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다수에 젊은 지지층 결집, 잠재력 살려내

▲ 투데이코리아 김성기 부회장.

TV조선의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폭발적인 성원 속에 트로트 전성시대의 막을 다시 올렸다. 사상 최고 시청률(3월 12일 35.7%)을 기록한 것은 물론 실시간 국민문자투표에 무려 773만1781 콜이 몰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요즘 방송과 신문에 ‘무려’라는 말이 너무 자주 쓰여 식상했는데 이번만큼은 꼭 맞는 느낌이다.

트로트의 복귀는 지난해 2월 시작한 같은 방송의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이미 보았지만 돌아온 열풍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당초 잡았던 시간에 집계조차 불가능하게 만든 문자투표로 나타났다. 제작진은 엄청나게 쏟아진 문자 콜에 서버에 과부하가 걸려 집계가 늦어지자 13일 새벽 발표를 포기하고 이튿날 저녁 특별생방송을 편성해 뒤늦게 공개했다. 방송계에서는 700만 콜이 넘은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놀라면서도 제작진의 준비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미스터트롯’은 참가자들의 탄탄한 가창력은 물론 선발된 그룹이 보여준 다양한 개성과 장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결승 진출자 개개인이 보여준 열의와 애절한 사연들이 노랫말과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고 때로는 흥취를 더해주었다.

최종 1위로 진(眞)에 뽑힌 임영웅은 심금을 울리는 우수에 젖은 음색에 흔들림 없는 탄탄한 음감으로 예선부터 단연 눈길을 잡았다. 선(善) 영탁은 뛰어난 고음 처리와 리듬 감각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아온 아티스트. 이번 오디션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단숨에 대중성을 확보했다. 미(美)의 이찬원은 노래 실력도 실력이지만 거침없이 무대를 누비며 즐거움을 더해주는 활달한 스타로 찬사를 받았다. 상큼한 미소까지 더해 여심을 사로잡았다는 후문도 들린다. 예선부터 귀염둥이로 인기를 독차지한 정동원은 결승 무대에서 최근 타계한 할아버지의 애창곡 ‘누가 울어’를 애절하게 불러 관객과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미스터트롯’은 그동안 TV방송 등 대중매체 편성에 접근할 기회를 찾지 못했던 실력 있는 트로트 가수와 지망생들을 한자리에 모아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무대를 제공했다. 또 관객과 심사위원(마스터)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어 국민에게 가요의 진면모를 다시 보여주었다.

중장년층과 노년층 즉 기성세대 전통가요 팬들이 시대변화에 따라 문화를 향유하는 주류 소비층에서 점차 밀려나면서 대중매체의 편성도 댄스음악과 아이돌그룹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른바 채널 선택권과 문화소비의 주도권에서 밀려난 것. 가족 부양을 위해 아직 산업현장에서 뛰고 있는 중장년과 과거 산업화의 주역을 맡았던 노년층은 갈수록 빨라지는 시대변화의 와중에 여론 주도층에서 점차 멀어져가는 신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당 지지와 경제정책 등에 관한 여론조사 분석에서도 중장년과 노년층의 동향은 점차 경시되는 추세를 보였다. 정치적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은 물론 경제력에서도 ‘가는 세대’로 점차 홀대를 받았다. 합리적 논리와 진실은 뒤로하고 끼리끼리 뭉쳐 소리 높이는 세력이 세상을 다 차지한 듯 설쳐대는 판국이니 말 없는 다수는 어쩔 수 없이 소외되는 처지였다.

트로트 열풍은 문화의 향유라는 측면에서 ‘소외된 다수’를 재조명하게 만들고 있다. 자녀들에게 묻고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어렵게 국민문자투표 대열에 합류한 중장년과 노년층의 관심이 각별하게 느껴진다. 사실 제작진이 좋은 기획과 우수한 인력, 재원을 들여 프로그램을 성공시켰지만 문자투표 방식을 시청자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알리지 못해 무효표가 230만표 이상 나온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무효표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었다면 최종 순위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추론까지 가능하다.

그래도 큰 그림은 성공이었다.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문화소비 분야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던 기성세대가 분발해 다시 중심부로 진입하고 전통가요를 생소하게 여겼던 젊은이들이 노래의 묘미와 깊이를 새롭게 받아들여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 것에 주목한다.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소외됐던 기성세대가 자신감을 회복해 바탕을 다지고 그 위에 젊은 세대가 견고한 무대를 만들어 트로트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분석했다.

이런 자신감의 회복이 트로트 열풍에 그치지 않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과거 일제치하와 6.25 같은 국난을 겪을 때 우리 국민이 가요를 통해 애환을 달래며 다시 일어섰던 것처럼. 아울러 미증유의 위기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는 벅찬 소임을 풀어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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