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국면에 코로나19까지 겹쳐 한국사회가 혼돈의 수렁에 빠져든 느낌이다. 국내외적으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충돌한지라 혼란스럽지 않을 때가 있을까마는 근래에 더욱 어지러운 것은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한 탓도 적지 않음을 본다.

언론이 제공하는 뉴스는 세월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언론의 진실보도는 그래서 중요하다. 언론정보의 정확성 여부는 당장은 그 정보의 상품가치와 직결되지만 길게는 역사왜곡과 관련이 있다.

불량식품을 판매하면 그 죄가 그것으로 끝나지만 언론의 왜곡보도는 그 죄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역사왜곡의 폐해가 당대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기록을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왕조시대의 사관에 비유되는 기자, 그 원조는 공자다. 현실 속에서 이상 정치를 포기한 공자가 붓을 들어 역사를 기록했고 그 기록은 후세사가들의 귀감이 되었다.

과연 공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시비를 가렸으며 선과 불선을 분별했는가. 정론이 목마른 시대에 정론의 전범인 춘추필법은 이렇게 기록했다.

"만 번을 죽어도 진(秦)나라의 부귀를 탐하지 않고 평생 읽는 글은 노나라의 춘추로다. (萬死不貪秦富貴/一生長讀魯春秋)" 1906년 11월 17일, 대마도에서 순국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선생의 절명 시 결구다. 조선조 선비들은 평생 춘추를 읽었다. 선비가 춘추를 읽는 것은 법조인이 판례를 읽는 것과 같다. 춘추대의에 입각해 역사의 현장을 재단하고 평가한 기록을 읽음으로써 의와 불의, 선과 불선의 구별이 더 확연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춘추는 객관적 사실 위에 공자가 포폄과 첨삭을 가한 기록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포상하고 폄하했는가? 대의(大義)다. 그래서 춘추대의라고 한다. 따라서 춘추 속에는 인간사를 보는 하늘의 시각이 깔렸다.

처음에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제후들에게 인의(仁義)를 설파했다. 제자들을 교육시켜 현실정치에 참여시키기도 했고 직접 국가경영에 참여도 해 보았으나 끝내 포부를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마침내 공자는 현실 속에서 왕도(王道)정치 실현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붓을 들었다. "세상의 도가 쇄미하여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부모를 죽이는 사악이 성행하자 공자가 이를 두려워하여 춘추를 지었다" 맹자가 전한 공자가 붓을 든 까닭이다.

시경소아(小雅)편에 "저마다 내가 진짜라고 하는데 어느 까마귀가 암놈이고 어느 까마귀가 수놈인지 누가 알리오"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가 살던 당시가 그랬다. 선악이 전도되고 흑백이 뒤바뀌어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 그야말로 까마귀 암수 가리기였다. 이렇듯 춘추시대는 도덕적 표준이 흐려지면서 교언영색이 판을 치고 술수정치가 세상을 움직였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일은 아니었다. 치세는 치세대로 기록을 남겨야하고 난세대로 증언을 남겨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세상이 다 미쳐서 돌아가더라도 누군가 한사람, “우리는 지금 미쳤다”고 증언하는 제 정신 가진 사람이 있으면 언젠가 제 자리로 돌아올 희망이 있을 것이다.

공자가 붓을 들어 춘추를 편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도된 선악, 뒤바뀐 흑백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전범(典範)으로 삼을 기록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공자의 의도는 적중했다.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니 반란, 반역분자들이 두려워했다" 맹자의 증언이다.

공자는 생전에 천하를 떠돌며 왕도정치를 설파할 때는 외면 받았지만 사후에 소왕(素王)으로 추앙되었다. 그가 남긴 춘추에 의해서였다. 춘추는 위정자들의 거울이었다. 왕조시대 언관의 간언, 사관의 기록은 모두 춘추에 의지해 논리를 세우고 시비를 가렸다.

춘추가 노나라의 역사를 말하는 고유명사임과 동시에 일반명사로 역사의 준말이 된 것은 봄의 생장과 가을의 결실이 춘하추동을 함축할 만하고 봄의 햇볕과 가을의 서릿발이 천하사를 압축할 만하기 때문이다. 여름과 겨울에는 산천이 녹음과 백설로 뒤덮여 홍, 청, 흑, 백의 구별이 없지만 꽃피는 봄이면 삼라만상이 각양각색의 제 빛깔을 자랑하고 가을에 서리 내리면 산천이 본래의 제 골격을 드러내듯이 춘추필법은 각인각국의 존엄을 높이고 모든 숨은 악을 드러내 밝힌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춘분과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의 기온이 균등하다. 역사를 기록하는 필법도 이처럼 균제 공평함을 상징한다. 여기서 중립이나 불편부당은 몰가치적 중립이 아니라 유교적 가치관, 춘추대의에 입각해 철저하게 균등 공평함을 말한다. <계속>

<김재성의 '공자가 붓을 들다'는 격주에 한 번씩 연재될 예정입니다. 독자들의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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