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연대ㆍ자유선진당 창당, 약화된 지역주의에 새 생명

2008년이 시작되고 3달이 조금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선진당, 진보신당, 친박연대라는 3개의 정당이 한꺼번에 창당됐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정당 3개가 한꺼번에 창당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거니와 이 중 진보신당을 제외한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는 국민들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두 정당 모두 어떤 이념이나 계층보다는 영남권과 충청권이라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창당된 정당이라는 것이다.

두 정당의 창당으로 인해 최근에야 겨우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하고 있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가 새로운 힘을 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 지역주의는 박정희 군사정권 등장 이후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우리 정치의 암적 존재로 그 동안 우리나라 선거에서는 후보의 이념이나 철학, 정책은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고 지역주의가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는 군사독재 정권의 집권 연장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참신하고 유능한 인사들의 정치권 진입을 매번 좌절시켜 우리 정치 발전과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다.

사실 이승만 정권 때만해도 우리나라에 지역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 때만 해도 영남 출신이 호남에서 당선되고 호남 출신이 영남에서 당선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지난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집권 연장을 위해 이 땅에 지역주의라는 암을 발생시키기 시작했다.

지난 1963년 실시된 제5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박정희의 공화당 측 인사들은 영남 지역에서 유세를 펼치는 동안 “이 고장은 신라 천년의 탄탄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그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은 여태껏 한 사람도 없었다”며 “박정희 후보는 신라 임금님의 자랑스런 후손이며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으로 천년 만에 임금님을 모시자”며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부추겼다.

문제는 이런 공화당 측의 지역주의 유발 전략이 박정희 후보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

그 해 10월 15일 실시된 선거 결과 박정희 후보는 470만 2640표,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는 454만 6614표를 얻어 박정희 후보가 불과 15만여 표차로 승리해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것이 그 후 30년 동안 지속된 군사독재 정권의 시작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박정희 후보는 출신 지역인 영남에서만 윤보선 후보를 66만여 표 이긴 반면서울에서 2대 1로 윤보선 후보에게 대패한 것을 포함해 경기, 강원, 충북, 충남 등 여타 지역에서는 모두 졌다. 지역주의에 의한 승리라 하도 과언이 아닌 결과라 할 것이다.

지역주의의 덕을 톡톡히 본 박정희 정권은 그 후 정부 인사 등에서 노골적인 영남우대ㆍ호남차별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 땅의 지역주의는 급속히 강화돼 갔다.

역대 대선에서 절대적 영향력

현재와 같은 영·호남 지역주의가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린 것은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격돌한 지난 1971년 실시된 제7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다.

당시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집권한 지 10년째 되던 때라 국민들 사이에서 '이번에는 정권교체가 돼야 되지 않겠느냐'는 욕구와 3선 개헌을 강행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감이 강해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40대 기수론'으로 해성 같이 등장한 김대중 후보에 대한 지지도 충천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박정희 후보는 참패를 면키 어려웠다.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갖가지 방법으로 극심한 부정선거를 자행했을 뿐만 아니라 영남 지역에 '김대중 후보 당선을 위해 호남인이여 단결하라', '경상도 사람 안 뽑으면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푸대접 내지 보복이 올 것'이라는 글이 적힌 삐라를 살포해 지역주의를 조장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의 전략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 해 4월 27일 실시된 선거 결과 박정희 후보는 634만 3000표, 김대중 후보는 539만 6000표를 얻어 박정희 후보가 당선됐다.

지역별로 보면 영남에서 박정희 후보는 261만표를 얻은 반면 김대중 후보는 102만 4천표를 얻는데 그쳤다.

반면 호남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141만 1000표를, 박정희 후보는 78만 9천표를 얻어 김대중 후보가 압승했다.

그 후 10월 유신과 전두환 정권의 등장으로 대통령 직접 선거는 16년 동안 실시되지 못했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으로 국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직선제를 누리고 있지만 앞에서 말한 영·호남 지역감정은 90년대 들어서까지 점점 심화돼 갔다.

지난 1992년 12월 18일 실시된 제 14대 대선에서는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이기고 당선됐다.

그런데 지역별 득표현황을 보면 김영삼 후보는 대구를 포함한 영남지역에서 478만 3420표 중 319만 5712표를 얻어 6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김대중 후보는 이 지역에서 43만 1454표를 얻는 데 그쳐 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광주를 포함한 호남지역에서는 김대중 후보는 306만 2973표 중 281만 4218표를 얻어 9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사실상 싹쓸이인 것.

반면 이 지역에서 김영삼 후보는 13만 1039표를 얻는 데 그쳐 4%의 지극히 저조한 득표율을 나타냈다.

사실상 당시 선거 결과는 후보 간 정책 대결 등이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오로지 영남 지역 유권자 수가 호남 지역 유권자보다 훨씬 많은 것에서 기인했다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대구를 포함한 영남지역에서 12%의 득표율을 올리고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지역주의는 조금씩 그 힘을 잃어갔다.

지난 해 실시된 대선에서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전라북도에서 81.6%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9%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광주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79.8%, 이명박 후보가 8.6%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전라남도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78.7%, 이명박 후보가 9.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점차 완화되는 추세, 하지만

영남 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이명박 후보는 경상북도에서 72.6%, 정동영 후보가 6.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대구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69.4%, 정동영 후보가 6%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경상남도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55%, 정동영 후보가 12.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강원도에서 5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지역주의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지역주의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 이유로는 △민주화의 진전으로 인한 정치 참여 기회 확대 △유권자들의 의식 성숙 등을 들 수 있다.

민주화의 진전으로 인한 정치 참여 기회 확대는 민주노동당 같은 이념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고 계층적으로는 노동자와 농민을 기반으로 하는 진보정당의 제도 정치권 진입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지역주의 완화에 큰 기여를 했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이후 한국의 정치체제는 지역주의 정당 체제에서 계층·이념정당 체제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그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양대 정당인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정책을 비교해 보면 교육이나 의료 정책, 대북 정책 등에서 한나라당은 시장 중시와 상호주의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고 통합민주당은 공공성 강화, 상호 협력ㆍ대화 중시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즉 기업과 중상류층 이상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고 이념적으로는 중도보수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한나라당과 중산층과 서민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고 이념적으로는 중도진보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통합민주당,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고 이념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신당ㆍ민주노동당이라는 계층·이념정당 체제가 조금씩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의 창당은 이렇게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지역주의에 다시 힘을 불어넣을 가능성이 높다.

먼저 이 정당들은 어떤 이념이나 비전을 공유해서 창당된 정당들이 아니라 특정 지역을 지지기반으로 삼는 정당들이고 이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비록 전국정당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이들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선거에서 지역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유권자들 역시 지역주의에 기반한 투표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친박연대 송영선 대변인은 3일 <투데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친박연대는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정당이기 때문에 친박연대 후보들이 박근혜 전 대표가 인기가 높은 영남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이렇게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을 지역주의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지상욱 대변인은 “우리 나라 역사에서 등장했던 공화당이나 민정당, 새정치국민회의, 민주당 등 모든 정당들이 지역거점을 갖고 있었다”며 “우리 자유선진당은 충청도를 지역거점으로 해서 전국정당화하려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투데이코리아 이광효 기자 leekhy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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