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한산한 거리, 텅 빈 열차, 주인만 홀로 앉아 있는 가게가 마치 재난영화를 보는 듯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민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확진자가 병상이 없어 입원을 하지 못하고 하루 1200만 장을 생산한다는 나라에서 평소 가격의 5배나 되는 비싼 값에도 마스크조차 구하기가 어려우니 당연하다 하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확진자가 나타날지 모르는데 벌써부터 의료 현장에선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이고 개인 보호구 부족 사태까지 일고 있고 경증으로 분류돼 자가 격리중인 확진자가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으니 공포심이 갈수록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은 초기 대응이 생명이다. 전염병은 초동대처에 실패해 지역감염으로 번질 경우 경제 활동이 마비돼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국민 보건 문제를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행위를 막아야만 초동 대처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 4월 총선 등을 의식하다 강력한 초기 대응에 실패, 실기하고 말았다.

그동안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감염학회 등은 수차례에 걸쳐 중국 등 위험지역에서 오는 입국자들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선제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듣는 척만 하면서 이를 묵살했다. 심지어 한 장관은 “정부 대응이 창문을 열어놓고 방안에서 모기를 잡는 것과 같다”는 지적에 “겨울이라 모기가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의협 등은 코로나가 확산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대응단계를 심각단계로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확산 초기이기 때문에 이를 높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뒤늦게 둑이 터진 뒤에야 단계를 높였다. 마스크 품귀현상도 말로만 품귀를 막도록 노력하겠다며 사실상 방치해 오다 거의 한 달이 지난 최근에야 수출제한 조치를 내렸다.

그 결과 한국은 졸지에 세계 최고 등급의 바이러스 오염국이 돼 여러 국가에서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입국 거부를 당하는 수난을 겪고 있다. 심지어 국내 입국을 막지 않은 중국에서조차 한국인들이 공항에서 강제 격리되자 국민감정이 폭발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과다한 조치라며 중국 측에 항의해 보았으나 되돌아 온 것은 “이는 외교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방역문제”라는 답변뿐이었다. 강 장관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중국 인민의 안전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심을 쓰다 오히려 수모만 당하고 말았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패닉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가와 원화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매도 대거 가담으로 외국인 자본 유출까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자발적이거나 강제적인 외출 금지로 인한 유동인구 감소로 소비 위축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달 소비자 심리지수(CSI)는 96.9로 전달보다 7.3포인트나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0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3월에 이어 역대 3번째다.

산업 현장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에서 발병하다 보니까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거나 중국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들의 생산 활동이 타격을 받고 있다. 또한 직원들의 잇단 확진자 발생으로 사업장이 폐쇄되면서 생산 차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생산 계획을 대폭 축소하기 시작했고 연쇄적으로 1차, 2차 협력사 발주 주문량도 크게 줄고 있다. 물론 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일본과 같은 주요국의 이달 구매관리자지수(PMI)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세계 경기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1년 넘게 부진한 한국의 수출이 더욱 위축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한국은행조차 올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할 정도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급물살을 타면서 올해 1분기 10조원 정도의 추경 편성이 사실상 확정됐다. 제1야당마저 추경에 반대하지 않고 있어 국회 문턱도 어렵지 않게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인하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27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되기는 했지만 오는 4월이나 5월에는 인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워낙 엄중하게 전개되다 보니 이같은 조치들이 과연 약효를 발휘할지 의문이다.

지금과 같은 단계에서는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심리 위축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방역 강화는 기본이고 병상 확충과 마스크 부족 사태 등을 조속히 해소. 일반 국민들이 다소나마 불안감을 덜고 외출을 하거나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소비 위축으로 도산이나 폐업위기에 몰린 중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최우선적으로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그래야만 일자리가 유지되고 평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하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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