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노래방서 발화, 4층 전체 순식간 불길

27분만에 진화했으나 `쪽방' 거주자 대거 참변

방화 가능성 수사…고시원 내부구조 문제도 조사

(연합뉴스)19일 오후 3시53분께 서울 송파구 잠실동 4층짜리 건물 지하 노래방에서 불이 나 건물 전체로 불길이 번지면서 3∼4층 고시원에 기거해온 박승균(52)씨 등 거주자 8명이 숨졌다.

또 조모(24.여)씨 등 고시원 거주자를 위주로 11명이 화상과 유독가스 등으로 부상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 중 중태자도 2∼3명 있어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고시원 내부 구조상 문제점에 대해서도 관련자를 상대로 수사 중이다.

▲지하 노래방서 `펑'…순식간에 4층까지 불길 = 오후 3시53분께 `펑'하는 큰 소리와 함께 건물 왼편 노래방 출입구로 검은색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지하 1층 노래방에서 발생한 불길과 연기는 중앙 계단을 타고 순식간에 꼭대기 층인 4층까지 번져 옥상 밖으로 불길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 건물 1층 식당 2곳과 2층 건설회사에 있던 사람들은 사고가 나자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왔으나 고시원으로 운영 중인 3,4층 거주자는 상당수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건설회사 직원인 신모(60)씨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유리 출입문 사이로 불길과 연기가 순식간에 구름처럼 몰려들어와 `불이야'라고 소리치면서 직원들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3, 4층에선 여자들의 비명이 들리더니 여자 2명이 위에서 뛰어내리다 부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래로 뛰어내린 고시원 여성 거주자 중 한명은 발코니 유리 섀시에 부딪혀 크게 다쳤지만 또다른 거주자 4명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사다리를 타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 92명은 화재 발생 27분여만인 오후 4시20분께 진화 작업을 마무리하고 연기에 질식해 3,4층 고시원 방과 복도에 쓰러져있던 거주자 등 19명을 구해내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 중 박씨 등 8명이 결국 숨졌다.
▲고시원 거주자 집중피해 = 숨진 8명과 병원에 입원한 부상자 11명은 대부분 고시원 거주자로 확인되고 있다.
사망자 가운데 박씨를 포함한 남성 2명, 여성 1명 등 3명의 신원이 확인됐고 나머지 신원미상 5명은 여성 2명, 남성이 3명이다.
박씨와 30대 남성 1명의 시신은 서울아산병원, 윤석칠(35)씨가 삼성서울병원, 조지연(32.여)씨와 30대 여성 1명, 40대 여성 1명이 서울의료원, 40대 남성 2명의 시신이 경찰병원에 분산돼 있다.
부상자 중에는 대치동 베스티안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배모(61.여)씨 등 2∼3명이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자 중에는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은 드물었고 일용직 근로자, 유흥업소 직원, 노인 부부 등 일반 거주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8)씨는 "고시원에는 고물을 줍거나 막노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방화 가능성도 수사 = 경찰은 일단 실화와 방화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캐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누전이나 노래방 관계자의 실화 가능성도 있지만 방화로 볼 만한 정황도 있다는 것이 경찰 및 소방당국의 판단이다.
우선 폭발음과 함께 불이 번지는 속도가 빨랐다는 점에서 누군가 고의로 불을 냈을 가능성이 높고, 화재 진압에 참가한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점도 방화로 추정할 만한 근거 중 하나다.
경찰 관계자는 "노래방 업주가 만취상태에서 횡설수설했다"고 전해 업주에 의한 방화나 실화로 불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송파경찰서는 "내일 오전 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과학수사팀에서 나와 정밀감식을 한다. 그 전에는 발화지점이나 원인에 대해 특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사무실서 2년전 고시원으로 용도변경 = 사고가 난 나우고시텔은 본래 사무실 용도로 지어졌다가 2년 전 고시원으로 갑자기 용도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1.5평 규모의 작은 방이 한 층에 30개 이상(3층 34개, 4층 36개) 다닥다닥 붙어있고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복도가 좁아 비상 시 대피가 어려운 `쪽방' 같은 구조였다.
소방법에 따라 방마다 소화기를 구비해놓기는 했지만 스프링쿨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데다 방충망이 창틀에 고정돼 있어 탈출을 어렵게 했다.
고시원 거주자인 이모(27)씨는 "4개월 전에 여기 들어왔는데 불이 크게 날 것 같아 돈을 더 주고 일부러 창가에 있는 방을 잡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시원 업주 등을 대상으로 내부 시설과 구조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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