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계 "김병철 사장,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 평가

▲ 김병철 신한금융투자 사장이 '라임사태'와 관련 20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코리아=오 윤 기자 | 김병철 신한금융투자 사장이 라임자산운용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로 물의를 빚은 것과 관련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20일 신한금융지주에 따르면 이날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김병철 사장은 “신한금융투자에서 판매한 투자상품으로 고객들에 끼친 손실에 대해 회사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이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사장은 “고객 투자금 손실 발생에 대한 책임이 있고 없고를 떠나 신한금융투자가 고객의 신뢰를 되찾고 빠른 정상화를 위해서는 본인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맞다”며 “고객 손실 최소화 방안을 준비하기 위해 그동안 사퇴의사 표명을 미뤄왔다”고 했다.

아울러 “신한금융투자는 앞으로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라임자산운용 사건에 대해 고객의 신뢰를 받는 금융기관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로 일말의 의혹이 남지 않도록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퇴로 책임 회피?

그동안 신한금융투자는 라임 사태와 독일 DLS 논란에 대한 책임론에 휩싸였다. 독일 DLS는 독일의 `기념물 보존·등재 건물` 재건 사업에 투자한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이다. 독일 현지 시행사는 `저먼프로퍼티그룹`(GPG·전 돌핀트러스트)이고, 운용은 싱가포르 반자란운용이 맡고 있다.

독일 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한 곳을 현지 시행사인 돌핀트러스트가 개발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이 시행사가 발행한 전환사채를 싱가포르 반자란운용이 펀드를 통해 대출해주고 국내 증권사가 이를 기초자산으로 DLS를 발행해 판매했다.

이 상품은 국내에서 2017년 5월 출시돼 신한금융투자 등 6개 증권사와 2개 은행이 2033명에게 모두 5278억 원어치를 팔았다. 이 중 만기 상환 금액은 206억 원이고, 만기 연장된 금액은 2586억 원에 달한다. 신한금투 뿐만 아니라 하나은행, NH투자증권도 판매했다. 개인 고객을 상대로 각각 3900억 원, 550억 원, 240억 원 정도 판매했다.

문제는 독일 정부가 헤리티지 건물 재개발 인허가를 미루면서 현지 시행로부터 수익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만기가 계속 연장되면서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이 돌려받지 못한 환매연기금액이 약 2600억 원에 달하게 됐다.

신한금투는 관련 부동산이 인허가 문제로 개발이 늦어졌을 뿐 시행사가 자산 매각에 성공, 향후 매각이 완료되면 상환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시행사가 자산매각에 실패하고 원리금 지불이 또 유예되자 이번엔 반자란운용이 시행사로부터 포괄적 권한위임(PoA)을 받아 자산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시행사는 영국 금융감독청과 싱가포르 통화청의 `투자자 경계목록`에 들어 있을 만큼 부실투성이로 알려졌다. 영국 당국은 이미 2014년 12월 투자 위험성을 경고했고, 현지 매체도 2016년 6월부터 시행사의 사기 및 자금 세탁 의혹을 보도했다. 실제로 이 시행사는 사업 인허가를 받지 못해 원리금 상환을 미루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 금융사들은 `독이 든 사과` 같은 이 상품을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은 채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사실상 신한금투를 비롯한 판매사들이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김 사장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특히 신한금투는 금융당국의 칼끝에 서 있다.

금융감독원은 라임자산운용과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고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를 제공한 신한금투가 문제가 된 무역금융 펀드 부실을 미리 알고도 사업을 강행했다고 봤다.

TRS 계약은 자산운용사가 자산을 대신 매입해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계약상 펀드 자산을 처분할 때 일반 투자자보다 먼저 자금을 회수할 권리를 가진다. 라임과 TRS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이 자금을 먼저 빼면 다른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그만큼 작아져 일반 투자자가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신한금투는 무역금융펀드에 약 3600억 원을 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한금투는 환매 중단 가능성이 있는 펀드들을 개인 고객 301명에게 총 1249억 원어치 판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감원 출신 관계자는 “당국이 신한금투자 라임 사태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문자상표부착(OEM) 펀드가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는 만큼 금감원의 칼날을 쉽게 피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리스크 관리 실패" 한 목소리

금융투자업계는 김병철 사장이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5대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검찰에 고발을 하면서 신한금투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고 악의적으로 그랬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이미 사태는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쳤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신한금융투자가 큰 잘못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사실상 김병철 사장의 행보에 가시밭길이 놓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DLS 사태의 경우에는 신한금투가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보수적인 경영을 하던 신한금투는 미래에셋대우 등 해외 부동산 투자 선발주자들보다 뒤늦게 사업에 뛰어들었다. 관련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채권의 귀재'라 불린 김 사장이 리스크에 실패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며 "현재로선 투자자들의 피해에 대해 대책을 내놓고 내부 관리를 제대로 해야될 때"라고 말했다.

금융상품의 안전성 확보는 금융사들의 책무이다. 최근 잇따르는 금융상품 투자 피해를 줄이려면 금융사들이 판매만 독려할 게 아니라 상품의 위험성을 더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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