 1965~2865만 원인 셀토스의 가격범위와도 비슷하다.

 

 

트레일블레이저의 성패가 향후 한국GM 경영상황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회사는 대대적 마케팅을 벌이는 등 본격적인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물론 트레일블레이저 한 차종이 큰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한국GM의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긴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재까지 최고의 시나리오는 과거 쌍용차를 경영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 티볼리처럼 일단 트레일블레이저를 ‘제2의 티볼리’로 만드는 것이다. 티볼리는 쌍용차의 구세주 역할을 함과 동시에 국내에 소형 SUV 돌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 카허 카젬 한국지엠(왼쪽부터) 사장, 김성갑 한국지엠 노조위원장, 로베르토 렘펠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사장, 신영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노동조합 지회장이 16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트레일블레이저 공식 출시 행사'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 트레일블레이저 앞에서 손 잡은 한국GM 사장과 노조위원장

 

 

트레일블레이저 성공에 대한 또 하나의 열쇠는 노사 관계다. 작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과정에서 극한 대립을 벌인 한국GM 노사는 생산량 감소, 실적 악화 등 악재를 겪었다.

 

 

일단 현재까지 분위기는 매우 밝다. 트레일블레이저 신차 기자간담회에서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과 올해 새로 취임한 김성갑 한국GM 노조위원장은 트레일블레이저 차량 앞에서 손을 잡고 “경영정상화는 노사 공동의 목표”라며 뜻을 함께했다. 또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한국GM 노조 일부 고위임원들은 트레일블레이저를 직접 구매하고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이 같은 평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한국GM 노사는 2019년 임단협을 아직 매듭짓지 못했다. 노조는 작년 임단협 과정에서 새 집행부를 구성했는데, 신임 김성갑 노조위원장은 대표적인 강성파로 꼽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노조위원장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사측과 적극적으로 힘을 합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점이다.

 

 

당장 한국GM은 올해 초 작년에 마무리하지 못한 임단협을 재개해야 한다. 작년 노조는 임금인상, 정년연장, 부평2공장·창원공장 발전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경영난을 이유로 임금동결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올해도 한국GM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새 집행부 역시 부분·전면파업과 같은 방법으로 사측을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GM의 명운을 짊어진 트레일블레이저 생산량에도 차질이 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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