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노조로 알려진 포항지역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 점거라는 최악의 악수를 두면서 지도부 무더기 구속으로 조직력이 와해될 처지에 있는 등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이지경 포항지역 건설노조위원장 등 노조간부 20여명을 비롯한 노조원 58명이 23일 경찰에 구속되는 등 지도부 공백 상황에서 앞으로 노조의 조직정비와 활동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노조가 앞으로도 파업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이번 사태로 노조 내부의 분열과 불신이 심화돼 지금까지의 단결력마저 깨질 조짐을 보여 포스코 본사 점거 이전과 같은 강력한 노조활동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건설노조는 89년 4월 설립돼 포항지역 건설일용직 근로자인 3천여명의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지난 4월부터 사용자측과 벌여온 임단협 협상이 결렬되자 지난달 30일 파업에 들어간 뒤 결국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는 강경투쟁을 벌이다 9일 만에 백기투항으로 종결됐다.

포항지역 건설노조가 추구하고 얻은 것은 포스코 본사 점거라는 전국적인 관심을 통해 지금까지 외면당해 온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의 현실과 정당한 권리를 알린 것, 그러나 현행법상 제 3자로 협상대상이 아닌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는 과격.불법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서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나마 일부 동정 여론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우를 범했다.

일부 노조원들은 "점거기간 지도부와 일부 강성노조원들의 강압으로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온 노조원들이 많았다"며 "지도부의 농간으로 배신당한 느낌"이라며 불만을 나타내 노조 내부의 갈등과 불신의 벽이 높아졌음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이달 초에 열린 15차 임단협 이후 중단된 사용자측인 건설업체와 건설노조의 협상재개 전망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건설업체들은 점거사태 이후 '노조가 요구할 경우 중단된 임단협 교섭을 언제든지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노조측은 지도부 와해로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야 할 처지에서 노조 내분과 노조원간의 불신으로 비대위 구성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더욱이 사용자측은 노조측이 비대위를 구성해 협상을 하더라도 노조 요구사항인 토요 유급제, 외국인근로자 고용 금지,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 등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협상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포항건설협회 관계자는 "노조가 비대위를 구성해 교섭 재개를 요구해오면 언제든지 응할 계획이지만 현재로서는 노조 지도부가 부재여서 교섭 시기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포스코측이 파업기간 노조의 출입문 봉쇄조치와 본사점거 등을 이유로 노조측을 사유재산권 침해, 특수감금죄, 특수주거침입죄, 업무방해죄 등으로 고소한데 이어 점거된 본사 건물에 대한 피해 정도를 파악한 뒤 거액의 손해배상소송도 제기하기로 하는 등 노조를 옥죄고 있다.

여론도 돌아섰다.
노조의 장기파업과 포스코 본사 점거에다 민주노총과 타 지역 시위대까지 가세해 연일 계속된 과격집회로 포항시내 교통이 마비되고 상권이 위축돼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휴가철 특수는 고사하고 일상생활까지 피해를 입은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계속 집회를 열고 '노조 불법행위 중단하고 지역경제 살리자'며 호소했지만 노조측이 이를 외면하면서 그나마 일용직근로자의 정당한 권리요구라는 명분도 빛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것.

시민 박모(38.상업)씨는 "파업 초기에는 건설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도 했으나 갈수록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체 시민들의 피해를 외면하는 집단이기주의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며 "이번 사태가 노사가 모두 성숙한 자세로 건전한 노사문화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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