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치판에는 불도저가 통하지 않는다' 교훈얻어야

<정우택 논설위원>
“개업 날 부도가 났다” “정치판에는 불도저가 통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유능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우며 장관으로 내정했던 사람들이 취임도 하지 못하고 줄 사표를 내자 시중에 떠돌고 있는 말이다.

장관 내정자가 3명이나 낙마하는 것을 보는 국민들은 아무 생각도 없고 멍하다. 단지 이명박 정권이 얼마나 잘 해나갈지를 걱정할 뿐이다. 이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실망하고, 원래부터 실망했던 사람들은 “내가 뭐랬어”하며 '올 것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는 분위기다.

27일 남주홍 통일부장관 내정자와 박은경 환경부장관 내정자가 여론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이춘호 전 여성부장관 내정자는 며칠 전에 사퇴했다. 이들 3사람의 잘못이 무엇인지는 굳이 다시 거론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등이다.

이들 3인방 말고도 야당으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사람은 더 있다. 제자의 논문을 써먹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청와대 수석도 있다. 한승수 총리 지명자 역시 투기문제 등으로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 지금과 같은 꼴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또 누가 물러날지 모른다. 심지어는 장관 내정자 가운데 살아남을 사람이 불과 몇 명이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린다.

취임도 하기 전에 장관 지명자가 3명씩 무더기로 낙마하는 것은 우리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아마 대기록일 것이다. 또 장관 내정자의 재산이 평균 40억 원에 가까운 것도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이 부자라 장관들도 부자'라는 말이 오고 갈 정도다.

장관 내정자의 무더기 퇴진은 이 대통령의 지도력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가했다. 대선에서 50%의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앞으로 이 대통령의 정치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야당과의 협상에서 입지도 약화될 게 분명하다.

이번 일은 이 대통령의 인사시스템에 결정적인 흠이 있음을 잘 말해줬다. 5천명을 걸렀다는 게 고작 이 정도라면 뭘 어떻게 걸렀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깨끗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골랐는지 돈 많고 잘못이 많은 사람을 골랐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 대통령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인사다. 대선을 전 후 해서는 인사문제를 두고 박근혜 전 대표측과 갈등이 얼마나 깊었나? 또 청와대 수석을 미국에서 공부한 특정지역 교수들로 채웠을 때도 얼마나 말이 많았나? 결국 이번에는 말이 많은 사람들을 장관으로 세우려다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이 인사 문제로 여러 번 고통을 겪은 것을 똑똑히 보면서 이 대통령은 교훈을 얻기보다 더 큰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장관 내정자의 집단 사퇴, 다른 내정자들의 갖가지 구설수는 아마도 오는 4월에 있을 총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이 대통령은 공사 현장이나 경제 쪽에서는 불도저 정신이 먹히지만 정치판에서는 불도저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들의 정서도 그렇다. 정치는 의지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장관 내정자를 인선하며 작은 흠이 있어도 능력이 있으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밀고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왕 엎어진 물을 어찌한단 말인가? 다만 앞으로 인사문제에 관해서는 좀 더 철저하게 사람을 골라야 한다. 주변사람, 알고 있는 사람만 골라 쓰려하지 말아야 이번과 같은 문제가 다시 터지지 않는다.

흔히 사람이 없다고 한다. 사람이 왜 없나. 주변에서 아는 사람 중심으로 일류대를 나오고, 특정 대학을 나오고, 특정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 가운데 사람을 찾기 때문이 아닌가. 눈을 크게 뜨면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찾지를 않고 있을 뿐이다. 마음이 닫혀 있을 뿐이다.

이 대통령은 첫 내각을 구성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이 신고식이 단순한 신고식으로 끝날지 아니면 4월 총선에 악영향을 주고, 이 대통령의 국정 운용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는 사태가 너무 심각해서 현재로서는 가름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정우택 논설위원 jwt@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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