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뉴스를 확인하고 간밤에 유명을 달리 한 코로나 19 사망자들에게 묵념하는 일이다. 마음 같아선 그 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드리고 생전에 좋아했던 일이나 물건을 떠올리면서 추념하면 좋겠는데 언론에선 다만 숫자로 그 분들을 지칭하고 만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돌림병에 스러진 희생자들로 한 묶음에 처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던 그 분들의 처지가 슬프다. 내가 그 가족이라면? 아버지, 어머니와의 이런 이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일 것이다. 정말 작금의 사태는 살다 살다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번 사스나 메르스 사태 때는 이렇게까지 번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는 아닌 것 같다. 이 사태의 종식을 위해 내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실천하는 일 뿐이다.

첫 번째는 대중 집회, 나아가서는 몇 명이 모이는 친목 집회에도 참석하는 일을 자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 안에서 소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었다. 꼭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물론 T.V.를 보는 시간도 늘었다. 하지만 불편하고 어두운 뉴스가 많다보니 오래 보게 되지 않는다. 방송국에서도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재난 영화를 많이 방영한다. 며칠 사이로 미국 영화 ‘컨테이젼 (감염)’ 이란 영화와 봉 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보았다. ‘컨테이전’은 마치 코로나 19 사태를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사람 사이의 악수에 의한 감염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아! 앞으로 서양인들의 인사는 악수보다 우리 동양인의 인사 방법으로 바뀔 것 같다. 고개를 정중히 숙이거나 (한국식) 자신의 두 손을 겹친 후 고개 숙이는 (중국식) 인사 말이다. ‘설국 열차’ 또한 환경 재앙이 불러일으킨 비극을 보여 주었다. 말미에 인류의 조그마한 희망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과연 가능한 일일지 의문이 든다. 인간의 조그마한 실수가, 아니면 잘못된 기획이 인류를 파멸로 이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전개를 보여준다.

일종의 자가 격리와 같은 ‘집콕’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사색에의 시간을 늘려 주었다. 바쁘게 활동하던 생활의 리듬이 변화되면서 강요된 고독한 생활 속에, 사색의 시간이 끼어들게 된 것이다. 마음대로 친구도 만나지 못 하는 이런 생활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지? 세상은 이런 전대미문의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는 깨달음이 우리를 깊은 두려움으로 몰아넣는다.

고독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필시 고독이란 감정을 가지고 태어났음에 틀림없는 존재다. 그런데도 그 고독을 맞대면하는 것은 항상 부담스러웠으므로 일부러라도 고개를 돌렸다. 이제 이 역병의 환란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독을 정면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 더 괴롭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차라리 혼자 집 안에서 고독을 즐기는 것이 낫다고 볼 수 있다. 고독과 자주 대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고독으로 인한 사색을 즐기라는 것이다.

두 번째, 내가 해야 할 일로 꼽은 것은 나 자신의 면역 프로그램 점검이다. 앞서 말한 ‘자가 격리’의 ‘집콕’이 방역 프로그램의 일종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방역에 대칭되는 면역 문제인 것이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편안한 잠을 이루려고 하며 건강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마음과 몸의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가끔 집 밖의 한적한 공간에서 산책함으로써 근육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다중이 함께 쓰는 운동 기구는 만지지 않는 편이 좋음으로 그 쪽으로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쇠붙이에는 좀 더 오래 생존한다는 지식을 얻었으므로 가끔씩이라도 이용하는 다중 건물의 손잡이도 되도록 손으로 직접 열지 않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지식은 신문에서도 T.V.에서도 얻지만 요사이는 유 튜브가 유용하다. 유 튜브에 등장하는 국내외 의사 분들이 면역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소개하기도 한다. 인도에서 코로나 19 감염자가 거의 없는 이유는 카레의 영양소 커큐민 덕분이라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김치와 같은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건강식품 코너에서 카레의 주성분인 강황을 주문하였다. 비타민 B와 C, 그리고 D와 아연도 섭취한다. 건강 상식, 운동과 다이어트에 관한 지식, 피부 미용에 대한 상식, 약품에 대한 지식, 경제에 대한 상식, 국제 정치 전략에 대한 상식을 유 튜브에서 많이 얻는다. 필요할 때, 필요한 지식을 얻는 손쉽고도 유용한 방법이라 애용하는 편이다. 사실 유명한 의사 분들이, 유명한 시사평론가들이 하는 강의를 어디서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겠는가.

이렇듯 방역과 면역에 힘쓰면서 고독한 생활을 하는 것이 요즈음의 일이다.

나 같은 노년층에서는 최소한 자신을 조심하는 것이 주변과 자녀들에게 부담을 안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이다. 하지만 사회 각 층에 드리워진 생활고의 주름은 여간 심각한 상태가 아닌 것 같다. 고용센타 실업급여 창구 앞에 길게 늘어선 젊은이들의 실의에 찬 모습이나 시장이나 상점들의 휴폐업 광고를 보는 것 또한 가슴 아프다.

어제는 옛날 사진을 정리했다. 드물지만 동영상도 있었다. 시조모의 미수연 동영상에서 나는 앳된 손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물조물한 내 세 아이들이 보였다. 그 때가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때였지만 동영상 속의 나는 그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마 십년 후에는 이즈음의 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그 땐 코로나 19라는 이름의 역병이 돌던 때였어. 모두들 마스크 없이 어디 나가지 못했다구. 마스크를 사지 못한 날은 외출을 하지 못하는 날이었다니까. 인류는 이제 그 병을 완전히 정복했지. 그 때만 해도 의학의 아주 초기 시대였다니까.”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