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인하요구 등 불공정 거래 만연

-“거래처 뺏길까봐 대기업 하자는 대로…”-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후 상생경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 말이야 좋지만… 결국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 불공정한 거래를 요구해도 거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나 말고도 하청하려는 업체는 많이 있으니까… 요즘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지만 납품단가를 올려달라는 소리는 입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요구했다가 거래 끊겨 문 닫은 회사 여럿 봤다. 납품단가 깎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어느 제조회사 사장의 넋두리다.

참여정부 들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돼 오고 있으나, 대기업이 하도급업체에 일방적으로 납품단가 인하를 강요하는 등 불공정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2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전자·완성차·건설 등 3개 업종 21개 대기업과 거래하는 하도급업체 1236개사를 대상으로 하도급 거래의 공정성을 조사한 결과 '하도급 대금결정' 항목에 대한 공정성 점수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임금 인상, 환율 하락 등에 따른 손실을 일방적인 단가 인하를 통해 하도급업체에 떠넘겨 손실을 만회한 것이다.

'하도급 대금결정'의 공정성 평가를 업종별로 보면 전자가 100점 만점에 67.1점으로 가장 낮았고, 완성차와 건설은 각각 71.9점, 76.6점이었다.

전자업종 하도급 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단가 조정의 적정성'과 '대기업 임금 상승에 따른 단가 인하의 적정성' 항목에 가장 낮은 점수를 줬다.

또 자동차업종 하도급 업체들은 '대기업의 임금 상승에 따른 단가 인하'를, 건설업종 하도급 업체들은 '물가 상승에 따른 대금 조정'과 '원도급 금액 대비 하도급 금액 설정'에 가장 낮은 점수를 줬다.

◆대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 여전=

지난달 29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애로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점이 잘 나타난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156개 중소기업 중 절반에 가까운 74개 업체가 '대기업의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요구'를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유형으로 지적했고 '대기업의 일방적 발주취소', '납품업체 변경'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대기업의 하도급거래 불공정성에 대한 체감도가 2004년 31.2%에서 참여정부의 상생협력 정책 추진이 본격화된 2005년에는 24.9%로 큰 폭으로 줄었고, 2006년에는 21.5%를 기록하는 등 현장에서의 불공정행위 체감도가 낮아지는 추세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중소기업의 38.5%가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중소기업의 애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소기업의 2006년도 대비 2007년도 생산원가는 평균 13.2%가 증가했으나 납품단가는 평균 2.0% 감소한 것으로 조사돼 대기업이 원가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중소기업의 대처방법은 조사기업 중 51.9%인 81개 업체가 '거래단절 등이 우려돼 그냥 참는다'고 대답했고, '대기업에 시정을 요구'한 기업은 20.5%였으며, '사법대응'을 한 기업은 9.0%에 불과했다.

결국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거래단절이나 일방적인 납품업체 변경을 우려해 적극적인 대처를 못하고 있다.

◆“공정거래 확립으로 '상생협력' 이끌어야”=

물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불공정 거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상호 협력을 통해 양쪽 다 윈윈하는 사례들도 많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생협력'의 성공적인 사례로 삼성전기와 연호전자를 들 수 있다.

양사는 지난 2006년 '상생협력'을 통해 발광다이오드(LED)의 리드프레임(반도체 칩에 전기를 공급하고 이를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공동개발에 착수, 세계 최초로 초박막 1차 기술개발에 성공해 일본을 넘어 국내 LED 산업의 도약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을 들었다.

양사는 이번 협력으로 개발기간을 6개월 단축했고, 생산성은 2배로 늘렸으며, 수율도 11% 향상시켰다.

연호전자는 3년간 신규 매출 1000억원, 2년간 2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거뒀으며, 삼성전기는 3년간 9000억원 정도의 시장선점 효과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서부발전과 에스티비 역시 2006년 세계 최초로 대용량 스마트 리튬 배터리인 '파워 스택 30000'을 함께 개발했다.

자본금 12억원에 연 매출 7억원, 종업원 8명에 불과한 에스티비는 이 개발로 인해 향후 3년간 약 700억원의 매출 증가가 예상되며, 한국서부발전은 향후 한전의 도서 전화사업과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적용에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상생협력이 효과를 얻으려면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해소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간 여러 대기업이 보여준 불공정행위는 이런 바람을 무색케 했다.

때문에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상생협력이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질서 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관련법을 개정하고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대상과 범위를 넓히는 등 지원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며, 공정위를 중심으로 공정성 평가를 꾸준히 보완·추진하고 평가 결과 우수 기업에 대해서는 하도급 벌점 감점 혜택 부여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기업들 스스로 거래의 공정성을 높여나가게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아울러 평가 결과를 부당 납품단가 인하 행위에 대한 감시 등 향후 법 집행과 정책의 참고자료로 활용해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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