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에 어려움 겪고 있다" 불만

이용훈 대법원장의 검찰 및 변호사 관련 발언을 둘러싸고 법원.검찰.변호사 등 `법조3륜'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전국 일선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률이 높아지는 등 영장 발부기준이 엄격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 처럼 일선법원이 영장발부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은 이 대법원장이 최근 일선법원 초도순시 과정에서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는 등 검찰의 수사과정과 영장 신청 관행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에 따라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들은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불만과 함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연합뉴스가 22일 부산, 대구, 광주, 수원, 청주 등 전국 취재망을 통해 각 일선법원의 구속영장 기각률을 조사한 결과 이 대법원장의 초도순시를 전후해 구속영장 기각률이 이전에 비해 큰 폭으로 높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지법의 경우 이 대법원장이 광주고법과 광주지법에 대한 초도순시에 나선 지난 13일부터 대구지역 초도순시를 한 지난 18일까지 검찰과 경찰이 청구한 구속영장 70건 가운데 20건을 기각, 28.5%의 높은 영장 기각률을 보였다.

반면 이 대법원장이 광주를 방문하기 이전인 6~12일에는 검.경이 청구한 72건의 구속영장 가운데 15건이 기각돼 20.8%의 기각률에 그쳤다.

부산지법도 9월 1일부터 12일까지 검.경이 청구한 전체 구속영장 134건 가운데 33건을 기각했으며, 영장기각률은 24.6%에 달했다.

이는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부산지법이 청구된 2547건의 영장 가운데 332건만을 기각함으로써 영장기각률이 13% 수준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할 때 영장기각률이 급격히 상승했음을 방증하는 자료로 해석된다.

서울중앙지검이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한 기각률도 지난달 말 17.7%에서 이달에는 24.9%로 크게 높아졌다.

이에 대해 일선 법원 관계자는 "법원이 인신구속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영장기각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피의자 인권보호와 불구속 재판원칙에 입각해 보면 영장발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선법원들은 과거와는 달리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영장발부에 신중을 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광주지법은 지난 14일 광주 북부경찰서가 도서관에서 85차례에 걸쳐 2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상습절도)로 김모(27)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신분이 안정적이어서 도주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부산지법도 지난 7일 부산진경찰서가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대한 법률위반 혐의를 받고 있던 배모(30)씨에 대해 신청한 긴급체포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영장담당 판사는 "수사기관이 피의자에 대한 범죄사실과 주거지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 출석요구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긴급체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긴급체포영장 기각 이유를 밝혔다.

청주지법도 청주지검과 일선 경찰이 지난 6월 초부터 이달 20일까지 사행성 게임장과 관련한 피의자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 58건 가운데 23건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관계자들은 피의자의 인권보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원이 영장발부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A지검의 한 검사는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취지는 동감하지만 영장발부 사유가 되는데도 기각되는 사례가 많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법원의 영장기각 기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검의 검사는 "아직 굵직한 현안을 놓고 영장발부 문제로 법원과 대립각을 세운 적은 없지만 평검사들 사이에 대법원장의 검찰 비판 발언과 법원의 잇단 영장기각에 대해 불만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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