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극심한 자금난에 빠진 두산중공업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1조 원의 긴급대출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주력산업인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 수주가 급감하면서 실적부진에 시달려왔다. 지난해 5000억 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만도 1조 3800억 원에 달한다. 당장 다음달 27일까지 6150억 원의 외화공모사채를 갚아야 할 정도로 다급하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탈원전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해 당사자간 충분한 토론과 합리적 미래예측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하게 탈원전 시책을 추진하다보니 부작용이 산업계 전체를 강타했다. 특히 세계적인 원전 기술을 갖춘 국내 유일의 원전 핵심설비 업체인 두산중공업의 타격이 컸다. 원자로 증기발생기 등 신규 수주가 급감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이에 따라 고정비 절감을 위해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 원전기업이 몰려 있는 경남 창원시는 원전산업 쇠퇴로 세찬 찬바람을 맞고 있다. 두산중공업 뿐만 아니라 부품을 만드는 협력사에 이르기까지 원전 생태계 전반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체코,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등을 상대로 한국형 원전 수출을 위한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글로벌 발전시장의 포화상태까지 더해지면서 탈원전 돌파구라고 여겼던 원전 수출마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제는 정부가 탈원전의 대안으로 내세웠던 신재생에너지 업체들까지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태양광 패널 기초소재인 폴리실리콘 국내 1위 제조업체인 OCI가 국내에서 폴리실리콘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이달 말까지 희망 퇴직신청을 받는 등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한화솔루션도 사업을 철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중국의 저가 공세 때문이다. 중국 태양광 완제품이 국내산보다 10%정도 싸기 때문에 국내 태양광 설치 업체들이 중국 태양광을 선호한다.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시책이 결국은 중국 기업들 배만 불려주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잉곳·웨이퍼·셀 등 태양광 사업을 시행하던 중소업체들도 줄줄이 도산위기에 몰리며 국내 서플라이 체인 자체가 마비될 위기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또 다른 주축인 풍력발전의 핵심 설비인 터빈 제조기술 역시 덴마크·스페인·미국 등이 주도하고 있다. 국산 풍력 설비는 절반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국내 에너지저장장치(ESS) 업계도 잇단 화재사고 등으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잃었다.

원자력 비중을 낮추고 신재생, LNG(액화천연가스) 의존도를 높여갈수록 전기요금은 인상될 수밖에 없다. 2016년에 12조 원이 넘는 흑자를 냈던 한전은 2018년에 2000억 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지난해에는 무려 1조 3500여억 원이라는 엄청난 적자를 냈다. 그런데도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사회적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전기요금 납부를 유예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적자규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면 전력요금은 2017년 대비 2030년에 25.8%, 2040년에 33.0%까지 인상되고, GDP는 기준 시나리오(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비해 연평균 1.26%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금은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요금 체계 개편 작업이 멈춰 있지만 언젠가는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어 앞으로 전기요금 급등으로 산업 경쟁력과 국민 생활의 질적 하락이 불가피하게 됐다.

후쿠시마 사고를 일으킨 일본도 원전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마크롱 정부도 원전 축소 시점을 10년 늦추기로 결정하는 등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들을 비롯해 대만 등이 잇따라 탈원전 정책 수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젠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독일과 벨기에의 실증 사례는 물론 프랑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완급조절 조치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원전 안전성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산업이 경제의 기둥이라는 점도 간과돼서는 안 된다. 정치 논리에 의해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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