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은지 기자.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데 뒤에서 중국어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뒤를 돌아보자마자 자리를 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자인 나 또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까 고민했다.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인 탓에 괜히 위험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코로나19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던 국내 시민들은 인터넷 상에서 ‘우한폐렴’이라는 낯선 단어를 접하고 중국인을 욕하기 시작했다. “중국인은 도움이 안된다”, “그러게 박쥐를 왜 먹나”, “더러워서 그렇다”, “중국인 보면 피해라” 등의 말이 난무했다. 배달 기사들은 중국 동포 밀집지역인 대림동으로 배달을 갈 경우 위험 수당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까지 확산됐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각국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유럽에서도 코로나19에 대한 경계를 높였다. 이 가운데 유럽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인에게 ‘코로나바이러스’라고 칭하며 비난했고 여기에는 유럽에 살고있는 한국인들도 포함됐다. 그들에게 중국인은 동양인 전체였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9일 코로나19로 인해 유럽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가 충격적으로 짙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월 30일에는 영국의 중부 요크셔주 셰필드에서 한 중국계 대학생이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욕설을 듣는 일이 벌어졌다. 독일에서도 지난 1월 31일 지하철 역에서 한 중국인 여성이 2명의 현지 여성에게 머리채를 잡힌 뒤 발길질을 당했다.

동양인 혐오가 거세지자 유럽에 거주하는 아시아인들은 혐오를 멈춰달라며 호소하고 있다. 프랑스 현지에 사는 아시아인들은 SNS를 통해 '나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벌였고, 이 캠페인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많은 나라에서 현재도 진행 중이다.

또 지난 4일 중국계 이탈리아 청년의 1인 시위 영상도 큰 화제가 됐다. 영상 속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거리에서 한 남성이 자신이 직접 쓴 플랜카드를 옆에 세워놓고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자신의 눈을 검은색 천으로 가리고, 흰 마스크를 쓴 채였다. 플랜카드에는 “나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한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나를 편견에서 해방시켜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혐오로 피해를 입은 동양인들이 속출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낙인찍기와 증오를 멈춰야한다”며 “우리 모두 이번 발병으로 교훈을 얻겠지만 지금은 정치화할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도 “우리가 이겨내야 하는 건 바이러스지 인류가 아니다”며 “무분별한 혐오와 차별을 멈춰야한다”고 말했다.

물론 빠르게 증가하는 확진자와 매일 늘어가는 사망자 수는 유럽인, 아시아인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국내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 유럽에서는 아시아인 전체에 대한 혐오라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이 혐오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섭다.

코로나19는 언젠가 잠잠해지겠지만 이로 인해 생긴 혐오는 없어지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국인을 혐오한다고 해서 코로나19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그저 걸리지 않는 게 최선인 이 감염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만든 감정일 뿐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유럽의 사례를 접하고 나서야 지하철에서 중국인을 피할지 고민했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유럽인의 기사에는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면서, 정작 길거리에서 중국인을 마주하면 불안감을 가지는 일은 동양인을 혐오하는 유럽인들을 정당화한다. 두려움이 혐오가 되지 않도록,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인들의 격려와 의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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