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재산 놔두고 신용대출…석연치 않게 끝난 토지 거래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 검찰이 재정경제부 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씨의 계좌를 압수수색하면서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전 부총리는 론스타 수사와 관련해 이름이 거론되는 전ㆍ현직 관료 중 최고위급 인사로 이른바 `이헌재 사단'이라 불리는 금융계 실세들의 좌장이기도 하다.
검찰은 이 전 부총리의 비중을 의식한 듯 최근 계좌 추적과 관련,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본체 외에 나머지 부분은 티끌만큼의 의혹이 제기되고 단서가 포착되면 수사하고 있다"며 일단 겉으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출 과정에 석연치 않은 의문점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고,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팔린 무렵 이 전 부총리의 경기도 광주 토지 거래가 이뤄진 것도 우연으로 결론짓기에는 개운치 않아 이 부분에 대한 향후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 재산 놔두고 주거래 은행도 아닌데 대출 = 이 전 부총리의 재산은 2000년 8월 재경부 장관 퇴직 당시 25억1천127만6천원에서 3년6개월만인 2004년 2월 부총리로 복귀할 때 86억3천511만4천원으로 3배가 넘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당시 이 부총리는 197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경기도 광주 일대 전답과 임야를 사뒀는데 2003년에 9개 필지를 팔면서 애초 신고가액인 공시지가와 실매도액간의 차액 46억원이 발생, 재산변동신고에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신고 내용을 보면 이 전 부총리 부인의 명의의 8개 금융기관에는 28억3천여만원의 현금이 예치돼 있었고, 본인 명의의 5개 금융기관에도 1억3천여만원이 있었다.
눈에 띄는 건 이 전부총리가 2003년 초 외환은행에서 10억원을 대출받았지만, 2004년 재산 신고 때 외환은행은 이 전 부총리와 거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국민은행, 조흥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삼성생명 등 5개 금융 기관과 거래했고, 이 가운데 우리은행에 입금된 금액이 5천417만원, 삼성생명에 예치된 금액이 7천70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부인 역시 주거래 은행은 국민은행과 S상호저축은행이었고 외환은행에는 447만원만 들어 있었다.
일반인들이라면 대출 때 0.01% 금리라도 혜택을 보려고 주거래 은행을 찾는 게 상식인데 이 전 총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10억원 중 4억원은 담보대출보다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이었지만, 은행측은 9% 안팎인 금리를 6%까지 낮춰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도 상당한 재력가였던 이 전 부총리가 굳이 은행에서 신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가며 주택을 구입했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계좌 추적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 이 전 부총리의 주변으로 추적을 확대하면서 대출 자금을 누가 어떤 재원으로 갚았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대출의 성격을 파악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 2003년 7월 무슨 일이 있었나 = 김진표 경제부총리(현 교육부총리)는 2003년 7월 22일 외신과 인터뷰에서 "수출입은행 소유의 외환은행 지분 32.5%의 전부 또는 일부를 미국 론스타 펀드에 매각하는 내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잇따라 외환은행 해외 매각 협상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고, 정작 당사자인 외환은행은 이를 부인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최고위 경제 관료가 명쾌하게 선을 긋는 순간이었다.
한 달여 뒤인 8월 27일 외환은행은 론스타로부터 1조3천834억원을 받고 지분 51%와 경영권을 양도하는 내용의 본계약을 체결, 매각을 완료했다.
공교롭게도 2003년 6~7월 사이 이 전 부총리 부인 명의의 토지 매매가 이뤄진 점도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트럭운전사 등 공동 매수자 11명이 나섰던 이 거래는 이후 이 전 부총리의 투기 의혹으로 불거지면서 논란이 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공동 매수자들 뒤에 다른 큰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강하게 제기됐지만 공동 매수자 대표가 정당한 거래였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당일 이 전 부총리가 사퇴하면서 파문이 봉합됐다.
◇ 누가 꼭지점인가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환은행 불법매각 건은 당시 변양호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김석동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 작품"이라며 '이헌재 사단'을 겨냥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변 전 국장을 개인 비리 혐의로 최근 구속한 데 이어 이 전 부총리의 출국을 금지함으로써 이헌재 사단의 핵심 인물에 대한 수사 준비는 완료된 셈이다.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과 이달용 전 부회장, 신재하 전 모건스탠리 한국지사 전무가 계좌추적 대상에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전 부총리는 인베스투스글로벌 전 대표인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의 부실기업 인수 청탁 및 대출 알선 과정에 이 전 부총리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어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검찰은 다음달 안으로 론스타 수사를 마무리 짓는다는 방침이어서 19일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면 관련자들의 줄 소환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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