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험,인맥 등 장점많아, 시장주의,성과주의 매몰경향은 단점

[사진설명=청와대 신임수석 발표현장(인터넷공동취재단 촬영)]
“영남권,고려대 편중이다”, “교수 출신이 많아 실무 적응이 걱정된다”

10일 발표된 차기 정부의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면면이 공개된 후 대통합민주신당 등 일각에서는 이런 우려가 나왔다. 더욱이 14일 밤 대체적인 장관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교수 출신은 더 늘어났다. 가히 '폴리페서'의 전성 시대다. 이미 이명박 당선인이 대선후보이던 시절부터 캠프에 수많은 교수들이 운집하면서 이런 내각,청와대에 교수들이 대거 포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바 있으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예상보다도 더 큰 폭으로 교수들이 약진했다.

◆전문성에 사회경험 많은 영파워 끌어들여

이번에 임용된 수석 후보과 장관 내정자들은 교수 출신이 많다. 박사 학위 소지자로 폭을 넓히면 수는 더 늘어난다. 석사만 갖고 있지만 변호사 자격 등 다른 자격과 고위행정직 경험이 있는 인사(민정수석에 발탁된 이종찬 전 고검장) 등도 있다. 한 마디로 아카데믹한 인재풀을 뽑은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림대 총장을 지낸 김종수 청와대 경제수석 지명자의 경우,한국개발연구원(KDI)맨 출신이다.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 수립에 씽크탱크 역을 해온 KDI 출신의 경험과 연륜을 해외 경제 경색의 시점에 활용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외교안보수석은 아예 외국파 교수를 영입했다.김병국 외교안보수석 지명자는 하버드에서 수학한 인사. 경제를 학부전공으로 한 뒤, 정치학으로 석사, 박사를 해 외교 흐름을 알면서도 경제적 기본 소양이 있다는 점이 낙점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 출신이지만 미국 내 유력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워, '자원외교'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높다.

[사진설명=이주호 의원]

서울복지재단 초대이사로 활동하는 등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은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가 사회정책수석에 기용된 것도 전문성과 인맥이라는 측면에 궤를 같이 하는 대목이다. 교육 문제에 발벗고 나서서 교육부 관료들과 '맞짱'을 떠온 이주호 교육수석 내정자는 경제학 박사 출신에 교수 경력이 있어 교육부 관료들과의 언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뒷심을 발휘해 온 인물이다.

결국 평균 연령대52.6세, 몇몇 고령 인사를 빼면 47~53세 사이의 '영 파워'들이 청와대의 정책 마련에 입김을 넣게 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지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진용보다는 젊어졌으며,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청와대가 속칭 386의 젊은 그룹 차지가 돼 코드 인사 논란과 전문성 부재 논란에 시달렸던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중간점'을 찾았다는 평이다.

15일 아침 현재 논의되는 장관감들을 보더라도 교수들의 발탁이 눈에 띈다. 노동부 장관엔 이영희 인하대 법대 교수가 내정됐다. 교육과학부에는 CEO형 총장으로 유명했던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 국무총리 산

[사진설명=남주홍 교수]
하에 신설될 2명의 특임장관 중 한 자리엔 이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주홍 경기대 교수가 유력하다. 정부 조직 개편 협상 결과에 따라 통일부가 유지될 경우 남 교수는 통일부 장관을 맡을 공산도 크다고 알려져 있다.

◆이전의 교수 출신 총리,장관과 달라

이전의 교수 출신 관료들은 '샌님' 이미지가 강했다. 교수들이 총리나 장관에 발탁되는 경향은 전두환 정권 출범 초 국보위 등에 교수들을 장식품으로 데려다 놓던 것에서 시작, 노태우 정부 이후 문민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애용돼 왔다. 그러나 일을 잘 한다기 보다는 이론과 현장 사이의 괴리 사이에서 감을 잡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모습을 보였다. '워밍업' 기간이 길었던 셈이다. 교육부 등에 장관으로 가는 경우 행정관료들에게 휘둘리는 양상도 종종 빚어졌다.

그러나 이번에 대거 영입된 교수 혹은 박사들은 속성이 다르다. 교단 내지 일선 행정부문에서 경험을 쌓고 인맥이 두루 넓은 사람들로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에 '폴리페서'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있다. 자기의 정책을 실무에 접목시켜 보고자 정치권과 접촉하고 나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세대다. '폴리페서'라는 신조어가 최근 등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회활동에도 열심이다. 자부심과 노블레스 오블리제도 갖췄다는 이야기다.

◆지나친 성과주의로 치달을 가능성 있어

그러나 이들이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다. 정책수립에 의욕이 강하고 전문성과 노하우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소질이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역시나 일선 행정부처와 조율해 나가는 문제에서는 과거 '샌님' 스타일이던 학자 출신 총리나 장관, 고위공직자들처럼 혹은 그 이상 호된 신고식을 치를 가능성이 잔존한다. 강한 성격과 소신으로 이전의 조용한 교수들보다 더 마찰을 빚으며 자기 부처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주호 의원이 과거 교육부와 고발전까지 가며 극한 대립을 폈던 사례 등은 그저 웃어넘길 만한 일은 아니다. 청와대 비서진들이 끝을 봐야 되는 기싸움을 즐길 에너자이저들이라는 점은 향후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이런 길들이기 과정에서 일선 기관들과 아옹대며 허비할 시간이 과거 정권처럼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이들을 전격 발탁한 이 당선자의 의중에는 '경제통, 전문가 그룹, 인맥과 노하우 풍부한 인사들'을 잘 활용해 경제살리기라는 대국민 약속에 어떻게든 빠른 성과를 내놓겠다는 조급증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는 당선자와 국민들의 시선은 물론, 여기에 더해 본인들 스스로 강한 성취욕과 승부의식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대다수이니만큼, 성과주의로 달려갈 수 있다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유승희 의원은 교수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인수위의 특성에 대해 “많은 일을 잘 하고 있다. 그러나 조급증과 대중인기영합주의가 없지 않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영어몰입교육을 조급하게 들고 나왔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은 예가 있다. “교수들이 대거 청와대나 일선부처 장관으로 가는 건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그 면면이 미국통. 시장주의자들인 것은 문제다. 이는 이 교수들이 행정업무를 볼 때, 성과주의 같은 기업형 마인드로 매몰될 가능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행정은 꼭 기업처럼 실적으로 말하는 게 적당치 않은 영역이다. 그런데 지금 발탁되는 교수들은 이런 면이 문제라면 문제다“라는 조승수 전 의원의 지적도 귀기울일 부분이다.

[사진설명=어윤대 전 총장]
즉, 이명박 당선자 본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으로 거론되는 성과중심주의에 적당히 제동을 걸고 조언을 하는 것도 고위층인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의 본연의 업무 중 하나지만, 현재 면면은 그런 기능은 도외시되거나 축소된 채 일과 과업 중심으로 움직이는 조직에 가깝다. 이렇게 되면 장관들과 수석들로 발탁된 인사들은 각자 달리기에 몰입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렇게 되면 계선조직(일선 행정부처)과 참모조직(비서실 등)을 나눠 상호 경쟁보완하는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폴리페서' 그룹의 첫 '본격' 진출, '번개탄' 신세 우려도

즉 이들은 정치를 알고, 자신의 정견과 학술지식을 정치에 반영하려는 의욕도 충만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정치판이나 행정실무에서 이를 활용한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는 이전에 이쪽에 진출했던 학자군과 다르지 않은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른바 '폴리페서' 그룹이 정치에 대거 진출한 첫 케이스가 이번 이명박 차기 정부이기 때문에, 이들 수석비서관 지명자들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보여주는가에 따라서 '폴리페서'가 우리 나라 정치,행정과 교수그룹의 교량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고, 정치에 기웃거리는 어정쩡한 교수그룹으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당선자가 뽑은 이번 인사들이 어떤 문제 의식을 갖고 청와대 생활에 적응하는가에 따라서 전반기 이명박 정부의 성취 정도는 물론 이른바 '폴리페서'들에 대한 인식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번 인선은 눈길을 끌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팔방미인'들을 뽑아 놓고는 그저?'번개탄'처럼 활용할지, 국가발전 기틀의 '주춧돌'로 이용할지 주목된다. 그리고 이들 스스로는 '오너'의 이런 의지에 응하여 때로는 대항하여 어떤 족적을 남길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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