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소설'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쓴 이상운 작가

'첫사랑' 이라는 단어만큼 설레고 그리운 단어가 있을까! 누구나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그 때 그 기억을 아름답게 풀어낸 소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의 작가 이상운씨를 만나봤다.

'내 머릿속의 개들'(문학동네)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고, 70년대 후반 고등학교 아이들을 그린 청소년소설 '내 마음의 태풍'(사계절출판사)과 지난해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문이당) 등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는 그가 이번에는 서정적인 첫사랑을 그린 소설을 내 놓았다.

소설을 위해 하루하루 이야기의 씨앗을 키워간다는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풍자와 해학이 돋보였던 소설 '쳇, 소비의 파시즘이야' 이후 1년 만에 내놓은 소설인데, 이전 소설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색다른 변신(?)을 하시며 망설임은 없었는지..?

▲ 아니다. 재미있었다. 그동안 풍자적인 작품만 썼던 것도 아니고.. 데뷔 작품인 '픽션클럽'은 풍자였다. 하지만 이후 풍자('달마의 앞치마' '내 머릿속의 개들' 등)와 상대적으로 좀 서정적인 작품('탱고' '누가 그녀를 보았는가' 등)을 대체로 번갈아 가며 썼다.

그런데 풍자를 쓰고 나면 좀 피곤한 마음이 된다. 풍자라는 게 주로 인간의 어리석은 면을 공격하는 것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격성이 없는 작품을 쓰고 싶어지는 것 같다.

- 이상운 작가의 소설은 제목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특히 이번 소설의 경우 서정적인 제목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제목을 지을 때 어떤 것을 많이 염두하나?

▲ 지금까지 낸 책들의 제목 중에 좀 특이한 것들이 있죠? '픽션 클럽' '달마의 앞치마' '내 머릿속의 개들' 등등. '달마의 앞치마'를 두고 한 친구가 '달마가 언제 중국집 주방장으로 취직했느냐'고 농담을 한 게 생각난다.

제목을 지을 때 특별히 뭘 염두에 두지는 않고, 작품의 주제를 잘 드러내 주면서 개성적인 제목을 지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는 구상을 끝내고 소설 초반을 쓸 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다. 그 제목 때문에 김광섭 선생의 시를 인용하게 되었고..

나중에 '별자리 만들기' '순진한 그녀' 'Peter, Paul & Mary를 듣던 시절' 등이 새로운 후보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별똥별처럼...

- 특별히 '아련한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 첫사랑, 좋잖아요? 잃어버린 것이면서, 아니 잃어버린 것이어서, 늘 마음에 간직하고 그리워하게 되는데, 뭐 그것만으로도 좋다. 그렇게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대체로 스무 살 무렵 첫사랑 시절의 우리는 순진한 편이다. 어리고 서툴고 때론 어리석지만, 순진하고 순수하고 용감하죠. 그냥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좋은 것 같다.

이 작품에서 나는, 지금 스무 살 무렵을 지나가고 있는 젊은 사람들과, 오래 전에 그 시절을 보낸 중년들에게, 순진한 사랑 이야기를 축으로 해서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왔는지 가르쳐주고, 또 뒤돌아보게 하고 싶었다.

- 책의 말미에 마치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인 듯 한 여운이 남는 글이 눈에 띄었다. 혹시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인가?

▲ 자전적인 것이냐, 아니냐? 이렇게 이해해도 되죠? 어떤 사람은 이 작품을 읽고 100%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확신하더라. “그렇죠?” 라고 그가 물었는데, 난 그냥 웃기만 했다.

지금도 그냥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자전적인 소설이건 완전히 허구적인 소설이건, 수기가 아니고 소설인 한 픽션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소설 창작에 완전히 몰입해 있다 보면, 내가 겪었던 이야기가 만들어낸 이야기 같고, 만들어 낸 이야기가 내가 겪었던 일 같고... 그렇다.

아, 한 가지만 공개하자면, 사업 실패로 복역 중에 내 소설을 읽고 편지를 보낸 남자 얘기는 100% 사실이다! (웃음)

- 별과 시인의 시, 그리고 포크송이라는 소재들이 소설의 분위기를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든 것 같다. 각각의 소재는 분위기 연출을 위해 직접 고민하고 구상하신 건가?

▲당연하다. 내가 쓴 소설이니까! 소설가들은 뭐랄까, 일종의 건축가라고 말할 수 있다. 서양 중세 풍의 성을 만들 것인지, 한옥 기와집이나 초가집을 만들 것인지, 초현대식 빌라를 만들 것인지...

이 작품은 7, 80년대 역사 흐름과 Peter, Paul & Mary의 아련한 노래 'Gone the rainbow'를 주조로 하는, 순진한 첫사랑 이야기라는 추억의 집이다.

- 문학과 출신이신데, 학생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온건가? 꿈을 키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 어릴 때부터 더러 글을 써보곤 했다. 딱히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글쎄, 청춘 시절이 행복했더라면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인생이란 게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서... 시대도 우울했고, 캠퍼스 생활도 실망스럽기 그지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 읽는 게 거의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도 '내 속에 있는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고 강사 생활하느라 계속 미루다가, 삼십대 중반에서야 결단을 내렸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그래서 작가가 되었지만, 대신 가난을 짊어졌다! (웃음)

- 꾸준히 작품을 내시는 편인데 평소 글의 소재는 어떻게 구상하는지?

▲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소설, 희곡 등 문학 작품은 물론이고, 사회과학, 철학 서적도 많이 본다. 그게 다 인간과 인생 얘기니까. 그리고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읽으려고 한다.

당연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늘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편이다. 그런 것들이 마음과 머리에 쌓여서 어느 순간 이야기의 씨앗이 만들어진다. 그러면 그걸 멋지게 키워보려고 애쓰는데, 한 마디로 재미도 있지만 무척 괴로운 과정이다.

-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소설이 궁금하다. 간략하게 이야기 해 달라

▲ 여름이나 가을에 청소년 소설을 내려고 준비 중이다. 중학생 주인공이 일상사를 통해서 인생 공부를 하는 다섯 편의 단편 연작소설이다. 하반기에 잘 준비가 된다면 내년 상반기에 신작 장편을 하나 낼 수 있을 텐데, 글쎄, 잘될까..?

사기꾼이 주인공인 풍자를 하나 써볼까, 아니면 이번 작품처럼 좀 분위기 있는 걸 연달아 하나 써볼까 고민중이다. 엉성한 수준이긴 하지만 구상이 되어 있고. 뭐, 생각해 보지도 못한 전혀 엉뚱한 작품의 씨앗이 하나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럼 그걸 잘 키워 보려고 날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가끔 맥주도 한 잔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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