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고교 역사교과서의 한국 근현대사 부분이 다루고 있는 동학농민군의 '12개조 폐정개혁안'이 허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뉴라이트재단이 최근 재창간한 계간 '시대정신'이 특집으로 마련한 대담 '민중운동사에서 대한민국사로'에서 연세대 국제대학원 유영익 석좌교수는 "12개조 폐정개혁안이 사료에 바탕한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면서 현행 역사교과서의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서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행 고교 6종의 역사교과서가 모두 '동학 12개조 폐정개혁안'을 인용,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을 반봉건 운동으로 규정한 것은 큰 오류라고 지적했다. 동학농민군이 집강소(執綱所)를 통해 실현하려고 했다는 12개조 폐정개혁안이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어떠한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사료"라는 것이다. 그는 '12개조 폐정개혁안'이 1940년 출판된 오지영의 '역사소설 동학사(歷史小說 東學史)'에만 실려있는 내용이라고 지적하고, "오지영이란 인물은 역사학자가 아닌, 천도교계의 아마추어 역사가이자 역사소설가"라고 주장했다. 1938년 '역사소설 동학사'를 탈고한 오지영이 "그 속에 횡포한 부호배(富豪輩)는 엄징"(제3조),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分作)"(제12조) 등이 포함된 '폐정개혁안'을 제시하면서 동학농민운동을 사회주의 혁명 내지 계급투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1894년 공포된 모든 동학농민운동 자료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문건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12개조 폐정개혁안'이 "오지영 개인의 가공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2002년 출판된 근현대사 교과서가 "12개조 폐정개혁안을 마치 믿을 수 있는 사료인 것처럼 인용하면서 그 근거로 오지영의 '동학사'를 제시"한 점을 지적했다. 유 교수는 교과서가 "이 책의 원래 제목에 보이는 '역사소설'이란 수식어를 생략했다"면서 이는 "교과서의 독자들을 속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2002년판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자 가운데 일부 학자들이 애초 동학농민운동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12개조 폐정개혁안'을 인용하지 않으려 했으나, 교육인적자원부의 '국사 교육내용 전개의 준거안'에 '12개조 폐정개혁안'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실었다고 들었다"면서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역사를 왜곡하는데 앞장선 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동학농민운동이 '농민전쟁'이라는 규정도 반박했다. 유 교수는 "금성사 교과서에서처럼 동학농민운동을 '농민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동학농민운동 전체가 일종의 '계급전쟁'이었다는 오해를 자아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동학농민운동의 경우 12개조 폐정개혁안이 허구이므로 계급전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동학농민군이 봉기한 기본목적은 조선의 봉건체제를 혁파하는 것이 아니라 흥선대원군을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동학농민운동사를 전공한 원광대 박맹수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오지영의 '역사소설 동학사'는 픽션으로서 소설이 아닌 회고록 성격의 글"이라면서 '12개조 폐정개혁안'이 허구라는 유 교수의 의견을 정면반박했다. '소설'(小說)은 픽션(허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글에 대한 겸양의 표현으로서의 관용적으로 쓰던 어구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오지영은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 지도자 출신으로 갑오년에 체험했던 바를 회고록 형식의 글을 쓴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확인되는 사료들로 봐서 동학농민운동 당시 이미 27개 조항의 요구안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오지영은 12개조로 그것을 재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학계에서도 오지영의 '동학사'에 언급된 토지균분 조항(12조)은 애초 동학농민군의 27개 조항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아직도 논란이 분분한 사안"이라고 인정하면서 "갑오년 당시 농민군의 요구안을 정치개혁, 사회경제적 개혁, 반외세 개혁의 측면에서 볼 때 토지개혁 구상도 있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2조 토지균분 조항에 오지영 개인의 의견이 반영됐을 수 있으나, "12개조 자체가 허구라는 비판은 무리"라는 반론이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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