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집지으며 살았는데 정작 내 집은 없어
"노동법? 근로 기준법? 그런 거 모릅니다. 그냥 하루 벌어 하루살기 바빠요, 올해 장마가 길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듭니다. 이젠 비 내린다는 일기예보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래서 장마는 '노가다' 하는 사람들의 '보릿고개'라고도 불립니다. 장마가 끝나면 폭염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


노모와 두 딸을 부양하고 있는 김학준(가명 남, 41)씨는 일당 7만원을 받으며 일용직 근로자로 4년 째 건설현장에 있다. 일당 7만원 중에서도 10%는 직업소개소에 떼인다. 직업안정법 규정에 의하면 구인자에게 임금의 최대 10%, 구직자에게는 4%만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10%의 수수료를 받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행위다.


김 씨 또한 10%의 수수료는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럼 어쩌겠느냐" 며 한숨을 쉰다.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남자들은 비교적 일당이 센 건설현장을 자주 찾는다. 특히 요즘 같은 방학시즌엔 학생들까지 대거 몰려 경쟁률은 더 세진다. 구로구 구로동에 위치한 ㄷ직업소개소 소장은 "일할 사람은 넘쳐흐른다. 더 이상 말하기 싫다 소개비를 낮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고 잘라 말했다. 결국 부당함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할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사항을 구로경찰서 수사계에 의뢰한 결과 피해자가 직접 경찰서에 방문해 상대에게 고소-고발을 해야만 처벌과 보상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답변뿐이었다. 직업소개소에는 수수료 10%라는 불법 안내문까지 버젓이 부쳐놨으나 일선 시-군-구의 단속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용직 노동자 정영만(남,57)씨는 일생을 집 짓는 일에 다 바쳤다고 말한다. 그동안 억척스럽게 일해 대학생 아들 둘과 고3 수험생 딸을 두고 있다. 앞으로도 일을 계속해야 자식들 대학졸업까지는 시켜줄 수 있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씨는"33년간 집을 지었는데 정작 내 집은 없다" 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내 나이 이제 57이야, 일을 하고 싶어도 몸도 전 같지 않아 공치는 날이 늘었어, 이 일을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고, 요즘은 직업소개소 가도 소장이 나이 많다고 싫어하는 눈치야, 하긴 이제 곧 환갑인데… 모아둔 돈도 없고 막막하지 뭐…" 라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정씨는 1988년 목동의 건설현장 2층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친 뒤에도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해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은 보통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 전후로 직업소개소로 향한다. 그 곳에서 작업장을 배당 받고 7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6시면 모든 작업을 마친다. 그리고 퇴근 후 다시 인력 사무실로 가야 당일 노임을 받을 수 있다. 귀가해 샤워하고 식사하면 밤 9시경이다. 몸도 피곤하고 다음날도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선 바로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다. 가족과 대화할 시간도 나만의 여유시간을 즐길 시간도 없다.


1년 600명 건설 노동자 사망


멕시코 노동자 5명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인 한명이면 된다는 말이 나올 만큼 한국의 건설노동자들은 다른 나라 노동자에 비해 부지런하고 꼼꼼하기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OECD 평균 근로시간은 주 36시간이다. 한국의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은 OECD가입국가의 건설노동자들 중 최저의 임금과 최고의 업무시간, 작업복을 갈아입을 공간조차 마련되지 않은 곳이 많아 공사현장 한구석에서 옷을 갈아입는 치욕적이며 열악한 근무환경에 방치되어 있다.


한해 평균 2천 5백여 명의 노동자가 사망한다. 이중에 작년 사고로 사망한 건설노동자는 600여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 노동자 25%에 이른다. 1999~2003년 통계청의 노동자 사망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임시·일용직은 상용직에 비해 사망위험이 3.01배, 기타 비정규직도 2.75배가 높았다.


환경노동위의 김영주 열린우리당 의원이 작년9월 국회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시공능력 평가액(도급) 순위 1~30위 건설업체의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망자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열악한 환경의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였다고 밝힌바 있다. 이렇게 무수한 고충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가난, 차별, 착취의 구조뿐이다. 일을 시작하고 한 달이 더 지나야 받을 수 있는 유보임금 제도, 10년 전 일당과 현재의 임금이 같고, 10년 전 처우와 현재의 처우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에서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은 계속해 병들어 가고 있다.


차정석 기자 asra@dig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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