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지난해 국세가 정부가 계획한 것보다 1조3000억 원 덜 걷혔다. 국세 수입이 세입예산 보다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14년 이후 5년 만이자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2015년 계획보다 2조2000억 원이 더 걷히면서 플러스로 돌아선 국세 수입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은 무려 10조~25조 원 정도 매년 더 걷혔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밑천 삼아 과감한 복지 확대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젠 세금 풍년 기조가 꺾이면서 정부가 돈을 함부로 쓰기가 어렵게 됐다.

작년에 대규모 세수 결손이 난 것은 정부의 경제 전망이 빗나간 탓이다. 정부는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7%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예산을 편성했으나 2.0% 성장에 그쳤다. 반도체 불황, 미·중 무역분쟁, 기업 규제 등으로 경제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기업 이익이 대폭 줄어들면서 법인세가 예상보다 약 7조 원이나 덜 걷혔다. 게다가 부동산 거래가 격감하면서 양도소득세 수입이 줄고 유류세 감세 등 경기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이 시행된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세수 감소 폭이 더 커질 전망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 목표를 2.4%로 잡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수출과 내수 등 경제 전반이 충격을 받으면서 지난해 수준(2.0%) 달성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등 국민의 경제활동 전반이 얼어붙어 세수 차질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하지만 경제에 대내외 악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일 것 같지 않다. 사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재정 지출을 늘려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경제의 활성화로 국민의 소득을 늘리는 것이 재정 본연의 역할이다. 우리 경제는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가운데 수출 부진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민간소비도 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이 악화되고 빈부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정부도 재정 확대를 통한 경제 활력 회복에 정책의 최우선을 두고 올해 510조원이 넘는 ‘초 슈퍼 예산’을 편성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추경까지 거론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로 인해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침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에 더 보탬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재정 지출이 생산적 분야에 집중돼 경기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재정확대가 경제회생의 마중물이 되어 세수를 늘리는 선순환 체제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재정지출 구조는 그렇지 못하다. 생산성과 무관한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인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현금지원 방식의 소모적 지출과 노인들의 단기 일자리 만들기, 공무원 증원 등에 집중되고 있어 재정확대가 재정건전성 악화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쓸 곳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이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결국은 모자라는 돈을 국채로 메우거나 증세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채는 가뜩이나 어려운 청년층 등 미래세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짐이다. 증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문 정부는 출범 이후 법인세율과 종합부동산세율을 올린데 이어 최근엔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 인상을 통한 간접적인 보유세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세수 펑크에서 보듯 문 정부의 증세 정책은 한계에 이르렀다. 얼핏 증세나 세무조사 강화가 세수를 늘릴 것 같지만 지금 같은 불경기에는 역효과만 커진다. 아무리 세무조사를 해도 기업이 돈을 못 벌면 세수는 늘지 않는다. 국세청장이 신년사를 통해 올해 첫 번째 업무 목표로 ‘세수 확충’을 꼽아 벌써부터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젠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억제해 예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씀씀이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 생산유발 효과가 낮은 ‘돈 풀기’식 사업이나, 총선용 ‘표퓰리즘(표+포퓰리즘 합성어)’ 지출을 철저히 따져 걸라내고, 보다 생산성이 높고 재정투입의 장기적 효과가 큰 구조조정이나 신성장동력 사업의 지출을 우선하는 것이 절실하다.


세수 확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경기 회복이다. 재정으로 경기를 회복시킬 수가 없다면 민간의 활력으로 이를 돌파해야 한다. 과감한 규제 혁파와 노동 유연성 확보로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 기업 ‘기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 최선의 정책적 조합으로 성장 동력을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키워야만 세수 기반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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