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발전과 확대를 거듭해 가던 인간 문명이 한낱 바이러스의 침공을 맞아 처참하게 쪼그라들고 있다. 때는 21세기인데 14세기의 흑사병 시기의 감염이나 가까이는 20세기 초 1차 대전 시에 발병했던 스페인 독감과의 비교가 종종 이루어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의 언론이 전선에서 발병한 이 독감에 관해 계속 보도함으로써 스페인 방송을 들은 병사들이 그 병을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렀고 그 명칭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사망한 병사 및 민간인들의 숫자가 2천만 명인데 그 독감으로 사망한 인명이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가히 질병의 위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흑사병 또한 인구가 적었던 14세기에 3년에 걸쳐 2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엄청난 재난이었다. 그 외에도 서구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딜 때 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면역을 갖지 않았던 원주민들을 초토화시켜 정복을 손쉽게(?) 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듯 대단한 인명의 손상을 가져온 그 병들에게서 경험을 얻어 현재는 예방 조처와 진단과 치료 등, 과학의 발전으로 사망률은 현저하게 줄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것이다. 그래도 과학이 발달했다 해 놓고 어찌 이 바이러스를 잡지 못 하나, 원망이 생긴다. 물론 인류는 결국 이 바이러스를 퇴치하고야 말 것이지만 문명과 문화의 접점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코로나 19의 원인으로 실험실에서 고의 또는 사고로 유출되었을 것을 의심하고 있다. 이 추정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젠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또 지구상에서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는 것을 우려하는 어떤 집단(?)의 음모라고 하는 견해도 있는데 그 것 또한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지구별에서의 문명의 발달은 결과적으로 인구 감소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더 이상 기업에서의 노조와 같은 집단행동은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른다. 인간을 대신하는 AI가 인간의 자리를 점차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의 급격한 발달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바이러스의 창궐은 과학의 발달 때문에 생긴 나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차라리 과학 또는 의학의 발달이 인류를 살리는 구세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코로나 19의 백신 약 또는 치료약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 병의 발발은 지구촌 전체의 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개인위생 문제이다. 서구인들이 즐겨하는 인사인 키스와 포옹 및 악수는 점차 사라지고 동양식 절이나 기타 다른 접촉으로의 인사 문화가 자리 잡을 것 같다. 악수는 처음 생길 때 손에 무기가 없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였다고 하지만 이제 감염의 제 1 원인으로 기피되어야 할 존재가 되었다.

둘째, 격리 문제이다. 자가 격리에 따르는 고독을 경험함으로써 이제까지의 함께 하고 함께 즐긴다는 –함께-의 미덕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나타나게 되었다. 고독이 인간 고유의 특징이자 인문학의 근원으로서 향유해야 할 덕목으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고독 속에서 건져 올린 문학과 철학의 사유가 깊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실례로 서구 소설의 연원이라 할 –데카메론-도 흑사병 시절에 출현하지 않았는가.

셋째, 경제 문제이다. 유례없는 공포와 격리의 생활 속에서도 인간은 먹어야만 하는 존재이므로 농업의 굳건한 실체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아울러 농촌 생활까지도 재조명되었다. 도시에서 살다가 자가 격리를 위해서 가까운 친인척들이 사는 시골로 거처를 옮긴 사람들이 많다.

농촌은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조밀하지 않고 맑은 공기 속에 있으므로 이번 질병과 같은 호흡기 및 폐 질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사실 그러하다. 옛날 페스트 시절에는 위생조건이 열악한 시골에도 발병이 많았다고 하지만 지금의 농촌 지역은 도시 못지않게 위생 조건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대기 질 뿐 아니라 비타민 D가 풍부한 태양의 빛과 열이 면역력에 도움을 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대로 아마 이 질병은 지나갈 것이고, 이 후에도 인류의 문명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다. 대기 질에 미세하게 펼쳐져 있는 바이러스보다도 더 작은 나노의 물질들이 전파라는 이름을 타고 세계를 좁혀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병을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학과 과학의 세계는 한층 더 미지의 세계를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류는 ‘잠깐 멈춤’의 이 시기를 통하여 자연에 대하여 숙고할 시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 세계가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라’ 라는 뜻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연 속에서 생로병사를 경험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나 나노와 같은 마이크로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겠지만 기본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식품, 그 식품을 생산하는 자연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인식을 새로이 한 것이다. 문명의 ‘잠깐 멈춤’의 시간에서도 생명은 그대로 흘러가며 그것은 자연에 기초한다는 것 말이다.

자연은 잠깐이라도 멈추지 않았고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천지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한다.

그러므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산도 가까이 보이고, 아침에 뜨는 태양과 저녁에 지는 석양을 매일같이 친구처럼 대면하고 있는 시골 사람으로서 코로나 19 라는 질병의 만연은 도시 문명에 대한 경종으로 비쳐진다. 그렇게 부러워 마지않던, 도시에 밀집한 고층 아파트의 문명 생활도 그 어떤 위험에 대해서는 취약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던 우려가 현실화 되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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