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와 정보화 시대, 멀티미디어의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사회.
온라인 PC게임은 현대사회에 자연스럽게 유입된 사이버 문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미와 흥미 충족의 대상인 게임의 수위를 벗어나 마치 인생의 전부인양 이 시간에도 담배연기에 찌든 어두침침한 PC방 한구석에서 게임에만 열중하며 극단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도대체 그들은 왜 가상의 세계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출구 잃은 젊음의 파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임영규(가명·33)씨는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4시간이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
"이렇게 게임에 매달리는 이유요? 당연히 경쟁심이죠! 게임은 결국 누가 강한지 누가 이기는지가 제일 중요한데 열중하다 보면 타인보다 강해질 때까진 손을 뗄 수가 없어요."

임씨는 서울소재 한 명문대학교를 다니던 중 리니지라는 게임에 빠진 뒤, 대학마저 중퇴하고 현재 별다른 직업없이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임씨의 유일한 낙은 '렙업(level up)'과 '득템(아이템 획득)'이다. 식사는 하루 한 끼로 때우지만 담배는 하루 3갑 이상 피운다.

"물론 이렇게 살다간 언젠간 내 삶이 파탄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내 인생은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는 자신이 게임중독 말기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그는 자신이 그곳의 주인공이고 모든 이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존재인 ‘지존’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열려 있다는 사실에 이내 흥분하고 만다. 그 달콤한 유혹들을 뿌리치기엔 그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동안 게임에 길들여진 상태다.

"취업문제, 집안문제 등 여러 가지 생각하기 싫은 일들에 벗어나고 싶었을 때 처음으로 게임을 접했고, 짧은 시간에 게임에 매료되었습니다. 게임을 하는 동안 거짓말처럼 골치 아픈 일들을 싹 잊을 수 있었으니까요."

임씨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사지육신 멀쩡한 젊은 녀석이 시간과 돈만 축내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죠. 게임을 통하여 용돈벌이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획득한 아이템을 인터넷에 올려 현금으로 되팔아서 한 달 평균 50만원 이상은 벌어들입니다. 운이 좋으면 희귀 아이템도 습득하고 그런 달은 100만원 이상도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비생산적 일만은 아니라구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 임씨는 다시 자신의 시선을 유혹하는 게임 속 세상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다면 치료센터를 찾아 가라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시작한 게임이 스스로의 올가미가 되어 자신을 가두는 일은 비단 임씨뿐만의 일은 아니다.

게임에 중독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할 때 도피처로 게임을 이용한다.

황지선(여·28·주부)씨는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겪다 우연한 기회에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라는 게임에 매료되어 이틀 만에 급속히 중독증세가 나타났다.

"출산 후에도 살이 빠지지 않아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어요. 외출하기도 싫고 집안에만 처 박혀 살았습니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WOW라는 온라인 RPG게임을 알게 되었고 현실과 다른 또 다른 세계에 푹 빠졌습니다. 44사이즈의 날씬한 몸매를 가진 내 캐릭터가 마치 실제의 내 모습인냥 착각할 때가 많아요. 때문에 게임을 하는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해지죠."

게임에 중독된 이후 황 씨는 집안일은 물론 갓 낳은 자신의 아이 돌보기에도 염증을 내 결국 현재는 심각한 가정불화까지 겪고 있다. 이처럼 게임중독에는 학업, 업무능력저하·대인관계기피·건강악화 등 부작용이 적지 않게 뒤따른다. 때문에 이 같은 게임 중독으로 인해 정신과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인터넷 게임중독치료센터(www.gameclinic.com) 김영숙 원장에 따르면 "마치 흡연자가 담배를 끊고자 마음먹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게임도 한번 시작해서 버릇이 되면 몸에 습관화되어서 끊기가 힘들어 진다. 지금은 집집마다 초고속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어 있어 게임방 이외에도 집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으므로 집안이나 밖에서나 온통 게임을 하기에 적합한 게임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한다.

게임중독치료센터에서는 자녀, 남편, 부인, 실업자, 직장인 등 중독자를 세분화 하여 현실에 맞춘 상담을 통해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이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하고 방치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수년 전부터 사회문제가 됐던 게임중독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외상 및 내상을 입은 사람들은 지난해에 전년대비 9%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김영숙 원장은 전했다.

게임에 중독된 이들은 극단적인 일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RPG(롤플레잉) 온라인 게임인 '미르의 전설'을 퍼블리싱한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의 이희은 대리에 따르면 "미르의 전설 유저 중 한 명은 하룻밤 사이 아이템이 없어졌다며 자신의 아이템을 복구시켜놓던지 이 회사 무너지는 모습 보고 싶은지 알아서 선택하라고 억지를 부리다 내규상 아이템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말에 면도날로 손목을 긋는 등 자해를 시도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책 없이 무책임한 언론들

사람들을 게임중독에 빠트리게 만든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언론도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MBC GAME, ON GAME.NET, SBS 게임쇼 등은 온라인 게임 소개 시 게임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그 어떤 경고도 공지하지 않은 채 자극적이고 현란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중심으로 게임을 홍보하는 데에만 급급해 게임중독자를 양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이 희망이다', '물은 생명이다'라며 해마다 사회공익 슬로건을 제시하고 있는 언론들이 실제 프로그램제작 및 편성에 있어 '공익'적인 부분을 간과하는 이런 이중적 모순을 보며 언론은 다시 한번 진정한 공익이란 무엇인지를 되새겨 봐야 할 때라 할 수 있다.

사회의 관심이 필요할 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현재 게임 중독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깊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끊임없는 재활치료를 통해 현실생활을 예전의 정상적인 생활수준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중독자는 현실을 직시하는 눈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고 게임에 더 이상 빠지지 않도록 좀 더 현실적인 취미를 갖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디지탈뉴스 | 차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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