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한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비로소 리더십이 빛나기 때문이다. 요즘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치인은 단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지난 1일부터 대구 동산병원에서 부인과 함께 의료봉사 중인 그가 진료를 끝낸 뒤 땀을 흘리며 비상대책본부 건물로 향하는 사진 한 컷이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푸른 의료복이 온통 땀으로 범벅돼 더욱 파랗게 보였다.

안 대표는 부부가 각각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가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한 여성 환자의 눈물어린 사례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주에 한 아주머니 환자분을 만나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더니 “가슴이 너무너무 답답하다”고 하더라며 “어제 남편이 죽었다. 같은 병에 걸려 서로 다른 병원에 입원했는데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이후로 계속 가슴이 너무나도 답답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사체를 화장해버리면 다시 남편의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병이 낫지 않아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는 이 기막힌 상황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그의 의료 봉사는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마인드'와 함께 '전문적 이미지'가 크게 부각됐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결과적으로 그 어떤 것보다 효과적인 선거 운동이 됐다. 실효적인 대책을 내놓기는 커녕 오로지 표심에만 어두워 좌표도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오히려 방역에 해가 되는 언동을 일삼는 다른 정치인들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의사 출신인 그는 2012년 9월 정치인으로 정식 데뷔했다. 당시 그에 대한 기대와 지지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러나 냉엄하고 살벌한 정치의 한복판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그를 지지했던 환호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우유부단하고 어리숙하다는 이미지도 강했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정계 복귀를 했지만 여전히 비호감 정치인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했다. 정치인 안철수는 그렇게 잊히는 듯 했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한지 거의 8년 만에 의사로 복귀해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다. 오랜만에 리더에게 바라는 소명의식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땀내로 가득한 의료복이 그를 살렸다.

안 대표의 인기가 오르자 ‘바닥 수준이던 국민의당 지지율도 급등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 성인 1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당 지지도에 따르면 국민의당 지지율은 4.6%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 이어 3위를 차지, 4.1%를 기록한 정의당을 추월했다. 2주일 전 고작 1%에서 무려 3.6%포인트나 올랐다.

물론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지지율 상승이 일시적 효과에 그쳐 파급력이 미미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일각에서는 안 대표의 봉사 활동이 총선 이벤트, 지지율 연극, 이미지 정치라면서 깎아 내리기 바쁜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그가 의사 가운을 벗은 지 오래라는 점을 이유로 불법 의료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에 찬사도 있다.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대표는 “안철수 대표의 방역활동 모습에 감명 받았다”며 “우리도 그렇게 하자”면서 비상조치 동참을 촉구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에선 으레 이합집산이 등장한다. 국민을 지향해야 할 핵심가치는 뒷전인체 개인의 입신양명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다. 안철수 대표를 지지했던 정치인들도 개인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그를 버리고 다른 당에 속속 합류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연동형 비레대표제가 채택되자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제1당이 되기 위해 비합리적인 비례정당을 만들자 야당이 꼼수룰 쓰고 있다면서 이를 위장정당이라고 강력히 비판해온 여당마저도 사태가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명분이야 만들면 그만’이라며 자신들도 비례정당 만들기에 분주하다. 입으로는 연신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하는 행동들은 이렇다. 정치인치고 코로나 대란을 겪고 있는 대구․경북지역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늘어놓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 제대로 된 활동을 수행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유로운 상황일 때는 누구나 원칙을 이야기하고 이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비상시에는 다르다. 원칙을 원칙으로 만드는 힘은 눈앞의 손해를 감수하고 지켜낼 때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료복을 입은 안철수를 통해 이를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됐다. 의사 안철수의 원칙과 솔선수범은 정치인 안철수에게도 좋은 리더십 교재가 될 것이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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